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누누 칼러, <물욕의 세계>
내가 이번 달에 읽고 후기를 썼던 <쇼퍼 홀릭 누누 칼러, 오늘부터 쇼핑 금지>의 작가 누누 칼러의 최근작. 이번에도 그는 과소비를 부추기는 현대 산업을 비판한다. 단순히 의류 산업뿐 아니라 불안이라든지 공포 또는 쾌감 등 강렬한 감정을 불어넣어 소비를 촉진하는 현대 산업 전반을!
그런 산업 중 하나가 바로 화장품 산업과 다이어트 산업이다. 다들 아시다시피 여성은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사회적 기대와 압박을 받으며 자란다. 패션뿐 아니라 다이어트, 화장품 산업은 이런 세뇌에 가까운 ‘프로그래밍’ 없이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화장품 산업의 술책이다. 백 년 가까이 불안의 원칙으로 성공을 거둔 산업은 이 분야를 제외하곤 어디에도 없다. 친애하는 여성이여, 당신은 시각적으로 뭔가 부족합니다! 성공하려면 무조건 예뻐야 해요. 이를 위해 우리 코스메틱 기업이 도와드립니다! 이에 가장 저렴한 제품을 용기에 채워 넣었고, 여기에 당신이 화장할 수 있게 색조 화장품도 추가했습니다. 제품의 안전성을 위해 사전에 재빨리 몇몇 동물 실험도 거쳤고요. 그런 다음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런 그대여, 보랏빛 아이섀도를 눈두덩이 위에 듬뿍 칠하면 정말로 행복해지는지는 보장할 순 없군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만든 제품을 사는 거예요. 이것 없이 당신은 아무 가치도 없고, 예뻐지긴 어려우니까요. 그리고 여성이라면 이 사회에서 예뻐야 합니다. 우리 제품과 함께라면 당신은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 나오미 울프(Naomi Wolf)는 1990년 그녀의 충격적인 책 『무엇이 아름다움을 강요하는가(The Beauty Myth)』에서 이렇게 썼다. “여성의 마른 몸에 집착하는 문화는 여성의 아름다움이 아닌 여성의 순종에 사로잡혀 있다. 여성사에서 다이어트는 가장 강력한 정치적 진정제로, 고분고분 말 잘 듣는 국민은 쉽게 미치는 여자다.” 세계 여성의 날이 의미하는 바와 완전히 반대로 들리지 않는가! 문제는, 자기 몸과 집을 예쁘고 아름답게 보이도록 가꾸고, 물건을 사고, 기분 좋게 쇼핑하고, 기분 전환을 하게 만듦으로써 주의를 돌린다는 데 있다.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의견을 낼 시간이 없다.
바로 위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이 핵심이다. 살을 빼고,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사 입는 등 스스로를 꾸미기 바쁜 여자에게 정치적으로 적극적인 의견을 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이 사회가 여자들이 입을 열지 못하도록, 바쁘게 이런저런 일을 시키는 거다. 답은 역시 탈코르셋! 그런 의미에서 이 기가 막힌 다큐멘터리 <목줄을 끊으려는 여성들에게>(2025)를 추천한다. 세계 영화제에서 10관왕을 달성했는데 (이랬는데도 메이저 언론에서 아무 언급이 없다는 게 코미디) 22분밖에 안 되니 한번 보시라.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거다. 다소 길긴 하지만 그대로 인용해 보겠다.
