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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구달, <읽는 개 좋아>

by Jaime Chung 2023.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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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구달, <읽는 개 좋아>

 

 

이 세상 사람들을 아주 간단하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이렇게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강아지, 고양이, 토끼 등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나는 따지자면 후자에 속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게도, 우리 집에는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금붕어는 조금 키워 봤지만 그렇게 애착을 가질 정도는 아니었고, 소동물은 딱 한 번, 동네 새끼 고양이가 어미를 잃은 듯해 사흘 정도 집에서 보호해 준 게 전부다. 다시 말해, 나는 어릴 적에 동물과 집 안에서 부대끼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고 훨씬 나중에 구남친이 키우던 고양이와 어울리기가 참 어색하고 어려웠다.

오늘 소개할 이 책의 장르를 정의하자면 ‘반려견’ 에세이+독서 에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나는 ‘반려동물’과 함께하고 그 동물을 정말 삶의 반려로 여기는 게 어떤 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내가 좋아하는 구달 작가님이 쓴 글이라면 뭐든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집어들었다. 저자가 10년 넘게 키우고 있는 장모종 닥스훈트의 이름은 ‘빌보’인데 이 책 표지의 주인공이 바로 저자와 빌보다.

‘반려견’과 독서 에세이라는 독특한 조합이 어떻게 가능한가 싶지만 구달 작가는 그걸 말이 되게 만든다. 개 주인과 개가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많지도 않고, 젊은 여성인 저자가 빌보를 데리고 산책이라도 나섰다 싶으면 사람들의 무례한 말을 들어야 하며, 옆집 개에게 물렸는데도 빌보는 ‘개’이기 때문에 형사법으로 이 사건을 처리할 수 없다는 게 (결국 구달 작가 본인이 빌보를 보호하다가 개에게 물렸다는 점을 근거로 형사 사건으로 과실치상이 적용됐다. 저자 말을 빌리자면 “생명권을 침해당한 건 빌보인데 나의 재산권이 보호받는 현실”) 구달 작가가 빌보를 키우며 겪는 현실이다. 그래서 구달 작가는 다른 이들에 비해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지거나 충분히 보호받지 않는 소수자 또는 약자들의 입장을 헤아려 보려 노력하고 그런 관점에서 도움이 되는 책을 읽는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쪽)

인류학자 김현경의 저서 <사람, 장소, 환대>는 어떻게 사람이 인정받는가로 사회를 정의한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겪은 작은 소동을 떠올렸다. 산책 도중에 잠시 쉬려고 카페를 찾았을 때 일이다. 인터넷에서 반려동물 동반 가능 여부를 검색하고, 매장에 전화를 걸어 반려견과 함께 가도 되는지 확인했다. 온라인상에 기재된 정보와 실제 운영 정책이 다른 경우가 적지 않기에 더블 체크는 필수다. 흔쾌히 오시라는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도착한 카페.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이었다. 정원을 지나 건물로 들어서기 전에 목을 길게 빼서 입구 안으로 집어넣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까 전화 드렸는데요. 개 있어도 괜찮죠?” 돌아온 답변은 ‘동반’의 의미를 재정립한 참신한 발상으로 나를 당황케 했다. “아유, 그럼요. 개는 저쪽 나무에 묶어두고 들어오시면 돼요.”

잔디와 그 위에 하얗게 그려진 라인만 보면 반사적으로 가슴이 뛴다. 게다가 저 라인은 축구 경기를 보러가서 관중석에서 지켜봐 왔던,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라인이 아닌, 내 이 두 발로 직접 밟아 볼 수 있는 라인이다. 밟고 싶다고 생각하는 순간 비로소 어깨가 쫙 펴졌다. (18, 19쪽)

김혼비 작가는 축구하는 여자들이 “세상이 일방적으로 나눈 구획”에 틈을 벌리고 선을 지워가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나 같은 ‘축알못’이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에 푹 빠져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로빙슛을 날릴 것도 아닌데, 내가 하얗게 그려진 라인을 밟을 것도 아닌데, 여자들이 운동장 전체를 차지하고 공 차는 이야기를 읽었을 뿐인데 내 어깨가 쫙 펴졌다. 세상이 ‘네 몫은 없다’고 못 박은 공간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딛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그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쾌감은 얼마나 짜릿한지 일깨워준 책이다. 공간을 지배하는 자가 경기를 지배한다고 했던가. 나는 피치에 선 여자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자유롭게 풀밭을 가로지르는 개들을 더 많이 보고 싶다.

