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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2024)

by Jaime Chung 2025.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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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2024)

 

 

⚠️ 아래 후기는 영화 <The Life of Chuck(척의 일생)>(2024)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티븐 킹의 동명 단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이 중편 소설은 <피가 흐르는 곳에>라는 중편 소설집에 수록돼 있는데, 이 책에 대한 이야기는 따로 다른 포스트에서 하기로 하고, 여기에서는 이 영화와 원작 소설만 다루겠다.

이 작품은 영화나 소설 둘 다 3막짜리인데, 흥미롭게도 1막부터 2막, 3막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반대로 3막부터 시작해 1막에서 끝난다. 3막은 ‘고마웠어요, 척!’, 2막은 ‘길거리 공연’, 1막은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라는 부제가 딸려 있다. 왜 3막부터 시작해서 1막으로 나아가느냐면, 척의 일생이 놀랍기 때문에, 그 놀라운 비밀을 마지막에 공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1막부터 시작해 영화 줄거리를 소개하면 이렇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변해 버렸다. 한 고등학교 교사인 마티(추이텔 에지오포 분)는 그런 변화를 느꼈다. 인터넷이 끊기고, “지난 한 달을 통틀어 세 번째이자 가장 무시무시한 대규모 지진으로 캘리포니아 일부분이 큼지막하게 태평양으로 또다시 떠밀려갔다”(이 부분은 원작 소설에서 인용했다. 이하 모든 인용은 마찬가지로 원작 소설이다). 일본에서는 원자로가 침수됐고, 전 세계 식량 생산 지대가 온갖 자연 재해로 인해 파괴되어 식량이 부족해졌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학교에 출근해 학부모 간담회를 열었지만, 마티가 상담한 부모들은 자녀들의 학업이나 발달 상황보다는 인터넷이 끊길지,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 마침내 퇴근하는 길, 그는 한 건물에 달린 광고판을 본다. 웬 회계사처럼 생긴 남자가 미소 짓고 있고, 그 옆에는 “찰스 크란츠, 39년 동안의 근사했던 시간! 고마웠어요, 척!”이라고 쓰여 있다. 척이 누구인지 마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주변 사람들 그 누구도 척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는 이혼한 전 아내 펠리샤(카렌 길런 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그는 간호사인데 요즘엔 소위 ‘자살특공대(suicide squad)’라고 불린다. 그만큼 상황이 안 좋기 때문이다. 펠리샤는 세상이 망하는 듯하니 사람들이 위안을 얻기 위해서라도 사랑에 더욱 기댄다며, 요즘엔 결혼이 이혼보다 더 많은 거라고 말한다. 둘은 정말로 그들이 세상의 끝인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대화를 나눈다. 3막의 끝, 마티는 펠리샤네 집에 도착해 어두운 하늘 속에서도 여전히 빛나는 별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 동네의 모든 집 창문에 그 척이라는 인물의 홀로그램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떠오르는 것을 본다. 그리고 다음 장면, 한 병실 침대에 누워 있는 병색이 완연한 남자가 보인다. 무척 수척해 보이지만 광고판에서 보았던 척이라는 남자인 것은 분명하다. 그 주변에는 아내 지니(코리안카 킬처 분)와 아들 브라이언(안토니오 라울 가르시아 분)이 ‘39살은 뇌종양으로 죽기엔 너무 젊다’며 슬퍼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첫 번째 3막만 보면 이 영화가 혹시 아포칼립스물인가, 혹은 공포물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IMDB에서도 이 영화 소개에 “장르를 섞은(genre-bending)”이라는 표현을 썼다. 하지만 아포칼립스물은 아니니 걱정 마시라.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하려면 2막, 1막까지 다 알아야 한다. 2막에서야 진짜 이 영화의 제목에도 나오는 주인공인 ‘척(톰 히들스턴 분)’이 제대로 등장한다. 그는 회계사로, 한 콘퍼런스에 가다가 길거리에서 버스킹하는 드러머가 연주하는 선율을 마주친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다가 비트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한다. 흥이 오른 그는 주변에서 구경하던 한 아가씨 재니스(애너리즈 바쏘 분)에게 같이 춤을 추자고 제안하고, 둘은 기가 막힌 합으로 멋진 즉흥 공연을 보여 준다. 드러머 테일러(더 포켓 퀸 분)도 무척 만족하는 버스킹이 끝난 후, 자신의 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끌어 준 두 사람에게 ‘이걸로 커리어를 바꾸어 보지 않겠느냐’ 제안하지만 둘 다 예의를 갖추어 거절한다.

