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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최지선, <여신은 칭찬일까?>

by Jaime Chung 2023.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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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최지선, <여신은 칭찬일까?>

 

 

개인적으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여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해 마시라. 여돌들에게 어떤 개인적이 감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딱히 그들을 보면서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해 본 적 없다. 아마 여돌들은 얼굴과 몸매가 밀리미터 단위로 분석되고, 어디에서 무얼 하든 욕을 먹기 십상이라는 현실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여돌들이 부르는 노래는 대체적으로 남성 대중을 겨냥한 것이고, 그래서 그런 불편한 상황에 나를 놓아 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없다. 어차피 내가 여성으로서 일상에서 그런 상황들을 마주치는데, 그것보다 좀 더 전면에서 그것을 직면하는 이들을 부러워할 리가.

이 책은 여자 아이돌의 특수성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을 다방면으로 분석한다. 대중문화 비평가인 저자는 여돌에 큰 애정이 있는 게 분명한데, 그렇지 않았다면 여돌에 큰 관심이 없는 나도 흥미롭게 읽을 정도로 책을 잘 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를 요구로 하는 분석은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하지, 암…

 

여돌에 관한 흥미로운 분석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퀸덤⟫에 비해 ⟪킹덤⟫에 출연한 그룹의 멤버 수가 더 많았으니 무대의 스케일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다. 남돌과 여돌이 무대로 구분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공간의 사용에서 남돌은 개방적이고 여돌은 폐쇄적으로 보이는 것은 단순히 착시인가. 이는 아이돌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 철학자 아이리스 영은 여성이 몸을 이용하고 공간을 인식하는 일반적인 양상을 설명한다. “여성은 자신이 놓인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움직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아니라, 무언가에 둘러싸인 제한된 공간으로 인식한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공간과 자신의 관계를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것으로 보는 남성과 달리, 여성들은 자신을 공간적 주체로 인식한다기보다 공간에 고정되어 있는 대상처럼 인식한다.”
공간과 몸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과연 여성의 본질적인 성향 때문일까. 무대와 뮤직비디오 등 연출이 개입되는 공간 영역은 대개 남성 전문가에 의해 주도되는, 또는 그들에 의해 학습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떠올려야 한다. 다시 말해 여성의 공간 인식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역시 사회 문화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최근 용법으로 요정은 남녀 불문하고 ‘장인’이나 ‘달인’처럼 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리킬 때도 쓰이는데, 아이돌과 팬덤 문화에서 용례를 찾자면 ‘엔딩 요정’이 있다. 무대의 엔딩 장면에 포착되어 화제가 된 멤버를 뜻한다. 이런 의미의 요정 또한 미사여구일 뿐이니 과민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과연 그럴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이 인간이 아닌 존재라는 점이다.
’요정화된 소녀’는 통상적이고 관념적인 소녀상(像)에서 비롯한 것이다. 소녀는 어린이에서 어른으로 가는 과도적 존재이기에 아직은 성적으로 미숙하지만, 향후에는 완숙한 상태로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때문에 소녀는 여성이자 여성이 아닌 존재이고, 취약하고 순진하지만 이상적인 존재가 되기도 한다. 불완전하고 분열적인 존재로서의 소녀상은 여돌 그룹이 가장 많이 채택하는 이미지다. 관능적인 섹슈얼리티와도, 거칠고 강력한 걸 크러시와도 거리가 있는데, 이것은 통상 소녀에게 요구되는 이미지와 거의 일치한다.

범죄를 소재로 글을 쓰는 작가 토리 텔퍼에 따르면 “괴물﹒뱀파이어﹒마녀﹒동물 등에 비유해 비인간화하는 것은 결국 여성을 덜 위협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략”이다. 많은 경우 여돌은 괴물 자체를 전면화하지 않으며 이를 한시적이고 일회적인 퍼포먼스 소재로 국한한다. 이 과정 속에서 여돌은 무해하고 온순한 존재로 비친다. 그 위반의 한계점 안에서 여돌들은 분투해야 한다.

 

나는 특히 이 부분이 좋았는데, 맥락을 제공하자면 이렇다. 여돌은 대체로 크게 ‘청순’과 ‘섹시’ 콘셉트로 구분되고,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 다양한 구분을 시도하더라도, 이런 유형화 작업에 음악적인 요소는 많이 반영되지 않는다. 저자 표현대로, “음악성이나 실력이라는 지표는 여돌 그룹의 계보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남돌들은 ‘창작돌’, ‘작곡돌’처럼 음악 실력과 관련되 수식어가 더 적극적으로 적용된다”.

여기서 유비할 만한 사례는 셰프에 대한 한 접근이다. 가정에서 주방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레스토랑에서 셰프의 지위는 남성이 더 많이 차지한다. 이 현상을 토대로 한 연구서, 데버러 A. 해리스﹒패티 주프리의 <여성 셰프 분투기>에 따르면 여성의 요리는 사적이고 가정적인 것으로 한정되고, 남성의 요리는 요리 학교와 유명 레스토랑 같은 공적인 공간에서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공신력을 획득했다. 이는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여성의 영역을 사적인 공간(집)에서 하는 소극적인 활동(피아노 연주)으로 한정한 것과 흡사한 과정이다.
텍사스 주립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요리 전문 잡지에 실린 기사 2천 건 이상을 분석한 결과, 여성 셰프의 요리를 다룬 글이 요리 과정이나 기술이 아니라 음식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며, 그 특징을 표현하는 형용사도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지적한다. “여성 셰프에서 주어지는 찬사 역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의 특성(즉, 특정 메뉴를 구상할 때 필요한 창조성이나 기술)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오직 요리 그 자체(기자의 눈앞에 놓여 있는 요리)에만 한정된다. 여성 셰프의 요리에 대한 형용사는 주로 “품격 있는” “꼼꼼한” “단순한” “깔끔한” 등으로 요리의 생산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다. (…) 여성 셰프가 만든 요리의 맛을 묘사할 때는 “가벼운” “부드러운” “씹는 맛이 있는” 같은 단어가 사용된다. (…) 이런 기사에서 초점은 요리를 만드는 사람에서 요리를 먹는 사람으로 옮겨간다.”

 

여돌은 덕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남돌은 몇 번 (여러 번…) 마음에 품었던 이로서, 여돌을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특히 내가 바로 위에 언급했듯, 여돌들은 실력이나 음악성 면에서 언급되는 일이 남돌보다 적다는 것, 여성이기 때문에 이렇게 차별받는 점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돌들 모두 힘내기를. 여돌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 대중문화를 비판적으로 보고 싶은 분들, 여성적 관점을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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