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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유즈키 아사코, <유즈키 아사코, <버터>

by Jaime Chung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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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유즈키 아사코, <유즈키 아사코, <버터>

 

 

2009년, 일본을 떠들썩하게 했던 ’꽃뱀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100kg이 넘는 고도 비만의 몸매에 수수한 얼굴을 가진 키지마 카나에는 요리 실력과 가정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스무 명의 남자와 사귀면서 남자들에게 돈을 받아내고 살해한 혐의를 받았다. 재판에서는 결국 3명에 대한 살인이 인정되었고, 사형이 확정되었다(읽어 볼 만한 기사). 현재 복역 중인 카지마는 놀랍게도 구치소 안에서 연애도 했고 결혼도 했다(이 점은 이 책을 번역한 권남희 씨의 에세이 <혼자여서 좋은 일>에도 언급되고, 이 책의 역자 후기에도 실려 있다). 일본의 소설가 유즈키 아사코는 이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버터>라는 이 소설을 썼다.

 

실제 인물인 키지마 카나에는 이 소설에서 ‘가지이 마나코’라는 이름으로 새 삶을 얻었다. 극 중 마나코 역시 키지마와 마찬가지로 뚱뚱한 몸에 예쁠 것 없는 얼굴을 가진 여자다. 사실 예쁠 것 없다는 말은 예의 바르게 표현한 것이고, 어릴 적부터 그녀에게 눈길을 주는 남자가 없을 정도로 못생겼다. 하지만 그녀는 요리 실력과 ‘남자들을 돌보아 주는 여자’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이런저런 남자들과 교제를 하고, 돈을 받아 낸다. 나이를 먹고도 여전히 자기 앞가림을 못하는 남자들에게 요리를 해 주는 것, 그들을 돌보아 주는 것,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것, 그것이 피해자인 남자들에게는 크나큰 ‘여성성’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기에 저자가 이 사건을 소설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이 사건을 통해 이 사회가 여자들에게 강요하는 여성성이 얼마나 우스운 것인지를 보여 주고 싶어서인 듯하다.

줄곧 외롭게 살아서 노후를 돌봐줄 사람이라면 아무리 못생겨도 좋았다.

밥을 해줄 가정적인 여자라면 아무라도 좋았다.

뚱뚱하긴 하지만 조신한 규수 타입이다. 세상 때가 묻지 않고 순수했다.

사망한 피해자들이 한결같이 가까운 사람에게 한 말이다. 가지이 마나코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 거액의 돈을 바친 것은 확실한데, 제삼자에게는 어째선지 가지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법정에서는 검사 측이 알리바이나 증거는 뒷전으로 하고, 가지이의 정조관념을 되풀이해서 비판하여 논점이 몇 번이나 바뀌고, 심리審理는 난항을 겪었다. 순조롭지 못했다. 증인 중 한 명인 여성 간병인에게 성희롱에 가까운 신문을 한 적도 있다. 사건에 관한 논쟁은 남녀 간 의견 대립으로 번지고, 어느 남성 평론가는 여성혐오 발언을 해 비판받아 사죄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소설은 가지이 마나코를 취재하려는 주간지 기자 리카의 관점으로 진행된다. 가지이는 리카에게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대신 먹고 와서 맛을 이야기해 주면 취재를 허락하겠다고 한다. 그녀는 가지이를 둘러싼 논쟁이 여성 혐오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가지이에게 인터뷰를 받아내 기사를 쓰고 싶어 하기에 가지이가 시키는 대로 한다. 리카는 결혼하고 일을 쉬면서 임신하려고 노력 중인 친구 레이코에게도 가지이와 음식 이야기를 하는데, 레이코는 리카가 너무 가지이에게 압도당해 휘둘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의 제목이 <버터>인 것은, 가지이가 버터를 풍부하게 써서 요리하는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리카가 가지이를 처음 면회하러 갔을 때부터 가지이는 ‘진짜 음식을 모르는 사람과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라는 투로 나온다.

“아, 저기, 야채주스하고 비타민 음료하고 마가린 정도일까요. 가지이 씨처럼 요리를 잘하지 못해서……. 워낙 손재주가 없어서 집안일은 제대로 하는 게 없답니다. 허구한 날 일, 일, 일뿐이죠. 블로그 보고 정말 놀랐어요. 일상을 그렇게 소중하게 아끼며 생활하다니 대단하시더군요…….”

