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융희, <웹소설 보는 법>
<웹소설 보는 법>은 웹소설의 ‘코드’, 그러니까 흔히 장르 소설 안에서 통용되는 규칙이 낯선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흔히 ‘회빙환’이라고 줄여 말하는 회귀﹒빙의﹒환생이라는 소재나 아포칼립스물, 로맨스 등의 다양한 장르 소설을 간략히 설명한다. 꽤 정확하게 핵심을 짚어내서, 이미 장르 소설을 읽는 데 따로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독자일지라도, ‘오, 맞아. 이 장르는 이게 핵심이지’라며 공감할 수 있다.
일단 저자는 웹소설을 ‘읽는’, 또는 저자의 표현대로 ‘감각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필요를 이렇게 설명했다.
장르문학은 독자가 아무 사전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오로지 소설의 내용만으로 소통하는 문학이 아니라, 특정한 문법을 관습적으로 공유한 상태에서 작가와 독자가 함께 대화하는 일종의 놀이와 같은 문학을 일컫습니다. 그렇기에 오로지 작가의 개인적인 삶과 강렬한 감정만을 풀어내는 데 집중하는 첫사랑 이야기는 웹소설 형태로 선보이기 어려운 것이지요. 이야기 못지않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와 관습 역시 중요합니다.
이 시점에서 웹소설로 유통되는 장르문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장르’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어? 모두 같은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웹소설과 장르문학은 서로 다른 개념입니다. 웹소설은 소설이 연재되는 형식과 기술적인 형태를 일컫는 용어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기반으로 편당 4,500자에서 5,000자 이내의 글을 나누어 판매하는 형식을 말합니다. 그리고 웹소설 형태로 유통되는 서사 양식 중 환상성을 토대로 하며 상상력을 가미한 이야기의 체계를 소위 장르문학이라고 부릅니다.
이 시대의 장르문학은 환상을 다루는 다양한 하위범주의 대중소설을 합쳐 부르는 용어로 고정되었습니다. 쉽게 말해 판타지, 로맨스, SF, 추리, 공포, 스릴러, 호러, BL, 무협, 좀비 등 특정한 소재나 서사의 양식을 정형화된 코드를 활용하여 관습적으로 서술한 글을 장르문학이라 부릅니다.
그러고 나서 이런 장르문학에 익숙해지는 방법은 무작정 소설을 많이 읽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장르가 형성되어 온 과정을 들여다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장르의 기호는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존재들’이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테다. 난 왜 여태까지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놀라워하며 읽은 ‘국내 장르문학의 태동’이라는 꼭지는 정말 흥미로웠다. 내 블로그 이웃분들 중에 추리물 같은 장르문학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몇 분 계시기에, 그분들이 관심 있어 할 부분을 한번 가져와 보고자 한다. 아래를 보시라.
국내에 가장 빠르게 소개된 외국 장르소설은 SF와 추리소설이었습니다. SF 중에서는 「태극학보」를 통해 일본 유학생들이 1900년대 초에 들여온 쥘 베른의 소설 『해저 2만 리』를 꼽을 수 있고(처음엔 ‘해저여행기담’이라는 제목으로 들어왔습니다), 추리소설 중에선 ‘괴도 뤼팡’ 시리즈로 유명한 모리스 르블랑의 『지환전』이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지요. 사실 중요한 건 어떤 작품이 들어왔느냐가 아니라 이러한 작품들이 왜 들어왔고 어떻게 소비되었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SF가 국내에 들어온 배경은 당시 일제강점기였던 사회의 현실과 맞물려 있습니다. 서구 근대 기술과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일본의 사례를 보고 일본 유학생들은 조선에도 과학 기술 발전이 필요하다는 걸 절감했습니다. 유학을 기본으로 하는 당대 지배 이데올로기를 거스르지 않고 서구 문화를 들여올 방법을 모색하던 중, 기술과 학문을 바로 가져오는 대신 소설을 가져오기로 한 것이지요.
1920-1930년대 염상섭, 김동인, 김내성 같은 작가들이 추리소설을 창작하며 추리 장르문학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계기 역시 우리나라의 비극적 시대 배경과 연결됩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땅은 대부분 일본인 지주의 소유였고, 농작물을 서리하는 어린아이들이 가혹한 처벌을 받자 ‘치안’이라는 개념을 교육할 필요가 있었거든요. 당시 과학 수사 기록 등을 다루는 「별건곤」이라는 잡지가 등장해 자연스럽게 과학 수사와 탐정의 존재를 부각하며 추리소설의 토대를 다지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국내의 초기 장르문학은 암담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외국에서 이식된 문화의 집합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장르문학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장르문학은 특유의 환상성을 이용하여 비극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는 점에서 특별했지요. 문학 작품 속 환상들을 보며 당대 독자들은 어려운 현실을 버티고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었습니다. 현실 사회의 불의와 부조리를 환상적인 형상으로 기호화하는 서사 구조는 이후 우리나라 장르문학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지요.
물론 장르문학 속 환상이 늘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이후로도 군부정권 등 여러 사건이 얽힌 격동의 근현대를 거쳤으니까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였던 만큼 문학이 사회와 어떻게 맞닿을 수 있느냐, 그리고 이 사회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끊임없이 질문하며 리얼리즘 문학, 참여문학 논쟁과 문학의 진정성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상의 존재나 세계, 형식을 이야기하는 환상적인 장르문학이 국내 문학계에서 사랑받기는 여의치 않았지요.