아침에 허둥대며 출근하고, 사무실 가는 길에 재빨리 커피를 사서 카페인 수혈을 하고, 직장에서는 미니 냉장고, 전기 커피포트, 전자레인지 및 개수대를 사용할 수 없으니 음식을 가져오거나 근처 식당에서 사 먹으라는 지시를 받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삶인가? 매일 저녁 7시 직전에 피곤한 몸으로 쏜살같이 마트로 달려가 10분이면 준비되는 인스턴트 음식을 사 먹고, 이어서 영혼을 달래줄 누텔라를 퍼먹는 게 우리가 바라던 것인가? 아니면 일하면서 우리 스스로를 보살피고, 우리가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쓰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은가? “그런 삶을 누릴 여유가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오만한 엘리트 의식을 가진 자들이 즐겨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현실은 대량 사육으로 얻은 고기가 지역 유기농 채소보다 훨씬 싸다. 생활의 질은 고스란히 우리가 가진 돈과 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여기에 미국에서는 또 다른 파도가 계속 밀려들고 있다. 그곳 사람들은 서너 가지의 일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회사는 점점 임금을 낮추고 있고, 요컨대 결과적으로 뼈 빠지게 일한다 해도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한 생활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적게 일해도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엘리트 의식을 가진 자들에게 내가 잠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했다. 나에게 인스턴트 피자가 문제라면, 저널리스트인 카트린 하르트만(Kathrin Hartmann)에게는 그녀가 독일의 봉지 수프라고 부르는 컵수프가 그렇다. “지금 나에게 봉지 수프는 실존적 구토를 야기시킨다. 나는 이것이 질 낮은 삶을 준비하는 상징이자 세계 광기의 농축물이라고 생각한다. 이 가루는 가장 저급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내용물인 지방 덩어리와 녹말에 인공 향료와 색소를 첨가해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와 소비지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사회 모델이 인공적이고 비참한 상황에 지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봉지 수프 또한 식사와 향유에 똑같이 비참한 상황을 제공한다. 봉지 수프는, 요리할 여유가 없는 근로자들이 폐점 직전에 슈퍼마켓으로 달려가 간편히 먹고 다음날 일하러 나갈 수 있게 즉시 에너지를 공급한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다양한 맛을 제공하며 우리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속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 숲을 없애고, 사람들을 내쫓고, 심지어 일부는 죽이기까지 하는 등 철저하게 그것만의 혐오스러운 논리를 갖고 있다. 우리는 ‘더 좋은 팜유’로 ‘더 좋은 봉지 수프’를 만드는 ‘더 좋은 기업’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이상 봉지 수프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주체적인 생각과, 다른 사람과 중요한 문제를 토론할 수 있는 여유롭고 더 좋고 덜 일하는 일자리와, 소비의 천박한 행복을 대체할 새롭고 강한 연대다. 우리는 이 세상을 구하러 온 봉지 수프의 구원론을 감상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심지어 그것과 싸워야 한다.”
저자는 환경에 피해를 입히는 팜유를 언급하면서 문제는 팜유 자체가 아님을 지적한다. 팜유가 들어간 인스턴트 피자가 문제인가? 아니다, 그런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가 문제다. 먹고살기 바쁜 이 시대에 사람들은 빨리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값싼 음식에 손을 뻗을 테고, 이 사람들이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좀 더 건강한 음식을 먹게 하려면 이 사람들에게 정신적 및 시간적 여유가 주어지는 게 더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일 것이다. 사람들이 먹고 살 만해지면 당연히 더 나은 선택을 할 것이다. 한때 ‘웰빙’ 바람이 불었던 것처럼. 궁극적으로 우리가 환경을 더 보호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하며 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면, 김기춘이 메모장이 휘갈겨 쓴 “야간의 주간화, 휴일의 평일화, 가정의 초토화, 라면의 상식화”, 이것을 쳐부수어야 한다. 사람들이 인스턴트 피자나 컵수프 같은 쓰레기 음식을 먹지 않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살 만하게’ 만들어라! 노동 시간을 줄이고, 노동에 따른 적절한 보수를 지급하고, 과도한 경쟁을 부추기지 마라! 근데 오스트리아 작가가 이런 말을 하다니, 거기나 여기 한국이나 노동자들 삶이 퍽퍽한 건 비슷한가 보군요. 눈물이… 🥲
또 내가 좋아하고 공감한 부분 하나 더. 요즘에는 ‘마음챙김(mindfulness)’ 같은, 정신적이랄지 영적인 개념까지도 소비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듯하다. 명상을 하고 싶으면 그냥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사무용 의자에서도 눈만 감으면 할 수 있는 것인데 요가 매트는 굳이 왜 필요한가?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느끼기 위해 수정이나 차크라 목걸이 따위가 꼭 있어야 하나? 고요한 나만의 시간을 위해 꼭 향초를 피울 필요는 없다. 이 세상 향초가 다 쓸모없다는 게 아니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아실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소비’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당신은 그 물건이 있든 없든 당신이라고요!
그러는 동안 내가 마시던 홍차만 쓰디쓰게 변한 게 아니라 잡지가 남긴 뒷맛도 씁쓸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내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으로 산 잡지는, 원래 중요한 것은 소비의 자유와 비물질적 가치여야 한다는 문화를 빙자해 나에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고, 이를 위해 어떤 제품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한다. 내가 아는 것과 학문적 지식에 따르면 참된 행복은 새로 산 크리스털 두 개를 창틀 위에 놓고, 하트 차크라 목걸이를, 그것도 십중팔구 중국에서 환경을 파괴하며 만든 목걸이를 목에 거는 데에 있지 않다. 명상, 요가도 다 매한가지다. 나는 ‘제대로 만든’ 요가 패션을 구입함으로써 이런 행복을 얻고 싶지 않다. 이런 자기 최적화는 뼛속까지 신자유주의적이다.