스스로도 뻔뻔하다고 생각했지만, 입에 발린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찌된 노릇인지 그녀와 함께 있으니 절로 동화되어 무슨 찬사라도 바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진한 눈썹이 위로 움직였다.

“저기, 지금, 마가린이라고 했어요?”

“네, 버터보다 칼로리도 낮고……. 아, 콜레스테롤이 낮아서 몸에도 좋지 않나요? 게다가 요즘 버터 구하기가 힘들기도 하고요.”

“문제는 버터 맛도 잘 모르면서 버터는 좋지 않다고 단정 짓는 거예요. 마가린이 훨씬 몸에 안 좋은데. 그런 모조품……. 트랜스지방산 덩어리라고요. 알겠어요? 원래 유제품은…….”

가지이 마나코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떨리며, 마가린이 얼마나 심각한 독물인지 설교를 늘어놓았다. 눈동자가 탁해지고 미간에 주름이 졌다. 아, 그렇다, 그녀의 블로그가 이런 식이었다. 요조숙녀로서 갖추어야 하는 조신함과 교양에 관해 끈질기게 얘기하면서 이내 타인을 멸시하고 사소한 일로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모습이 보였다. 크림처럼 매끄러운 말투에 어딘가 사나운 인상이 배어났다. 갑자기 그녀는 언짢은 듯이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하고 리카가 바싹 마른 혀를 움직이려는 순간, 다시 말을 이었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한테 여자는 누구에게나 너그러워야 한다고 배우며 자랐어요. 그러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 있어요. 페미니스트와 마가린.”

리카는 어색하게 웃으며 죄송합니다, 하고 중얼거렸다.

“버터간장밥을 만드세요.”

순간, 무슨 소린지 몰라서 나도 모르게, 네?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나왔다.

“갓 지은 밥에 버터와 간장을 넣고 비벼 먹는 거예요. 요리를 하지 않는 당신도 그 정도는 하겠죠. 버터가 얼마나 훌륭한지 가장 잘 알 수 있는 음식이에요.”

얼버무리고 넘어가지 못할 만큼, 그녀는 엄숙하게 말했다.

“버터는 에쉬레Échiré●라는 브랜드의 가염 타입을 써요. 마루노우치에 전문점이 있으니 거기에서 손에 들어보고 잘 확인해서 사면 돼요. 버터 품귀인 지금이 해외 고급 버터를 시험할 좋은 기회예요. 맛있는 버터를 먹으면, 난 뭔가 이렇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어요.”

● 프랑스의 고급 버터 브랜드.

가지이의 명령인지 제안일지 모를 그 말대로 버터간장밥을 만들어 먹는 것부터 시작해 리카는 가지이가 좋아했던 음식의 세계에 발을 내딛게 된다. 나름대로 요리 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나도 덕분에 요리할 때 버터를 더욱 죄책감 없이 (애초에 나도 마가린은 취급 안 했다) 사용하게 됐다. 버터의 맛을 모르는 당신은 불쌍해요!

 

요리를 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여성성’,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빈약하고 우스운 것인지를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보 다요. 를리리하고, 청소를 하고, 집안일을 하는 하는 것, 남자가 여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고작 그런 것을 위해서인가?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제일 마음에 들고 공감했던 부분은 여기다.

최근에 야쿠자와 교류했다는 의혹으로 공식 무대에서 퇴출된 오십대 전직 운동선수가 불미스러운 행동으로 화제가 됐다. 오랜 세월 함께한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 뒤 눈에 띄게 생활이 황폐해지고, 밤거리에서 술에 취해 난동 부리는 모습이 몇 번이나 목격됐다. 약물에 손을 댄다는 의혹도 짙다. 직격 인터뷰를 한 기자에게 “혼자 식사하는 게 너무 쓸쓸하고 맛이 없어 미치겠다. 그래서 그만 밖으로 마시러 나가게 된다. 밥 짓는 법도 모른다. 소금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외로운 인생을 보내다니, 나는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가족들이 돌아와주길 바란다” 하고 연신 한탄하고, 가정법원의 판결에 따라 지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아들들을 향해 “아빠야”로 시작하는 공개 메시지를 보냈다. 부귀영화를 누리던 남자의 안타까운 황혼이라며 남성 주간지는 일제히 기사화했고, 이런 일이 자신들에게도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아주 동정적인 논조뿐이었다.

