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황선우, 김혼비,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
가족이나 친구 등 친한 사이라면, 그들만이 아는 농담(in joke)이 있게 마련이다. 두 사람 또는 그 집단이 경험한 일과 관련돼 있어서, 상대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야만 이해하거나 웃을 수 있는 그런 농담 말이다. 나는 그런 것이 친근한 사이의 증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그런 것이 저절로 쌓여서, 일종의 ‘추억 팔이’만으로도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때가 오는데, 나는 그런 것이 퍽 좋다.
이 책은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황선우 작가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무튼, 술>과 <전국축제자>의 김혼비 작가가 1년여간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것이다. 요즘은 서간체 소설도 잘 보지 않아서 남의 편지를 읽는다는 점에 조금 설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이 쓴 건 뭐든 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지만.
그리고 두 여성 작가들이 주고받은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이 둘이 서로 쌓아가는 ‘그들만의 농담’을 발견했고, 그래서 무척 훈훈했다. 어느 한쪽이 한 이야기를 다음 사람이 그다음 편지에서 이어받아 가거나 언급하는 것인데, 그게 참 귀엽고 다정해 보여서 너무 좋더라. 예컨대, 황선우 작가가 첫 편지를 쓰기 위한 영감을 받으려고 부산에 가서 리코더를 불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김혼비 작가는 대부도 앞바다에 가서 “무력하게 화면을 노려봤다가, 애꿏은 목탁을 조용히 두드렸다가, 화면-목탁-화면-목탁-화면을 무한반복하다가, 결국 한 자도 못 쓴 채로 역시 못지않게 새하얬을 백기를 흔들며 노트북을 덮었”다고 실토한다. 아, 귀여워라 😊
김혼비 작가가 번아웃 때문에 힘들어하던 시절, 오타 실수가 유난히 많았는데 “그 분야의 대가로 자리매김했다”를 “그 분야의 대갈로 자리매김했다”라고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이걸 보면서 나도 깔깔 웃었지만 황선우 작가의 답장도 센스 있었다.
축구장에는 경기를 하러든 보러든 더 자주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더 많은 오타를 발견해내고 더 많은 실수를 웃어넘기기를, 그래서 저에게 보내는 편지에 적어주기를 바랍니다. 그러는 사이에 혼비씨는 분명 휴식계의 대갈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거예요.
2022년 10월 3일
황선우 드림
귀여운 이야기 하나만 더. 황선우 작가가 <논어>를 필사하는데, 개중에 “君子食無求飽 居無求安 군자식무구포 거무구안: 군자는 먹는 것에 대해 배부름을 추구하지 않고, 거처하는 데 편안함을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부분이 있는 걸 발견했다며, “깜짝 놀라 분개하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의 그 동거인인) 김하나 작가에게 이 내용을 전했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군자 너무 별론데? 그거 하지 말자, 군자비추.” 그 뒤로 군자비추君子非推는 우리집의 유행 사자성어가 되었습니다. 특히 맛있는 것을 배불리 먹거나 한껏 게으름을 부리면서 행복해할 때는 군자가 아닌 일개 소인이라 다행스럽습니다.
이 책은 사실 내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이웃님인 HEY님께 선물로 받은 것인데, 이 책이 두 작가의 다정한 편지 모음집이라는 사실에 견주어 보면 얼마나 적절한지 감탄스러울 정도다(그리고 나는 방금 이 문장을 통해 나를 작가분들과 동일선상에 올려놓았다, 후후). 이 책을 혼자 읽어도 물론 좋지만, 친애하는 친구 또는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은 이와 같이 나누어 읽으면 더 좋을 것 같다. 다시 한번 HEY님께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책 선물 너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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