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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월말 결산] 2025년 9월에 읽은 책들

by Jaime Chung 2025. 10.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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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 결산] 2025년 9월에 읽은 책들

 

2025년 9월에 읽은 책들은 총 14권.

⚠️ 아래 목록에서 저자 이름과 책 제목 부분을 클릭하면 해당 서적에 대한 서평을 볼 수 있습니다. 하이퍼링크가 없는 책은 서평을 따로 쓰지 않은 책입니다. 그 경우, 별점 아래에 있는 간략한 서평을 참고해 주세요.

 

슈테판 츠바이크, <우체국 아가씨> ⭐️⭐️⭐️
제목 그대로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의 한 ‘우체국 아가씨’가 돈맛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욕심으로 파멸하는 이야기. 나는 이걸 읽고 대니얼 키스의 <앨저넌에게 꽃을>이 떠올랐다. 돈이든 지능을 획기적으로 상승시키는 실험이 되었든, 외부의 무언가가 이 주인공들을 바꾼 걸까, 아니면 원래 그들은 원래 이런 사람이었던 걸까? 나는 후자라고 생각했다. 대체로 문학 비평서에서 보던 슈테판 츠바이크를 직접 읽은 것으로 만족해야지.
누누 칼러,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 ⭐️⭐️⭐️
쇼퍼 홀릭인 저자가 1년간 옷을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1년간 쇼핑 대신 값싼 옷이 지구를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배워 나가며 기록한 일기 형태의 에세이. 나는 덕분에 ‘내가 패션쇼 하러 출근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획기적으로 다른 옷을 입고 갈 필요가 없다’라는 개인적 신념을 강화할 수 있었다. ‘또 뭐 입고 나가지?’라는 고민이 들 때 한번 읽어 보시라.
Charles Yu, <Interior Chinatown> ⭐️⭐️⭐️⭐️
연극 또는 영화 같은 미디어를 뒤섞은 신박한 형태의 소설. 이는 미국 사회 속 동양인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비유인데 그게 또 기가 막히게 들어맞는다. 이 소설은 훌루에서 10화짜리 미니시리즈로도 제작되었는데 (디즈니 플러스에서 시청 가능) 이건 이 주제를 살짝 틀어서 <The Truman Show(트루먼 쇼)>(1998)처럼 만들었다. 원작 소설도 좋은데 미니시리즈도 흥미진진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보시라.
리처드 오스먼, <목요일 살인 클럽> ⭐️⭐️⭐️
최근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화 <The Thursday Murder Club(목요일 살인 클럽)>(2025)의 원작 소설. 소설은 한 권 내에 일어나는 사건이 너무 많아서 살짝 헷갈렸는데 영화는 그걸 단순화해서 좋았다(물론 소설과 내용이 조금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주 간단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영국의 한 고급 실버타운에 사는 네 노인들이 실버타운의 소유자가 사망한 사건을 추리해 나가는 내용이다. 아래에도 썼지만 후편 <두 번 죽은 남자>도 국내에 나와 있으니 영화나 소설을 재미있게 즐겼다면 후속작도 한번 읽어 보시라.
황유미, <생계형 E로 살아가는 I의 사회생활> ⭐️⭐️⭐️
타고나기를 I형으로 태어났는데 먹고살기 위해 E형처럼 사회성, 사교성을 기른 저자의 에세이. 재미있었는데 어디에선가 본 거 같아서 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아하! 이미 밀리의 서재에서 다른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 퍼스널에디터(구 드렁큰에디터)라는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것이었다. 나도 이미 예전에 황유미의 <독립어른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시절에 이를 읽고 리뷰를 써 놨었다. 어쩐지… 다시 봐도 감상은 비슷했는데, 특히 이번에도 서귤 작가랑 같이 사신다는 부분이 제일 부러웠다. 큽… 어쨌든 내용은 같으니 (편집이 달라진 부분이 조금 있고 최소 90% 같은 듯) 책이 궁금하시다면 위 리뷰를 참고하시라.