조금도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옛날부터 구린 소문이 따라다녔고 부인에게 정신적 폭력에 해당하는 언동을 하는가 하면, 애인 문제로 가족을 울린 적이 있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가 식생활을 자력으로 개선하려고 하지 않는 점이 몹시 거슬렸다.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나이이고 무직이라고는 하지만 일반인에 비하면 재산도 시간도 있고, 인맥이나 정보도 풍부하다. 지금의 도쿄라면 심야 음식점은 물론 편의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채소가 풍부한 건강식이 얼마든지 있다. 요리는 못해도 조금만 궁리하면 그럭저럭 생활은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한 타락한 모습에 멀어져간 측근, 찬양하다 돌아선 언론, 무엇보다 자신을 버린 아내와 새로운 생활을 하고 있는 아들을 향한 저주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비참한 내 모습을 잘 봐둬, 너희들 탓이니까……. 말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누군가 손을 내밀 때까지 소란을 피운다. 요지부동 자신의 생활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 고집. 가족이 소중하다면서도 세간에 처자식이 자신을 버렸다는 인식을 심으려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자기 힘으로 인생을 만회하려 한다면, 그는 이제 목숨쯤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가지이 마나코에게 살해당했다는 남자들에게도 많건 적건 그런 냄새가 나지 않았는가. 피해자가 생전에 한 말, 그리고 그들 주위에 있던 사람의 증언이 하나둘 떠오른다.

이대로 혼자 나이를 먹는 게 두렵다. 생활이 점점 피폐해진다. 누구든 좋으니 밥을 차려주고, 돌봐줄 여자가 필요했다. 수상하다고는 생각한다. 속고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한다. 가족들은 그런 여자와 헤어지라고 들볶는다. 그래도 상관없다. 가족과 절연하더라도 그녀를 선택하겠다.

그 여자는 외로운 생활을 보내는 피해자의 마음속 빈틈을 파고들었어요. 남자는 모자란 생물이지 않습니까? 여자의 보살핌과 따스함 없이는 생활해나갈 수 없잖아요?

요리 잘하는 착한 여성이 있다면, 남성이라면 누구라도 끌리지 않겠어요? 남자를 잡으려면 먼저 위胃부터 잡으라고 하잖아요.

이 사건은 어디를 잘라도 그 단면에 고독한 남성의 지나친 자기 연민과 여성을 향한 증오가 배어 있다. 피해자를 탓하는 사고방식일까. ‘자기책임론’이 제일 싫은데.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한 행위로도 볼 수 있지 않은가? 예컨대, 리카가 남자 친구 마코토에게 (가지이에게 배운) 버터와 명란을 넣은 파스타를 해 준 것은, 일단 리카 본인이 만들어 먹고 나서 맛있었기 때문에 자기 집에 들른 마코토에게도 해 준 것이지, 그에게 자신의 여성성을 어필하기 위해, 조신한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서 해 준 게 아니었다. 그냥 자기가 좋아한 걸 남과도 나누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할까. 마코토는 이를 맛있게 먹었으면서도 ‘부담스럽게 일부러 요리할 필요 없다’ 따위의 말을 한다. 게다가 리카가 가지이를 취재하고 나서부터 가지이가 원하는 대로 이런저런 음식을 (지령을 따르듯) 구해 먹느라 살이 쪘는데 그에 대해 리카가 취재하느라 그런 거니까 괜찮다는 식으로 말한다. 또한 마코토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이 살이 쪘다는 이유로 덕질을 관두기까지 한다.

 

