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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그레천 매컬러, <인터넷 때문에>

by Jaime Chung 202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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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그레천 매컬러, <인터넷 때문에>

 

 

어떤 언어든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데 우리가 언어의 변화에 관해 이야기할 때 기술의 변화를 그 이유를 꼽는 일은 적은 것 같다. 실제로 기술의 발전이 언어의 사용에 큰 영향을 끼치는데 말이다. 이 책, 그레천 매컬러의 <인터넷 때문에>는 인터넷이 언어, 특히 영어에 끼친 영향을 다각도에서 조명한다.

이미 화요일 글(’나이 든 사람들이 말줄임표(‘…’)를 쓰는 건 전 세계적인 현상?‘)을 통해 이 책이 보여 주는 여러 통찰 중 한 가지는 보여 드렸으니, 다른 분야를 좀 더 소개하고자 한다. 아주 흥미로운 주제가 많이 다루어지는데, 인터넷에서의 글쓰기 스타일(강조, 비아냥거리기, 고함 지르기, 늘여 쓰기 등), 이모지, 밈 등등, 언어학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린 뷔페처럼 느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 언급된 (서양) 밈을 90% 아는 사람으로서, 잠시 내가 인터넷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나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 자, 그러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언어학을 다룬 책이 이렇게 흥미롭고 유머러스할 수 있다니, 나로 하여금 ‘이건 정말 언어학에 관심 없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들 정도였다(제발 그렇다고 해 주세요…!). 예컨대 이런 부분을 보시라(이탤릭체 강조는 내가 했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 엘리트주의자가 될 수도 있지만, 선거 유세 때 갑자기 토속적인 말을 쓰는 정치가들처럼 연대를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쓸 수도 있다. 언어를 바꾸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 직장 동료와 개에게 똑같이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우리 부장님 착하지! 산책 갈까? 월급도 올려주고?”)* 그러나 우리가 쓰는 언어의 스타일이 정체성과 맞물린 경우도 있다. 윌리엄 라보프는 마서스비니어드섬의 거주자들을 연구한 결과, 전통적인 섬 문화와 자신을 강하게 동일시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지역 사투리를 더 강하게 쓴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아니, 이 책이 아니면 내가 어딜 가서 아랍어 화자들은 라틴어 알파벳을 사용해 아랍어 소리를 표기한다는 놀라운 지식을 얻을 수 있겠는가? 이 흥미로운 사실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랍어 화자들은 아랍어의 두 가지 형태는 아는데, (학교에서 쓰는 법을 배우지만 말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 정통 아랍어에 기반을 둔 표준화된 다국적 아랍어인 현대 표준 아랍어와 이집트식 아랍어나 모로코식 아랍어처럼 일상적 구어에서 쓰이고 공식적인 글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언어인 지역 방언이다. 아니, 공식적인 글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그러니까 예컨대 제주도 방언 화자가 ‘ㅎㆍㄴ저옵서예’(어서 오세요)라고 말을 할 수는 있는데 그걸 쓸 글자가 없는 경우를 상상하면 되나? 이게 나에겐 너무 충격적이었다. 어쨌거나 아랍어 화자들은 ‘خ’라는 글자를 닮은 숫자 5나 7’(아포스트로피를 붙인 7)로 표기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면 ‘خ’ 이 글자를 거울에 비춘 것 같은 모습이 된다고. 비슷한 논리로 숫자 9’와 9가 ‘ض’와 ‘ص’라는 글자를 나타내기 위해 쓰이며, 6’과 6은 ‘ظ’와 ‘ط’에, 3’과 3은 ‘غ’와 ‘ع’에 쓰인다. 와, 이런 신박한 생각이라니! 소위 ‘야민정음’이라고 하는 표기법(예를 들어 ’멍멍이’를 ‘댕댕이’라고 하는 것)도 이것과 큰 틀에서 보면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렇게 한 언어의 표기 방식이 새롭게 등장했다는 게 진짜 너무너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언어 덕후인 나는 그저 가슴이 벅차올랐을 뿐이고…!

 

영어에서는 모든 글자를 대문자로 쓰면 소리치거나 강조하는 의미라고 흔히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을까? 언제부터 대문자는 강조를 위한 거라고 사람들이 이해하게 된 걸까? 정답은 ‘인터넷이 생겨나기 한참 전부터’라고 한다.