저자는 로맨스 소설을 ‘사랑을 통해 성장하는’ 시스템이라고 핵심을 콕 집어 설명했는데, 이뿐만 아니라 회귀물 소개에서 보여 준 통찰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앞서 회귀물에서 주인공들이 부나 권력을 얻는 과정을 예시로 들었지요.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부는 부차적인 보상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는데, 실제로 우리는 과거의 삶에서 ‘돈’을 잃어버린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소유를 해야 가능합니다. 웹소설의 주인공들 역시 과거에 부유했다는 설정은 거의 없습니다. 아무래도 과거에 결핍이 있는 주인공이 다양한 성공을 거머쥐는 과정을 그리는 편이 훨씬 수월하고 쾌감도 크기 때문이겠죠.
여기서 주목해야 할 현대 웹소설 독자의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그들은 과거에 부와 권력을 소유한 적은 없었지만 ‘부와 권력을 소유할 수 있었던 기회’만큼은 소유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를 바탕으로 독자는 ‘내가 저 주식이 오를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내가 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고 안타까워하며 웹소설을 읽고 회귀하여 성공한 주인공으로부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겁니다.
무척 신기한 심리 아닌가요. 실제로 우리가 과거에 이런 지식을 알았다 하더라도 손쉽게 돈을 벌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지요. 설령 기적처럼 10년 전으로 회귀한다 해도 비트코인으로 벌 수 있는 돈은 극히 제한적일 겁니다. 정말로 큰돈을 벌고 싶다면 비트코인에 모든 가능성을 걸고 큰 금액으로 대출을 받아 투자자금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겠죠. 거래한 비트코인을 안전하게 수익화하고, 그 돈을 투자하며 생활 수준을 서서히 끌어올리기 위해 합리적으로 소비하는 법이나 거시경제학에 대한 지식도 필요할 테고요.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란 그 당시 정말로 내 손에 있던 것이 아니라 미래에 소급적으로 생겨난 미련의 부산물인 셈입니다.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기만 하면 돈을 벌 기회가 생기고 인생이 혁신적으로 바뀌리라는 희망을 갖는 것, 이것이 웹소설이 보여 주는 가장 대표적인 판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판타지가 현현되는 순간,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세계는 끊임없이 수정되고, 서사가 마무리될 때에는 이미 회귀 이전의 세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화한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실패만 경험하던 세계가 주인공에게 완전무결한 성공만을 안겨 주는 세계로 바뀌고, 다시 성공의 기억들로 누적되어 더더욱 긍정적으로 변모한다는 건 회귀물이 자기계발서의 구조를 넘어서 현실 세계에 대한 일종의 비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장르 소설을 분류하고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우리나라의 장르문학 역사를 살펴보는 부분은 이미 웹소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나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다. 사람들이 왜 로맨스 장르를 읽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근대의 가정비극과 연애담의 계보”까지 살펴본다니 정말 너무 쩔지 않아요!?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쟁의 정당성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선전하기 위해 경성방송국을 만들어 라디오 방송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당시 조선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것은 가정비극을 다룬 무대극 실황 중계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조선은 위안부와 강제 징용 등 다양한 비극을 실시간으로 겪는 주체였고, 이러한 라디오 실황극에서 재현된 가정의 이야기는 그들이 몰입해 울분을 터뜨릴 수 있는 가장 큰 오락거리이기 때문이었죠. 오죽하면 라디오 실황극이 방송되는 시간엔 라디오가 있는 전파상으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거리가 한산하고 조용해졌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해방 이후, 미군정 역시 라디오를 일본과 같이 공보 매체로 사용하려 했지만 일제강점기부터 오락물로 라디오를 사용한 청취자들과 충돌했습니다. 1946년 미군정은 대폭적인 개편을 통해 라디오 연속극을 신설했고, 1956년 『청실홍실』이라는 라디오 드라마가 공전의 인기를 얻습니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삼각관계를 다룬 이 드라마는 이후 인기에 힘입어 영화, TV 드라마까지 만들어졌지요.
영상 매체를 중심으로 한 연애오락물 시장에 종이책이 들어온 건 1980년 무렵입니다. 일본에서 수입한 캐나다의 할리퀸 문고판을 중역해 해적판 ‘삼중당 하이틴 로맨스’ 시리즈를 출간했는데 이것이 중고등학교 여성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했거든요. 서구의 개방적인 연애관과 환상적인 남녀들의 관계에 독자들은 푹 빠졌습니다.
흥미롭게도 1980년대는 통금 정책이 풀리고 3SScreen, Sex, Sports 지원에 힘입어 호스티스 영화와 에로티카의 열풍이 부는 시기였습니다. 이때 영화들은 여성의 욕망과 신체를 긍정하고 개방하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사고관으로 여성의 욕망을 억압하고 죄악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할리퀸은 그러한 가부장적 사고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랑의 관념을 전달했고, 여성 독자들에게 보다 안전하고 진취적인 사랑 이야기를 보여 주었죠.
종이책 기준 152쪽밖에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읽는 내내 흥미로웠고 재미있었다. 이미 웹소설을 취향껏 읽는 독자들도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을 듯. 위 인용문을 보고 흥미가 생긴다면 츄라이 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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