1막은 척의 어릴 적 삶을 보여 준다. 척의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고, 그래서 조부모님과 자랐다. 그가 이디시어로 제이디(’할아버지’)와 부비(’할머니’)라고 부른 조부모님네 집에는 지붕 아래 다락방이 있었는데 그들은 절대 이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할머니는 그곳 바닥이 위험해서 떨어질 수 있다고 했고, 할아버지는 “바닥이 썩어서 안에 물건이 아무것도 없다고, 창문 밖으로 보이는 것도 쇼핑센터뿐”이라고 했다. 어쨌거나 척은 할머니가 먼저, 그다음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와중에도 꿋꿋이 자랐고, 중학교에서 동아리 활동으로 춤을 배웠다. 왈츠, 차차, 볼체인지, 삼바 등등. 척은 동아리 아이들에게 문워크를 가르쳐 주기도 하고, 캣(트리니티 조-리 블리스 분)이라는 상급생 여학생과 가을 축제에서 신나게 춤을 추기도 한다. 춤을 추고 난 후 척은 체육관에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맡으며 하늘을 수놓은 백만 개의 별을 본다. “우주는 크다. 그는 생각했다. 그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 그 안에는 나도 있고 지금 이 순간 나는 훌륭하다. 나는 훌륭할 자격이 있다.” 그 벅찬 감정에 들떠 춤을 추려고 팔을 벌리고 몸을 돌리다가 철책에서 튀어나온 철사에 손등을 긁히고 만다. “조그맣고 하얀 초승달 모양의 흉터였다”. 그가 왜 그런 흉터를 가지게 되었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는데, 척은 후에 자신의 아내 지니에게도 처음에는 자신이 캣과 춤을 추는 걸 질투한 캣의 데이트 상대 더기 웬트워스가 그를 때려서 난 흉터라고 말할 정도였다. 척이 진실을 말한 것은 그가 39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숨을 거두기 6개월 전, 아직 정신이 있을 때였다. 그가 평생 감춘 비밀이었다.

그 비밀이 무엇이냐 하면, 그의 조부모님 댁 지붕 아래 다락방의 진실이다. 그곳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죽을 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척의 할아버지 앨비(마크 해밀 분)는 그곳에서 동네 사람들뿐 아니라 자신의 아내 새러(미아 사라 분)가 빵을 사다가 가게에서 숨을 거두는 모습을, 자신이 심장마비로 죽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하나뿐인 손자 척에게는 절대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 것이었다. 할머니에 이어 할아버지까지 돌아가신 후, 척은 그 방에 들어가 보았고 거기에서 어떤 남자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남자가 자신일 것이라고 직감한다. 할아버지 말대로, “힘든 건 뭔가 하면 말이다, 처키, 기다리는 거야.” 이제 척은 그 말씀을 이해한다. 그가 저렇게 병으로 죽는 것은 몇 살일까?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할까? 그 남자의 모습은 곧 사라지고, 척은 그때가 언제가 되든 인생을 긍정하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없었던 사람 맞아. 척은 생각했다. 나는 그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갈 거야. 나는 훌륭하고 훌륭할 자격이 있고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그렇게 영화는 이 비밀을 밝히고 끝이 난다.

 

이제 3막에서 1막으로 나아가는 이유를 이해하셨는지? ‘아니, 근데 3막의 그건 뭐야? 2막은 척이 아직 죽기 전 삶을 즐기면서 춤을 추는 이야기이고 3막은 척이 어릴 적 이야기이자 비밀의 전말이잖아. 3막은 도대체 뭔데? 다른 이야기랑 연결돼 있지 않은 것 같은데?’ 하고 말씀하실 수도 있다. 내가 내용을 소개하느라 엄청 압축해서 쓰느라 힌트를 빼먹어서 그렇다. 3막에는 척이 6학년이던 시절, 학교 선생님이 낭독하는 월트 휘트먼의 시 <나의 노래>를 듣고 ‘나는 크다,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다’라는 시 구절이 무슨 뜻인지 질문하는 장면이 있다. 선생님은 척의 양쪽 귀에 손을 대며, 이 사이에는 (척의 대답대로) ‘작가가 아는 많은 사람들'뿐 아니라 ‘네가 보는 모든 것. 네가 아는 모든 것. 세상’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힌트를 이해하셨는지?