언어학자 존 맥워터(John McWhorter)는 소리치는 대문자의 기원을 1940년대의 피아니스트 겸 작가인 필리파 스카일러(Philippa Schuyler)에게 추적해 올라가고, 작가 L. M. 몽고메리(L. M. Montgomery)는 1920년대에 쓴 소설에서 한 캐릭터가 일기에 강조를 위해 대문자와 이탤릭체 둘 다 사용하도록 했다. 이 소설에서 다른 캐릭터는 그것이 “빅토리아 시대 초기”에나 하던 일이라고 비판한다. 그 시절의 기준으로도 구식 신파 느낌이 났다는 것이다. 그보다 더 과거로 돌아가면, 1856년의 한 신문에 “이번에 그는 대문자로 소리쳤다”라는 표현이 담긴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 이건 나만 몰랐던 걸 수도 있지만, 느낌표(‘!’) 기호가 다른 단어들과 붙어 있을 때 무슨 의미로 쓰이는지도 배웠다! 예컨대 여러분이 팬픽을 읽는데 “(캐릭터 이름) x Fem!Reader” 이런 안내문을 보았다고 치자. 그러면 그 캐릭터와 여성 독자 캐릭터(소위 ‘드림러’)가 이어지는(x) 내용이란 뜻이다. 도대체 이게 어디서 온 건가 했는데, 저자가 이렇게 잘 설명해 놓았다.

장난스러운 의견을 덧붙이기 위해 재활용되는 또 하나의 기술적 도구는 특정한 개인의 다양한 모습을 지칭하기 위해 느낌표!합성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past!me(과거!나) 혹은 CAPSLOCK!Harry(대문자!해리; 대문자로 소리를 지르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시리즈 5권의 해리 포터를 의미한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느낌표!합성어를 따라가다 보면 기술사의 매력적인 한 대목에 이르게 된다. 우리 모두가 철저하게 직조된 단일한 인터넷에 들어오기 전에는 누군가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위해 이메일이 지나가야 하는 컴퓨터들의 경로를 정확히 지정해야 했다. 프린스턴 대학교 수학부의 알렉스에게 이메일을 보내려면 princeton!math!alex!라고 써야 컴퓨터가 그 이메일을 프린스턴대학교의 대형 서버로 보내고, 대형 서버가 ‘알렉스’ 계정이 있는 ‘수학부’ 컴퓨터로 다시 이메일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를 뱅 경로(bang path)라고 한다. 이 시스템이 개인에 관한 설명으로 쉽게 확장되었다. 알렉스라는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여러 명 있어도 관심사에 따라 그들을 분류할 수 있듯이(수학자 알렉스 대 예술가 알렉스), 그들의 컴퓨터 경로를 기초로 둘을 구분하는 것도 가능하다(art!alex 대 math!alex).

 

이 외에도 비아냥(sarcasm)을 나타내기 위해 ‘~’(물결 표시; tilde)를 사용하게 된 기원이라든가, 고개를 끄덕여 “응”을 나타내는 몸짓이나 고개를 저어 “아니”를 나타내는 몸짓을 ‘엠블럼(emblem, 상징물)’이라고 한다는 것, 미소 짓는 얼굴 이모티콘(’:)’)을 최초로 제안한 사람 등, 정말 흥미로운 언어학적 지식이 차곡차곡 겹겹이, 마치 엄마손 파이처럼 맛있게 쌓여 있다. 게다가 온갖 밈의 역사에 대해서도 장(章)을 아예 하나 따로 할애해서 설명한다. 진짜 이 재미있는 책을 안 읽으면 너무 손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척 즐거운 독서 경험이었다. 언어학에 특별히 관심이 없더라도 이 책은 인터넷의 지대한 영향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한 교양 서적으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강력 추천!

 

➕ 참고로 저자는 ‘xkcd’라는 만화도 그린다. 저자의 웹사이트에서 이 만화들을 볼 수 있다. 인간들은 원래 전 세계에서 한 가지 언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그 인간들이 기고만장해져 하늘에 닿을 만큼 높은 ‘바벨 탑’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고, 이에 분노한 신이 인간들에게 인종이나 국가별로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어 의사소통이 불가능해져 탑이 결국 와해됐다는 이야기는 다들 아실 것이다. 바벨 탑에 대한 저자의 만화(위 짤)를 보면 다양한 언어가 생긴 이유를 이렇게 상상한다. 바벨 탑의 맨 꼭대기에 올라간 사람들 중에 ‘언어학자’가 있었는데 이 언어학자가 ‘언어는 멋져요' 했더니 신이 ‘그럼 너희가 공부할, 각각의 음운론과 단어가 오는 순서, 통사형태론적 정렬이 있는 언어를 많이 주마’ 해서 다양한 언어가 생긴 거라고. 아니 우리에게 왜 그렇게 많은 공부거리를 주신 거예요!!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들을 별종처럼 보는 대중의 이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거겠지만 이런 발상을 한 것 자체가 너무나 언어학자답달까(위 만화 속 언어학자의 머리 스타일이 저자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프로필 사진 속 저자의 머리스타일과 닮았다). 어쨌거나 언어학에 관심 있는 분들은 이 만화도 재밌게 보실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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