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에밀리 헨리, <우리의 열 번째 여름>

[책 감상/책 추천] 에밀리 헨리, <우리의 열 번째 여름>

 

 

⚠️ 아래 독서 후기는 에밀리 헨리가 쓴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런 게 남사친이면 나는 남사친 없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수십 번도 더 한 생각이다. 에밀리 헨리는 내가 예전에 읽고 후기를 쓴 <Book Lovers>의 작가인데, 이 책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북튜버에게 추천받은 것이다. 리디 셀렉트에 올라와 있기에 읽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마음을 내서 읽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신성한 우정을 기만하는 자들의 이야기라니!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자. 일단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파피는 <R+R>이라는 여행 잡지에 다니며 고급스러운 여행기를 써내는 여행 작가인데,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자 사람 친구’ 알렉스와 매년 여름 여행을 가곤 했다. 알렉스로 말할 것 같으면, 파피와 같은 대학에서 만난 동향 사람이지만 성격은 거의 정반대이다. 파피는 여행을 좋아하고, 알렉스는 집 아닌 곳에서 자는 것도 싫어하지만 어쨌든 둘은 ‘친구’이고 매년 여행을 함께 떠난다. 문제는 2년 전 여름에 일어난 모종의 일로 인해 둘의 사이가 서먹해져 버렸다는 것. 파피는 올해 여름이 둘의 사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알렉스에게 여행을 제안하는데…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매년 여행을 같이 다녔고, (소설 속 현재 시간 기준) 올해 열 번째로 여름을 같이 보내는 사이이다. 나는 소설 초반부에 ‘도대체 2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죽고 못 사는 남녀가 우정이 틀어졌네 어쩌네 하는 거지?’ 했는데, 참 나… 처음 몇 년 정도는 그냥 친구였을지 몰라도 그다음부터는 분명히 친구 이상이었는데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도 상대에게 마음이 있었다. 이건 내 억측이 아니고 분명히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알렉스는 세라 토발이라는 여자를, 파피는 기예르모, 트레이 같은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었고, 심지어 파피가 당시에 사귀던 남자랑 알렉스, 세라, 이렇게 네 명이 더블 커플 여행까지 다녀왔다. 이게 무슨…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나는 리디 셀렉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메모들을 남겼다.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위에 내가 인용한 마지막 메모를 쓴 때가 소설 속에서 이미 7년 전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만난 지 한 3년쯤 됐던 시점에 이미 둘은 친구가 아니었다고!! 아니, 친구에서 사귀는 사이가 된다는 트로프(trope, 이 글 참고)는 나도 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둘이 사귀는 수준으로 행동하는데 각자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기만하는 것은 친구 사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누가 애초에 각자 사귀는 애인이 없는 사이에서 이성 사람 친구랑 단둘이 여행을 간단 말인가? 쌍방향 짝사랑 삽질도 정도가 있지. 애초에 이성 사람 친구라는 건 그렇게 애틋한 존재일 수가 없는 거 아닌가? 남사친이랑 하루 종일 전화를 한다거나, 정수리에 입을 맞춘다거나, 몸을 기대는 건 이미 친구의 범주를 벗어났는데 이 무슨… 내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건 아주 조금만 친밀한 행위(예컨대 물건을 전달해 줄 때 손끝이 살짝 닿는다는가)를 할 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느끼면서 그걸 숨기고자 애쓰는 점이라고! 이렇게 대놓고 친구 이상의 일을 다 하면서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하고 ‘그를 잃을까 두려워’ 운운하는 건 그냥 기만이지. ‘(이성 사람) 친구’인 상대에 대한 마음을 자각했으면 그냥 아예 당당하게고 뻔뻔하게 대시를 하든가 아니면 숨기려고, 그도 아니면 포기하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오해는 마시라. 이 책이 재미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유교걸이 이런 구질구질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 에밀리 헨리는 <Book Lovers>에서도 느꼈는데 도시녀-시골남이 서로의 다른 주거 지역 관련 취향을 가지고 갈등하다가 결국 남자 쪽이 여자를 더 사랑해서 도시녀와 함께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 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나 보다. 결국 <우리의 열 번째 여름>도 그런 패턴인 걸 보니. 개인적으로 나도 곧 죽어도 도시 체질인 사람이라 그런 여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특별히 이렇게 기만적인 관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나처럼 동방예의지국의 평범하고 대중적인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남녀 사이 친구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에… 세상에…’라고 혀를 차며 읽을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TBR(To Be Read, 읽을 책 목록)에 있던 이 책을 끝낸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리디 셀렉트에 올라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살펴보시라.

‘이런 게 남사친이면 나는 남사친 없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수십 번도 더 한 생각이다. 에밀리 헨리는 내가 예전에 읽고 후기를 쓴 <Book Lovers>의 작가인데, 이 책 역시 내가 좋아하는 북튜버에게 추천받은 것이다. 리디 셀렉트에 올라와 있기에 읽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마음을 내서 읽었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신성한 우정을 기만하는 자들의 이야기라니!