이들 잡지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들은 단순한 삶에 대한 욕망을, 잿빛 콘크리트 사막 대신 자연에 대한 욕망을, 그리고 지루한 사무실 일보다 진정한 성취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다. 내가 끊임없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 마음챙김 운동은 외적인 것에 둘러싸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집중하는 것이며, 몸과 마음에 효과적인 명상이나 요가, 그밖의 기술을 강조하고, 자연 속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목적이다. 스트레스 많은 일상에서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이보다 더 유익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모든 것을 위해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조야한 색들로 조합된 다채로운 만다라 그림으로 뒤덮인 잡지도 필요 없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들에 너무 화가 난다. 우리는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에 둘러싸여 ‘과잉 쇼핑’ 상태에 있다. 모든 것이 숨가쁘고 현란하고 요란하다. 출퇴근 시간이면 발 디딜 틈 없는 지하철을 견뎌야 한다. 그래서 한 번씩 숲속 한가운데에 있는 적막한 나무집으로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큰 사회 변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뭔가를 하기보다는 현실을 견디기 위해 단지 상상의 세계로 몸을 피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소비’, 그러니까 일부 산업에서 제시하는 ‘재활용된 자원(캔, 유리,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제품’을 소비하는 방법보다 더 좋은 것은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것이라고. 이미 있는 것을 쓰고, 없는 것은 빌려 쓰거나 교환해서 쓴다. 꼭 사야 한다면 중고품을 사서 쓰거나, 가능하다면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라.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보라!’ 크으, 옳은 말씀입니다.
친구 말이 맞다. 지금 좋은 소비로 가는 길이 아무리 확고부동하다고 해도, 반드시 소비의 감소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살면서 치마를 하나 만들어보고 싶어서 재봉틀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나 이웃에게 재봉틀을 빌려줄 수 있냐고 물어볼 수 있다. 아니면 온라인에서 몇 번 클릭만 하면 다음날 저렴한 재봉틀이 문 앞에 와 있다. 이제 어떤 것이 지속 가능한 선택인지 계속 설명할 필요는 없을 거라고 본다.
집에서 자료를 찾던 중 나는 우연히 ‘욕구의 구매 단계(Buyarchy of Needs)’라는 것을 발견하고 열광했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132를 차용해 캐나다 일러스트레이터 사라 라자로비치(Sarah Lazarovic)가 고안한 것이다. 우리의 소비 방식과 관련한 ‘욕구의 구매 단계’는 다음과 같다.
- 사용하기: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써라!
- 빌리기: 없는 것은 빌려 써라!
- 교환하기: 물건을 서로 바꿔 써라!
- 중고품 사기: 중고를 사서 써라!
- 스스로 만들기: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어라!
마지막 피라미드 꼭대기에는 작은 글씨로 ‘buy’가 써 있다. 다시 말해서,
- 구매하기: 그것을 사라!
나는 첫 번째 단계 전에 한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생각하기: 그것이 정말 필요한지 생각해보라!’
그리고 비록 새것을 사는 마지막 단계에 오더라도 좋은 소비를 위한 차별화는 가능하다. 바람직한 것은, 그 제품이 어디서 어떻게 생산되었고, 운송을 포함해 그것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새것을 살 때에도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다.
전반적으로 좋은 책인데, 안타깝게도 이 책도 나의 까탈스러운 교정안(矯正眼)을 비껴가진 못했다. ‘부르드외(바로 다음번에는 ‘부르디외’라고 제대로 써놓음)’, ‘너가’, ‘안좋은’, ‘사랑스런(‘-럽다’로 끝나는 형용사는 ‘-러운’으로 써야지, ‘-런’으로 줄여 쓸 수 없다)’, ‘다정스런' 등 다양한 오타와 실수를 발견했다. ‘직접적.개인적으로’라고 쓴 부분도 봤다. 가운뎃점을 넣든가, 쉼표를 쓰든가 하지 못나 보이게 온점이 뭐야… ‘정말 짱!, 비통 쿨!’에서는 느낌표 뒤에 쉼표가 왜 또 오는지 모르겠다. 이미 느낌표로 문장이 끝났잖아요? 이 괜찮은 책에 이런 실수들이라니. 꼼꼼하게 검수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실수들을 잠시 눈감아 줄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이 책을 읽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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