그래서 내가 이 소설에서 제일 이해할 수 없는 게 리카와 리카의 절친인 레이코가 각자의 남자 친구/남편과 맺는 관계다. 리카와 레이코는 중학생 때부터 친구였고, 레이코는 진실을 캐내기 위해 리카가 취재하고 있는 가지이의 마지막 피해자(죽지 않고 살아남은 피해자)를 직접 만날 정도로 용기도 있고, 또 그만큼 리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런데 레이코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편은, (소설 속 표현에 따르면) 조금 거친 성적 취향을 가졌다. 그러면서 레이코가 너무 가냘프고 가녀려서, 여동생이나 딸 같은 느낌이라 부부 관계를 갖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한다. 레이코는 임신하려고 클리닉도 다니면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남편 료스케는 같이 가 주지도 않았다. 내가 레이코의 입장이라면 이런 남자하고는 아이를 만들어도 잘 키울 수 없을 것 같아서 헤어질 것 같은데, 소설이 끝날 때쯤 레이코는 다시 남편에게 돌아간다. 앞에서 언급했듯, 리카는 가지이의 마지막 피해자에게 직접 접근해 가지이가 그랬던 것처럼 밥도 해 주고 집안일도 해 주며 며칠간 얹혀 살면서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다. 레이코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달려가 레이코를 위험에서 구해 주는데, 아니 나는 리카가 레이코를 구하러 가면서 ‘더 이상 그녀를 향한 진심을 숨기기 힘들었다’ 뭐 이런 말이 나오길래 ‘오오 둘이 알고 보니 레즈비언!? 이런 반전이?’라고 생각하며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그런 거 없더라. 레이코는 그 마지막 피해자와 같이 지내며 받은 충격 때문에 리카의 지인(리카에게 이런저런 소식을 물어다주는 정보원)네 빈집에서 묵으며 마음을 추스르는데 솔직히 이 부분에서는 레이코의 상태가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묘사가 거의 없어서 뭘 알 수가 없다. 조금 전까지는 리카와 레이코가 무슨 금지된 사랑을 하는 주인공인 것처럼 분위기를 풍겼으면서! 이게 너무 실망이었다. 아니, 꼭 둘이 레즈비언이어야 한다는 것도 아닌데, 분위기만 풍겼다가 이렇게 반전 주는 건 기만하는 거 아닙니까… 퀴어 베이팅(queer baiting) 아니냐고요! 퀴어 베이팅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이코가 다시 그런 못난 남편에게 돌아가는 건 진짜 뜯어 말리고 싶었다. 소설 후반에 레이코는 자신이 너무 임신하는 데에 집중하느라 예민해진 거 같다며 남편과는 언제든 이혼할 수 있도록 서류를 준비해 두고 본인도 일을 다시 시작하는데, 그 일이란 게 자기가 이전에 했고 또 잘하는 영화사 홍보부 일이 아니라 동네 한방병원에서 경리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아니 왜요…! 한국이고 일본이고 경력 단절 여성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그래도 레이코는 아이가 안 생겨도 어쩔 수 없다고 마음을 바꾸고, 언제고 남편과 이혼할 수 있는 준비를 해 놨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리카 쪽은 조금 더 어렵다. 리카는 보통의 연인들처럼 끈적하다기보다는 드라이한 남자 친구 마코토와의 관계를 끝내는데, 소설 후반에 가지이가 공개한 일종의 회고록을 통해 역풍을 맞은 리카가(가지이는 리카가 쓴 기사가 다 거짓이고 자기를 좋아해서 그런 거라고 주장했다) 큰 충격을 받아 폐인처럼 살아가는데 이때 도와 달라는 손길을 내민 게 이제는 구남친이 된 마코토다. 아니, 절친인 레이코도 아니고, 자기를 잘 도와주는 정보통 시노이 씨도 아니고, 하다못해 엄마도 있는데 왜 굳이 구남친에게 SOS를 청하지? ‘이만큼 망가진 모습을 보여 줘도 부끄럽지 않은 건 너뿐이다’ 뭐 이런 마음인 거 같은데, 그게 이해가 안 된달까… 절친 또는 엄마에게 자기 추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면 도대체 누구에게 보여 줘? 구남친이야말로 더더욱 추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상대 아닌가? 아, 난 정말 모르겠다…

 

내가 실망했던 이 점에 대해 좀 길게 얘기하긴 했지만, 그것만 빼면 이 소설은 꽤 좋다. 일단 여성 혐오적인 사회를 잘 보여 주는 데다가, 리카의 개인적인 환경(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과 가지이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일들이 나름대로 맞물리면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았다. 이 소설의 모티브가 된 사건에 관해 어떤 색다른 추리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이건 추리 소설이 아니니까 그런 걸 기대한 게 아니어서 괜찮았다. 소설을 읽으면서 이건 일드로 만들어져도 꽤 괜찮을 정도로 적당한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드 특유의 (K-드라마에 비해) 약간 칙칙한 색감과도 잘 어울리고. 가지이 역의 배우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데려다 쓰면 범인이 아닌, 압도하는 느낌의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읽을 만하고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작가의 <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이 더 깔끔하고 재미있었다는 느낌이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물론 <버터>는 장편이고 <친애하는 숙녀 신사 여러분>은 단편을 모은 거라 아무래도 글의 흐름이나 구성 등이 다른 건 고려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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