 

이미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구달 작가의 ‘반려견’ 이름은 J.R.R. 톨킨의 소설 <호빗>의 주인공인 빌보 배긴스에서 따왔다. 사실 이 이름은 작가의 언니가 지은 것인데, 작가 본인은 “워낙에 타고난 방광이 작은 데다 집중력이 부족해서 러닝타임이 130분을 넘는 영화는 대부분 거르기” 때문에 피터 잭슨 감독이 만든 <호빗> 3부작 영화를 보려면 총 474분을 쓰느니 고작 446쪽’밖에’ 안 되는 원작 소설을 읽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빌보가 왜 빌보인지 그 이유를 발견한다.

신발은 신지 않는다. 발바닥이 천연 가죽처럼 질기고, 머리카락과 똑같은 굵고 곱슬거리는 갈색 털이 발을 따뜻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재주 많은 갈색의 긴 손가락, 선량한 얼굴, 깊고 풍부한 웃음소리…. 가능하면 하루에 저녁 식사를 두 번 하고, 먹고 나서는 특히 큰 소리로 웃는다. (15쪽)

첫 장을 펼쳐 호빗족에 관해 설명하는 대목을 읽자마자 입을 틀어막았다. 세상에, 우리 빌보랑 똑같잖아! 빌보는 신발을 신지 않는다. 발바닥은 당연히 천연 가죽이고, 유독 커다란 발은 굵고 곱슬거리는 갈색 털이 뒤덮고 있다. 재주 많은 갈색의 긴 발가락, 선량한 눈망울, 깊고 풍부한 짖음…. 가능하면 내가 준 밥을 이미 해치웠다는 사실을 감춘 채 엄마에게 두 그릇째 저녁을 얻어먹으려 애쓰고, 식사 후에는 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배긴스(Baggins)는 우리말로 ‘골목쟁이네’라고 번역되는데, 온 동네 골목마다 머리를 쏙 들이밀고 탐방에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쟁이 빌보의 평소 산책지론과 꼭 닮은 수식어였다. 정말이지 빌보는 빌보 배긴스의 빌보였던 것이다!

 

출간되자마자 냉큼 구입한,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 레전드 100> 박스 세트를 잘근잘근 씹어먹은 자기 개를 보고 작가는 속상할 만도 한데, “그랬구나. 우리 개가 혼자 있는 동안 많이 지루했구나.” 하고 이해한다. 이 정도의 애정이라니!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개를 키우는 사람 특유의 개 냄새조차 기가 막히게 감지하고 피하는 사람이라(개 냄새를 처음 맡았을 땐 그 사람이 액취증이 있는 줄 알았을 정도로 깜짝 놀랐다), 동물을 키울 때 따라오는 이런 일들, 그러니까 분명히 동물이 어떤 악의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고 동물의 본능이기에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주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지 나로선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개한테 책값을 물어내라고 할 순 없으니까…). 아마 그런 마음을 묘사하기 위해 ‘사랑’이란 단어가 있는 것이겠지.

 

나처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삶이 어떤 건지 잘 모르는 이라도 빌보를 향한 애정이 담뿍 담긴 구달 작가의 글을 읽다 보면 포근한 느낌이 들 것이고, 이런 게 동물이 주는 위안과 따뜻함인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읽는 책들도 꽤 좋은 책 같아 보이고 흥미로워 보이므로, 읽을 만한 책을 찾고 있는 이라면 이 책도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겠다. 종이책 기준 176쪽밖에 안 되는,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도 매력적이다. 책 표지처럼 편안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에세이를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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