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카라타치 하지메, <저는 왼손잡이도 AB형도 아니지만>
어릴 적부터 ‘남자가 되고 싶다’라고 바라 온 한 일본인 일러스트레이터의 솔직한 이야기. 종이책 기준 140쪽밖에 되지 않는 짧은 만화이지만 저자가 왜 남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를, 그리고 오랜 숙고 끝에 자신은 남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다는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달았는지를 담담히 잘 풀어냈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여성인 건 숨기고 싶다. 남성으로 보이면 기쁘다. 그럼 ‘나는 남자다’라고 확언할 수 있을까? 남자가 되면 해결될까? 이것이 ‘좋아! 돈 모아서 남자(완전체)가 되자!’를 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신체 성별에 위화감을 느끼며 자라왔기에 수술을 했는데, 막상 수술하고 나니 신체 성별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경험담을 접한 후 저자가 한 말이다. 저자는 자신이 ‘여성’이라는 게 싫다, 왜일까, 내가 여성인 것의 무엇을 싫어하고 있는 걸까, 등을 곰곰히 생각해 본 후, ‘성적 대상으로 보일 (소비될) 가능성’이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저자는 논바이너리인 데다가 에이섹슈얼이라는 이름표가 자신에게 제일 적절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시스젠더(cisgender, 자신이 인지하는 성과 생물학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로서, 저자의 경험에 공감한다거나 그를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감히 주제넘은 발언이 될 것이다. 다만 시스젠더라 해도 ‘여자니까 너는 무엇무엇해야 해’라고 강요받는 말을 듣는 것은 정말 짜증나고 폭력적인 경험이라는 데 공감하기 때문에, 만약 세상에 가부장제로 인한 폐해가 지금보다 적었다면 저자와 같은 경우도 적었을까, 상상해 볼뿐이다. 시스젠더 여성이 들어도 피가 끓는 이런 말을 논바이너리가 듣는다면 얼마나 괴롭고 힘들까. 논바이너리가 됐든 시스젠더가 됐든, 트랜스젠더가 됐든, 사람들이 편협한 성 고정관념을 모두 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각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없다면 정말 모든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책의 마지막 ‘마무리’ 장에서 “(사춘기를 겪고 계신 분은 특히) 자신의 성별에 대한 이런저런 결정을 서두르지 마세요…!!”라고 강조하는 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사춘기는 ‘나는 어떤 사람인지’가 만들어지는 시기”이므로 “만약 사춘기에 ‘난 남자가 좋고 귀여운 걸 좋아하니까 난 마음은 여자인가 봐’…라고 생각이 확실한 경우에도 나중에 바뀔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이거야말로 같은 일을 겪어 본 어른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 아닐까? 뭐든 성급한 결정은 위기를 초래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어릴 적에는 타인의 영향 때문에 잘못된 생각을 마치 자기 자신이 자유의지로 내린 결정인 양 받아들이고 주워섬기는 일도 얼마나 많은지. 되돌리기 어려운 일, 그러니까 성 전환 수술 같은 것은 성인이 된 후에 고민해 보고 결정을 내려도 늦지 않을 것 같다.
제목은 일본에서는 LGBT가 차지하는 비율(8%)이 왼손잡이 비율(11%)이나 AB형 비율(9%)과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내가 논바이너리인 사람들을 100% 이해하고 공감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해 그들의 입장을 듣고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 보고 싶었다. 다른 이들에게도 이 만화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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