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조경숙, <액세스가 거부되었습니다>
나는 정보 기술(Information Technology; IT)을 전공한 여성으로서, IT 업계에 여성이 얼마나 적은 비율을 차지하는지, IT 업계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를 안다. 그래서 이런 주제의 책을 찾을 수 있다면 되도록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 책을 밀리의 서재에서 발견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내가 리뷰를 쓴 적 있는) <아무튼, 후드티>를 쓰기도 한 여성 개발진 조경숙은 IT 업계에서 소수자에 속하는 입장에서 테크 업계를 바라본다. 테크, 즉 기술이라 하면 만인에게 공평하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기술은 그렇게까지 공평하지 않다. 아니, 정확히는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이 그렇지 못하다. 그 기술을 사용해 얻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 때문일까? 인류의 삶을 편하게 해 주어야 할 기술이 실제로는 인류의 일부를 소외시키거나 불편하게 한다. 많은 이들이 몰랐거나, 또는 보지 않으려 했던 면을 저자는 하나하나 짚어낸다. 저자는 ‘들어가며’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을 이렇게 밝혔다.
이 책은 테크 업계가 말하지 않고 보지 않는 것에 주목한다. 메신저 앱에서 일어나는 디지털 성폭력은 IT 서비스를 기반으로 일어나고 있지만, 많은 테크 기업이 이러한 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서비스 제공자로서 책임을 지기보다 서비스를 오용한 악성 사용자를 탓한다. 이 외에도 실효성 없는 웹 접근성, 여성들이 잇따라 죽어감에도 제대로 구축되지 않는 젠더범죄 데이터 등 테크 업계가 그토록 추구하는 기술혁신은 약자들의 피해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
테크 업계가 방조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내부의 노동 문제도 있다. 신입을 채용할 때도 실력을 우선한다는 말은 어딘가 모순적이다. 코딩테스트나 사전과제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무급노동’이 이뤄지기도 한다. 업계 진입도 쉽지 않지만 살아남는 건 더 어렵다. 이 책은 테크 업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 기술 노동자와 언제나 무시되기 일쑤인 유지보수 노동자 들을 다룬다. 이 책을 통해 테크 업계와 IT 서비스 바깥으로 밀려나는, 말 그대로 ‘액세스가 거부된’ 장면을 독자 분들과 함께 조망하려 한다.
‘액세스가 거부된’ 장면들은 여성, 소수자, 또는 약자들이 그 대상이다. 예를 들어, 랜덤채팅 앱은 분명히 성적 착취를 위해 사용될 여지가 다분하며, 그래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너무나 쉽게 포식자들의 먹잇감이 된다.
시중에 랜덤채팅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는 앱들은 디지털 성착취가 일어나는 온상이나 다름없다. 랜덤채팅 앱을 통해 위기청소년을 꾀어내 강간하거나 성착취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2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 추세 및 동향분석〉에 따르면, 성매수 피해 청소년이 가해자를 인터넷 채팅으로 안 경우가 86.5%에 달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아동·청소년 성매매 환경 및 인권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 자료집에서도 랜덤채팅이 언급된다. 자료집에 따르면 미성년자가 성착취에 노출되는 방식은 스마트폰 채팅 앱이 59.2%로 과반을 차지했다. 여성가족부의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미성년 여성을 가장해 랜덤채팅 앱에서 2,230명과 직접 대화를 나눴고 결과를 기록했다. 이에 따르면 연구진이 대화를 나눈 이들 중 상대가 미성년인 줄 알면서도 대화를 시도한 자는 1,605명이었고, 이들 중 성적 목적으로 대화한 사람이 76.8%(약 1,232명)에 달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성가족부는 2020년 랜덤채팅 앱을 청소년유해매체로 지정하고 본인 인증을 강제하는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랜덤채팅 앱 서비스 제공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들은 자기 서비스 안에서 미성년자 성착취가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나는 2018년부터 약 3년 동안 십대여성인권센터에서 IT 지원단으로 활동했는데, 이 기간 중에 센터에서 진행하는 야간상담과 서비스 모니터링에 참관할 기회를 얻었다. 모니터링에 참관하며 살펴본 랜덤채팅 서비스는 성착취를 의도한 듯한 기능으로 가득했다.
먼저, 누구든 랜덤채팅 앱을 사용해 돈을 벌 수 있었다. 이전까지 나는 랜덤채팅 앱이 그저 상대와 대화를 나누는 정도에 그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랜덤채팅 앱에서는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만으로도 돈이 생겼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는 일할 수 없는 위기 청소년이라면 분명 혹할 만했다. 앱에서는 대체로 코인을 사용하는데, 코인이란 앱에서 쓰이는 화폐 단위로 쪽지나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사용된다. 채팅방을 열어놓은 사람은 누군가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코인을 얻을 수 있다. 코인은 실제 돈을 지불해 충전할 수 있고, 메시지를 받음으로써 얻는 코인 역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굳이 현금화하지 않더라도 코인으로 직접 치킨이나 피자, 햄버거 같은 음식을 구매하거나 문화상품권 또는 핸드폰 통신료로 교환할 수도 있다. 메시지를 한 번 받을 때마다 쌓이는 돈은 5~10원 사이다. 최소 10번은 메시지를 받아야 500원을 벌 수 있다. 그러니 랜덤채팅 앱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는 이들은 어떻게서든 상대방이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게 하기 위해 애를 쓴다. 성적인 사진을 보내거나 야한 농담에 응수해주는 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랜덤채팅 앱은 끊임없이 사용자를 유인하고 메시지를 나눌 수 있게끔 독려한다. 서비스 제공사는 그 대가로 코인 충전 시 발생하는 수수료를 얻는다.