김서해, <여름은 고작 계절> ⭐️⭐️⭐️
200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가서 아등바등 살며 영어를 배우고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애쓰는 제니가 자신과는 다른 이민자 한나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한나는 자기 이름을 영어식 발음 ‘해나’가 아니라 한나라고 불러 달라고 하지만 영어를 배울 의욕도 없는 것 같고, 제니에게 의존하는 듯하다. 제니는 처음에는 한나가 불편하고 미련하게 느껴지지만, 점차 그녀에게 스며들어 간다. 내가 좋아하는 ‘바이브’는 아니지만 일단 읽어 볼 만한 소설이라 하겠다.
케이트 가비노,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 ⭐️⭐️⭐️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그래픽 노블은 그림체가 예쁘거나 뛰어나지는 않다. 하지만 모두 출판업계에 몸담은 세 룸메이트가 자기네 아파트 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인 작가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흥미로운 설정에서 출발해 결국 동양계 여성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누누 칼러, <물욕의 세계> ⭐️⭐️⭐️⭐️
위에서 언급한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 작가의 최신작. 이 책에서는 패션뿐 아니라 다이어트, 화장품, 식품 산업 등 과소비를 유도해서 이익을 축적하는 기업들을 전반적으로 비판한다. ‘착한 소비’, ‘좋은 소비’도 좋지만 이 지구 환경에 더욱더 효과적인 것은 더 적은 소비 그 자체이다.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박윤미, <웃기고 진지한 자존갑입니다만> ⭐️⭐️⭐️
아니!? 뭐지, 이 말도 안 되게 강력한 필력은? 진짜 웃기고 재미있는데 이미 ‘레몬테라스’나 ‘82쿡’ 같은 중년 여성 커뮤니티 또는 맘카페에서 이미 ‘네임드’이실 것 같은 말솜씨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저자가 소개팅에 나간 상황: “표를 예매한 후엔 파스타 집으로 절 인도하더군요. 잠깐만! 코끼리 아저씨라고 미리 언질을 주셨어야죠. 접시에 코 박고 드시니까 제 마음이 많이 놀랐잖아요. 커다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쏘 스윗하게, 제가 행복하게 먹으니 자기도 행복하답니다. 아뢰옵기 황당하오나 너만 행복하시는 중이세요.
갑자기 제가 남자 친구 없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말합디다. 지는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구먼유. 제가 정떨어질 만한 멘트 서른한 가지를 엄선해 화통을 삶아 먹고 태어난 목소리로 태초부터 성격이 모났고, 남녀노소를 증오한다 별 말을 다 해줘도 너무 재미있으시다며 지금까지 자신과 이토록 비슷한 생각을 가진 여자는 처음이라는 겁니다. 작정하고 요즘엔 여자한테 끌리더라~ 말해도 끄떡없이 웃어주셨지요.”
아버지를 웃기게 해 드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실 듯. 정말 소소하게 웃기고 재미있다. 작품성 같은 건 모르겠지만 일단 기분 전환용으로 읽기 딱이다. 저자의 아버님이 따님을 정말 많이 사랑하시고 예뻐해 주신 것 같은데 그게 저자의 강인한 내면의 바탕이 된 듯하여, 그 점도 무척 훈훈하고 좋았다.
리처드 오스먼, <두 번 죽은 남자> ⭐️⭐️⭐️⭐️
위에서 리뷰한 <목요일 살인 클럽> 시리즈 후속작, 두 번째 편. 전작만 한 속편은 없다지만 이건 정말 괜찮은 속편이다. 우리가 여태까지 전작에서 본 등장인물들의 케미를 깨지 않으면서, 잘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건들로 잘 채워 넣었다. 전작을 즐겼다면 후속편도 읽어 보시라고 하고 싶다. 단 하나의 흠이라면 이번 책도 저번 책만큼 번역이나 교정교열이 매끄럽거나 깔끔한 것 같진 않다는 점.
Sandra Cisneros, <The House on Mango Street> ⭐️⭐️⭐️