차분하게 이야기해 보자. 일단 기본 줄거리는 이렇다. 파피는 <R+R>이라는 여행 잡지에 다니며 고급스러운 여행기를 써내는 여행 작가인데, 그녀는 대학교 1학년 때 만난 ‘남자 사람 친구’ 알렉스와 매년 여름 여행을 가곤 했다. 알렉스로 말할 것 같으면, 파피와 같은 대학에서 만난 동향 사람이지만 성격은 거의 정반대이다. 파피는 여행을 좋아하고, 알렉스는 집 아닌 곳에서 자는 것도 싫어하지만 어쨌든 둘은 ‘친구’이고 매년 여행을 함께 떠난다. 문제는 2년 전 여름에 일어난 모종의 일로 인해 둘의 사이가 서먹해져 버렸다는 것. 파피는 올해 여름이 둘의 사이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알렉스에게 여행을 제안하는데…

<우리의 열 번째 여름>이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들은 매년 여행을 같이 다녔고, (소설 속 현재 시간 기준) 올해 열 번째로 여름을 같이 보내는 사이이다. 나는 소설 초반부에 ‘도대체 2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죽고 못 사는 남녀가 우정이 틀어졌네 어쩌네 하는 거지?’ 했는데, 참 나… 처음 몇 년 정도는 그냥 친구였을지 몰라도 그다음부터는 분명히 친구 이상이었는데 각자 애인을 사귀면서도 상대에게 마음이 있었다. 이건 내 억측이 아니고 분명히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알렉스는 세라 토발이라는 여자를, 파피는 기예르모, 트레이 같은 남자를 사귀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었고, 심지어 파피가 당시에 사귀던 남자랑 알렉스, 세라, 이렇게 네 명이 더블 커플 여행까지 다녀왔다. 이게 무슨…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어이가 없었는지, 나는 리디 셀렉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메모들을 남겼다.

이 소설은 현재와 과거 시점이 번갈아가며 나오는데, 위에 내가 인용한 마지막 메모를 쓴 때가 소설 속에서 이미 7년 전이라는 점을 상기하자. 만난 지 한 3년쯤 됐던 시점에 이미 둘은 친구가 아니었다고!! 아니, 친구에서 사귀는 사이가 된다는 트로프(trope, 이 글 참고)는 나도 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둘이 사귀는 수준으로 행동하는데 각자 그냥 ‘친구’일 뿐이라고 기만하는 것은 친구 사이라고 인정할 수 없다! 누가 애초에 각자 사귀는 애인이 없는 사이에서 이성 사람 친구랑 단둘이 여행을 간단 말인가? 쌍방향 짝사랑 삽질도 정도가 있지. 애초에 이성 사람 친구라는 건 그렇게 애틋한 존재일 수가 없는 거 아닌가? 남사친이랑 하루 종일 전화를 한다거나, 정수리에 입을 맞춘다거나, 몸을 기대는 건 이미 친구의 범주를 벗어났는데 이 무슨… 내가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이야기에서 좋아하는 건 아주 조금만 친밀한 행위(예컨대 물건을 전달해 줄 때 손끝이 살짝 닿는다는가)를 할 때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을 느끼면서 그걸 숨기고자 애쓰는 점이라고! 이렇게 대놓고 친구 이상의 일을 다 하면서 정작 사랑한다는 말은 안 하고 ‘그를 잃을까 두려워’ 운운하는 건 그냥 기만이지. ‘(이성 사람) 친구’인 상대에 대한 마음을 자각했으면 그냥 아예 당당하게고 뻔뻔하게 대시를 하든가 아니면 숨기려고, 그도 아니면 포기하려고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오해는 마시라. 이 책이 재미는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의 유교걸이 이런 구질구질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 에밀리 헨리는 <Book Lovers>에서도 느꼈는데 도시녀-시골남이 서로의 다른 주거 지역 관련 취향을 가지고 갈등하다가 결국 남자 쪽이 여자를 더 사랑해서 도시녀와 함께하기 위해 도시로 이사 오는 이야기를 좋아하나 보다. 결국 <우리의 열 번째 여름>도 그런 패턴인 걸 보니. 개인적으로 나도 곧 죽어도 도시 체질인 사람이라 그런 여주인공에게 이입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특별히 이렇게 기만적인 관계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나처럼 동방예의지국의 평범하고 대중적인 (적어도 그렇다고 믿고 싶다) 남녀 사이 친구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세상에… 세상에…’라고 혀를 차며 읽을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TBR(To Be Read, 읽을 책 목록)에 있던 이 책을 끝낸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리디 셀렉트에 올라와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살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