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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아미,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by Jaime Chung 2023. 8.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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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아미,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나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를 낳고 싶다, 키우고 싶다는 생각은 단연코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고, 앞으로 그럴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이 내가 아이들에게 무정하다거나 잔인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는 아이니까 잘못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믿는다. 아이들이야말로 이 사회의 최약자이인데 이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가 대체로 인간에 대한 태도를 보여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강자에게 친절한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진짜 약자에게 다정하고 친절해야지.

그런 의미에서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을 읽었다. 우리 사회는 온라인상의 아이들을 어떻게 대할까,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상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어떤 경험하는지 알고 싶었다. 주변에 아는 어린 친구가 없어서 책으로 접하는 게 최선인지라… 🥲 저자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로서,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의 아이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연구했다.

 

아이들은 요즘 인터넷에서 흔히 아이들을 부르는 멸칭인 ‘잼민이’라는 말에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민성 꼰대들 사이에서 초등학생 같은 어린 연령층 사람들을 ‘잼민이’라고 부르면서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보편적으로 깔리게 된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민성 초등학생들이 생각 없이 말하는 걸 비판하면서 그런 말을 쓰는 것 같아요.

민성이는 지금 온라인에서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는 자신 같은 초등학생 이용자를 안 좋게 보는 시선이 흔하다고 의연하게 말했다. 민성이와 친구들이 받는 악플도 대부분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잼민이’들을 무시하는 ‘꼰대’들이 적는 것이라고 했다.

잼민이라는 말을 쓸 때 상대가 실제로 초등학생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개념 없는’ 상대를 비하하기 위해 사용한다는 점이 온라인에서 어린이들이 겪는 혐오와 차별을 짐작하게 한다.

잼민이는 온라인 공간에 어린이와 공존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담긴 표현이기도 하다. 잼민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 성인들은 온라인에 노키즈존을 만드는 셈이다.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조롱하는 표현을 들어야 하는 어린이들은 인터넷에서 자유롭게 표현하고 소통하는 데 장벽을 만난다. 아이들은 언제 어디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위축되어 온라인 공간에서 안전함을 느끼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아이들이 서로에게 혐오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아이들이 서로를 잼민이라고 부를 때에는 장난의 의미가 더해진다. 그러나 아이들은 경험상 상대가 나보다 지적으로 열등하거나 어리다고 단정 지으며 위계질서를 형성하고자 할 때 이 단어를 쓰면 된다는 것을 학습하고, 그토록 꺼리던 혐오 표현을 스스로 재생산한다.

개인적으로 ‘잼민이’라는 말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쓰지 않는데, 아이들이 이 표현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으니 다른 어른들에게도 알려 줘야겠다 싶었다. ‘된장녀’와 ‘개념녀’라는 혐오 프레임 단어를 겪어 본 사람으로서 그런 혐오를 재생산하고 싶지 않으니까. 어른으로서 좋은 모범을 보여야지.

 

보통 어른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요즘 아이들도 미디어를 비슷하게 경험할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 환경은 우리 때와 많이 변했다. 저자는 2000년대 초반에는 청소년들이 세대 배타적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으나, 요즘의 청소년은 폐쇄성이 최소화된 플랫폼 환경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한다.

연구자로서 처음 청소년을 만나 미디어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던 2004~2005년 무렵에는 이렇지 않았다. 자신의 홈페이지를 개설해 친구를 초대하고 서로 방문하는 온라인 문화 속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세대 배타적인 공간을 마련할 수 있었다. 내가 인터뷰를 위해 만났던 아이들은 온라인에서 어른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것은 채팅 메신저 프로그램 버디버디다. 날개 달린 연두색 신발 아이콘 디자인이나 당시 유행했던 ‘귀여니’ 문체처럼 특수문자와 기호를 섞어서 표현한 닉네임은 어른들에게 유치한 것으로 비쳐 성인 사용자 유입이 적었다. 그런 데다가 주 이용층이었던 청소년들이 은어나 이모티콘을 사용해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 버디버디는 차츰 또래 문화로 자리 잡았다.

2000년대 초반 아이들은 이런 식으로 온라인에서 스스로 통제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반면 지금의 어린이 청소년은 배타성, 폐쇄성이 최소화된 플랫폼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

플랫폼에 가입하는 이용자들의 연령층이 다양해지고, 활동 조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아이들은 많은 사람과 소통할 기회가 생겼지만, 또래만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플랫폼이 이렇게 변화한 것은, 플랫폼 운영 기업으로서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접속해서 오랜 시간 머물게 하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이용자의 가입이나 활동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성인 이용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플랫폼에서 과금을 유도하기도 편리해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을 낮추는 것이 가장 손쉬운 이윤 창출 수단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저자의 분석에 감탄했다. 그냥 무작정 ‘트위터, 인스타그램 같은 걸 어릴 때부터 접했으니 요즘 아이들은 힘들겠군’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는데!

 

이 외에도 아이들의 미디어 경험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는데 여기에서 다 소개할 수가 없어서 아쉽다. 요즘 아이들은 ‘좋페’나 ‘좋탐’(각각 ‘내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 주면 네 타임라인에 가서 메시지를 남겨 주겠다는 것이고, ‘좋페’는 ‘좋탐’과 같은데 타임라인 메시지가 아니라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내 주겠다는 뜻)을 한다는 걸 이 책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디에서 배울까. 요즘 아이들을 더 이해하고 싶은 이들, 아이들의 온라인 활동을 지도하고 도와주고 싶은 어른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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