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최지은, <엄마는 되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낳지 않기로 결정한 18명의 여성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책. 저자 역시 딩크(Double Income, No Kids;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족으로 살고 있는 여성이라서, 그들과 완전히 다른 시야에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같은 관점을 바라보기에 나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아이가 있는 사람, 그것도 남성이었다면 아마 이들을 현재 저자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터뷰 모음집은 정말 안 좋아하는데 (그냥 취향이 아니다), 이 책은 아주 명확한 주제로, 명확한 공통점을 가진 인터뷰이들을 인터뷰했기에 그냥 저자가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처럼 쓰였다. 인터뷰이들의 대답을 한 명 한 명 각각 보여 주는 게 아니라, 한 꼭지 내에서 그와 관련된 인터뷰이의 대답들을 몇 명만 보여 주기 때문에 내게는 아주 자연스럽게 보인다. 게다가 저자가 인터뷰이들에게 아주 적절한, 때로 무척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지는데, 그 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위에서 말한 이 책과 저자의 장점을 모두 보여 주는 예시를 하나 들자면, ’임신 중지에 대한 생각’이라는 꼭지다. 어떤 인터뷰 참가자는 ‘얼마 전에 생리가 늦어지는 바람에 임신 테스터를 사면서 너무 불안했다. 다행히 임신이 아니었고, 내가 이 정도로 불안해할 사람이라면 안 낳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대답했다. 저자는 그 말에 대해 이렇게 썼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사람이 자신을 믿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나는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것만큼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수습하기 어려운 문제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었거나 결혼한 여성이 임신한 경우, 그 자신이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감정은 놀라울 만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다. 출산은 결혼의 묶음 상품 같은 것이며, 이를 회의하거나 거부하는 여성은 정상을 벗어난 혹은 천륜을 저버리는 존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임신 중지가 형법상 ‘죄’인 나라에서라면 여성은 범법자가 될 위험마저 무릅써야 한다. 가족을 비롯해 그를 둘러싼 사회의 통념은 여성이 스스로 판단할 시간을 주지 않거나 판단하지 못하게 밀어붙인다. 그러나 내가 만난 이 여성은 고통에 직면하며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그가 자신의 삶을 지켜낸 방식이 존경스러웠다.
나 역시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아주 어릴 적부터) 결정했기에, 인터뷰어들이 하는 말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중 아래에 인용한 이 말은 특히 ‘붐 업’을 눌러 주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가(또는 아빠가) 되어 본 사람만이 아는 것이 분명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없으면 전혀 성숙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 성숙도는 자녀 유무에 달린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자주 되돌아보는지, 성장하고 나아가려는 의지가 있는지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부모가 된다고 저절로 성숙해진다면 진상 부모들이 왜 있겠어.
아이 엄마들이 나한테 그렇게 ‘엄마가 안 돼봐서 모른다’라고 하는데, 되어보면 내가 뭔가 더 알게 될까? 싶기도 하죠. 그런데 그 생각을 차단해주는 건 뭐냐면, 만약 내가 엄마가 되어서 지금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세계가 이 모양 이 꼴일까? 세상의 다수가 부모잖아요. 그들이 결정하고 만드는 세상이, 제가 볼 때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그런데 부모로서 자신들은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 여린 존재를 보호하며 책임을 갖는 존재가 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면 너무 포장하는 느낌이에요. 성숙보다 오히려 미성숙해지는 면이 있고, 너무 가족 중심적으로 시야가 좁아지기도 하거든요.
저자 본인이 무자녀로 사는 삶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해 보고 또 인터뷰를 위해 많은 조사를 했기에, 이 주제와 관련된 다른 도서들이 종종 언급되기도 한다. 덕분에 (내가 이미 이전에 읽은 책 한 권을 제외하고도) 두어 권을 보관함에 추가할 수 있었다. 책 한 권을 읽었을 뿐인데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이 고구마 덩굴처럼 줄줄 계속 나오다니,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ㅎㅎ
마지막으로 이 책의 후기를, 나 역시 100% 동의하는 이 인용문으로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절대로 어머니가 될 일은 없을 것이고, 나는 그 사실에 전혀 불만이 없다. 아니, 오히려 만족한다. 내가 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니까 나 스스로를 완벽하게, 끝까지 지지해 줄 것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가(려)는 다른 여성들도.
다시 《나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로 돌아가자면, 뒤표지의 문구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가 쓴 서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그는 ‘이모로 타고난 우리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로 나에게 거듭 소외감을 느끼게 했지만, 어쨌든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내 앞에 아기가 놓여 있을 때면 안심해도 좋다. 나는 그 아기를 잘 어르고 놀아주며 사랑해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아이를 사랑해주면서도 나는 가슴으로 알 수 있다. 이건 내 운명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운명인 적이 없다는 것을. 이것이 진실임을 알기에 나는 묘한 환희를 느낀다.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무엇이 될 수 없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한 법이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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