미국 초등-중등 학생들에게 흔히 권하는 책들 중 한 권. 제목처럼 ‘망고가(街)’에 사는 한 소녀가 경험하는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다. 책 자체가 짧고 구어체로 되어 있어서 원어민 학생들은 물론 영어를 배우는 초급 외국인들에게도 어렵지 않다. 다만 이 책이 보여 주는 게 가난한 멕시코계 미국인 소녀의 현실이라 참 씁쓸한 점(소녀가 희롱당하는 등)이 많아서, 어린아이들에게 읽힌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당연히 가해자가 나빠서지!) 지도해 줄 필요가 있겠다.
배태랑 외 13인, <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 ⭐️⭐️
아니, 이럴 수가. 이 책을 기획하고 만든 퍼스널에디터는 이전에 ‘드렁큰에디터’라는 이름으로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을 펴낸 곳이다. 먼슬리 시리즈인 신예희의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부터 이주윤의 <팔리는 작가가 되겠어, 계속 쓰는 삶을 위해>, 권용득의 <일도 사랑도 일단 한잔 마시고>, 이유미의 <자기만의 (책)방>, 손기은의 <힘들 때 먹는 자가 일류>까지 다 기발한 기획력과 재기 넘치는 작가들의 글솜씨에 감탄하며 읽었는데! (심지어 이 먼슬리 에세이는 해당하지 않지만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이치다 노리코의 <어른이 되어 그만둔 것>도 짧게 리뷰를 썼더랬다.) 이 출판사가 이름을 바꿨다는 걸 알고 ‘어, 이 책이 거기에서 나왔어? 한번 볼까?’ 하고 읽었는데 웬걸… 제목 그대로 챗지피티 시대의 고민 상담은 진부하기 짝이 없다. 대체로 사람에게 말하기 어려운 것들(너무 사소해 보여서 남에게 비난받을 것 같거나, 너무 감정 쓰레기통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내용)을 챗지피티에게 말하고 위로받았다는 내용이다. 개중 드물게 몇 편만이 ‘챗지피티는 유용하지만 그래도 진짜 인간을 대체할 수는 없다’라는 논지이고, 나머지는 챗지피티와 ‘이야기’를 나누고 감동 또는 위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물론, 챗지피티가 그렇게 쓰일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에 14명의 작가의 3편씩이 담겼으니 총 42편인데 그게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지면 책을 만드는 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유일하게 괜찮았다, 신선하다고 느껴진 것은 병든 아버지를 간호해야 하는 자식으로서의 입장을 다룬 글, 딱 한 편이었다. 나머지는 다 비슷비슷하게 느껴져서 읽는 의미가 있나 싶었다. 챗지피티 같은 AI를 한 번 돌릴 때 드는 냉각수를 비롯해 환경 파괴 어쩌고 하는 현실을 굳이 여기에 끼워넣을 생각은 없었는데(’문학’은 ‘문학’이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나눠서 보려고 했는데), 글에 임팩트가 없어서 내 본전이 생각났다. 심지어 나는 이 책을 따로 구매해서 읽은 게 아니라 교보 샘 무제한 서비스를 구독해서 읽은 거였는데도! 퍼스널에디터 기획자님, 제발 예전의 감을 되찾아 기가 막히게 신선하고 재미있는 책 부탁드립니다. 그 옛날의 영광이 그립습니다…
후아 쉬, <진실에 다가가기> ⭐️⭐️⭐️
대만계 미국인의 이민자 2세인 저자는 대학교에서 켄이라는 친구를 만나 깊은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그가 졸업하기도 전, 켄은 강도 살인 사건에 휘말려 사망하고 만다. 이 회고록은 그 소중한 벗 켄에 대한 기억을 담고 있다. 슬프고 아름다운 글.
김도미,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잔의 자유> ⭐️⭐️⭐️
반(反)성폭력 운동을 하던 저자는 어느 날 백혈병을 진단받는다. 하지만 아파도 ‘지 쪼대로’ 아프고 싶은 저자는 자신이 암 환자임을 밝히면 따라오면 동정의 눈초리(사랑?)나 통제, 그리고 맥주 한잔조차 자유롭게 마시지 못하는 부(不)자유를 맞닥뜨리게 된다. 이것은 환자는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사회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대한 저항이다. 크게 어렵지 않으면서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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