랜덤채팅 앱에서도 ‘미성년자 성착취는 불법’이라는 안내 메시지가 수시로 공지된다. 성인 인증도 2020년에 여성가족부가 강제해 간신히 도입됐다. 최소한의 형식적 의무만을 지킨 것이다. 서비스 제공사들은 그저 서비스를 만들었을 뿐, 이를 악용하는 건 사용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랜덤채팅 서비스는 애초부터 대화가 오가야 수익이 나는 구조이기에, 그 안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든 제재하지 않는다.
나는 랜덤채팅 앱을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어서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돈을 벌 수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 때문에 그렇게 더러운 일들이 랜덤채팅 앱에서 일어나고 또 아직까지도 유지되는 거구나. 랜덤채팅 앱의 아이디어 자체는 낯선 이와의 자유로운 대화와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이상(理想)’에 부합할지 모른다. 하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이 이 앱을 성범죄를 위해 사용한다면, 개발진들은 양심적으로 그런 일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나? 도대체 돈이면 다 된다는 이 천박한 자본주의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내가 만든 앱을 누가 그딴 짓을 하는 데 악용한다고 하면 나는 너무 화가 나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고 노력할 것 같은데, 개발진들은 양심이 없나? 저자가 참여한 시절 IT 지원단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정말 너무나 뻔뻔한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학을 떼게 된다.
또한 최근에는 챗GPT(ChatGPT)의 혁신으로 인공지능에 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는데, 이 인공지능을 개발하기 위한 노동도 특정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인공지능 챗봇에게 적당한 대화 리액션을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자료가 필요한데, 이건 사람들이 하나하나 손수 정제해야 한다. 이런 일 자체를 데이터 레이블링(data labelling)이라 하고 이걸 하는 사람은 데이터 레이블러(data labeller)라고 하는데 대가가 형편없다. 내 친구도 부업으로 데이터 레이블링 일을 해 봤는데, 그야말로 ‘쫌쫌따리’ 알바라고 하더라. 저자는 이렇게 지적한다.
문제는 데이터 레이블러의 노동이 착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타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오픈AI는 챗GPT의 윤리적 기준을 높이기 위해 케냐 노동자들에게 시간당 2달러 미만의 급여를 지불하는 식으로 데이터 레이블링 작업을 외주했다고 한다. 케나 노동자들은 아동학대와 성폭력, 자해, 폭력, 증오, 편견 등 혐오 및 차별 단어를 걸러냈으며, 이 작업으로 정신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답변했다. 그들은 GPT-3가 “폭력적이고 성차별이거나 인종차별적인 발언까지 그대로 기술하는 문제가 있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해외에서 데이터 레이블링 노동이 제3세계에 싼값으로 전가되는 경향이 있다면, 국내에서 이 일은 주로 경력단절 여성과 미취업 청년을 대상으로 수행된다. 워낙 많은 데이터에 일일이 이름을 붙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디지털 눈알 붙이기’라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왔다. 영국의 노동연구그룹 오토노미의 선임연구원 필 존스는 《노동자 없는 노동》에서 이러한 노동 형태를 ‘미세노동microwork’이라고 개념화했다. 미세노동은 분명 일자리의 종류 중 하나지만, 이를 통해 개인의 성장이나 유의미한 경제적 보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특정 플랫폼을 통해 거래가 이뤄지기 때문에 정확히 데이터가 어떻게 공급되는지 공급사슬을 추적하기도 모호하다는 특징을 가진다. 미세노동은 복잡하게 중첩된 구조 때문에 바깥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비공식화된다.
테크 업계에 만연한 학습 문화는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때문에 IT 업계 노동자들은 부단히 배워야 한다는 사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되기 십상이라는 사실에 기반한다. 노동자가 자신의 개인적 성장뿐 아니라 커리어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건 멋져 보일지도 모르나, 그것이 기업의 의무(노동자가 필요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훈련 및 지도해야 할 의무)를 빼서 노동자에게 지우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특히 여성 노동자들은 이미 우리 사회 문화에서 (직업이 있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가사 노동을 하리라고 기대받기에, 애초에 가용할 수 있는 자유 시간 자체가 남성보다 적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주어진다는 시간이 모두에게 똑같은 건 아니다. 연령과 성별, 노동 유형과 강도에 따라 자유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특히 여성은 시간빈곤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 처해 있다. 이와 관련한 논문인 〈시간빈곤인의 노동시간 특성에 관한 연구〉는 이 같은 현상을 밀도 있게 분석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30대 여성의 시간빈곤율은 34.38%로, 30대 남성의 시간빈곤율인 25.63%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30대 여성에서 보이는 시간빈곤율은 20대 여성에 비해서도 높다. 20대 여성은 26.91%였고, 20대 남성은 17.07%의 수치를 보였다. 특기할 점은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시간빈곤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시간 부족에 시달리는 현상을 두고 연구자는 “육아/가사와 노동의 병행”을 원인으로 추측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에 노동자를 훈련시킬 의무가 있으며, 노동자들이 개인의 (기업 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자유 시간을 할애애 아등바등 ‘공부’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까지 언급해 주었다면 완벽했을 것 같은데, 조금 아쉽다.
테크 업계에 몸을 담은 여성이라면, 또는 테크 업계에 관심이 있거나 여성 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외에도 저자가 ‘젠더데이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언급하는 책,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의 <보이지 않는 여자들>은 나도 읽고 추천한 적 있다. 도시 개발을 하든, 의복을 디자인하든, 무엇을 하든 간에 젠더데이터는 꼭 수집해야 제대로 된 인사이트(insight)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다양한 분야에 걸친 예시를 풍부하게 들며 설명하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다시 한번 강력히 추천한다. 나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다른 관련 서적들을 많이 읽어 보고 리뷰를 쓸 예정이니 기대해 주시라(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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