그러니까 3막에 등장하는 인물들, 세상은 (39살이 되어 뇌종양으로 죽어 가는) 척의 머릿속에 있는 인물이자 세상이었다! 그 힌트로, 이렇게 글로만 써 놓으면 모르지만 3막에 등장하는 마티는 1막에서 척이 다니던 중학교의 옆반 선생님과 동일 인물이며, 3막에서 마티의 전 아내, 간호사로 나온 펠리샤 역시 척이 신나게 춤을 추는 가을 축제 장면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학교 선생님들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마티가 펠리샤네 동네로 걸어가며 만난 노신사 샘(칼 럼블리 분)은 척의 할아버지 장례식을 맡아 치러 준 장의사와 동일 인물이다! 이 외에도 3막에서 마티가 한 말을(대충 이 세상이 망해가고 있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형편없다’라는 말밖에 없다는 내용) 2막에서 척이 재니스에게 하는 것이나, 3막에서 마티가 하는 ‘지금까지 우주가 존재해 온 150억 년의 세월을 1년으로 환산하면’ 어쩌고 하는 말은 3막에서 척이 어릴 적 본 TV에서 한 과학자가 하는 말이었다는 점(이때 마티가 슬쩍 쳐다보던 다락방으로 가는 복도는 척의 조부모님네 그곳이랑 똑같이 생겼다), 3막에서 마티가 만난 노신사 샘이 하는 말이 사실은 1막에서 척의 할아버지 장례식을 맡아 준 장의사가 한 말이었다는 것 등이 이를 더욱 뒷받침한다. 이런 척의 머릿속에서 그가 만났던 여러 사람들이 한 세상을 이루어 살고 있는데, 척이 죽어가니까 그 세상도 점점 무너지는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이 원작 소설을 읽기 전(내가 대체로 그러듯, 소설 먼저 읽고 영화를 봤다) 어디에선가 “노인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라는 말을 접했는데(참고로 이는 말리 출신의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Amadou Hampâté Bâ)가 1962년 유네스코 회의에서 한 말이라고 한다) 어쩜 이렇게 시의적절한지. 척이라는 인물이 죽으니까 그 안에 있는 세상도 사라진다는 걸 이렇게 표현하다니, 진짜 스티븐 킹은 천재구나 하고 감탄했다.

 

앞에서도 IMDB의 이 영화 소개 문구를 인용했는데, 한 번 더 하자면 “life-affirming”이라는 문구를 빌려오고 싶다. 말 그대로 삶을 긍정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어떻게 죽을지 알았던 남자, 그래서 늘 삶을 긍정하고 자신이 훌륭하다는 사실을 살아내려고 했던 남자, 척. ‘삶은 짧은 것이고 언제 죽을지 모르니 살아 있을 때 삶을 즐겨라(또는 제대로 살아라)’라는 말을 하기는 쉽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로 풀어내기는 쉽지 않다. 근데 그걸 스티븐 킹이 해냅니다! 이야, 내가 이 영화 포스터를 정말 우연히 퇴근길에 한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온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이 영화를 봐야겠다고, 이 소설을 (먼저) 읽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이 귀한 작품들을 모르고 살 뻔했다.

 

정말 노파심에 말하지만, 톰 히들스턴이 너무 좋아서 그를 보고 싶어서 이 영화를 본다고 하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다. 놀라지 마시라, 영화는 너무 좋은데 톰 히들스턴이 2막에서야 제대로 처음 등장하고, 총 스크린 타임이 19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이틀 롤이고 주연인데도… 아무래도 3막이 대부분 어린 척, 그러니까 아역을 통해 진행되다 보니 그렇다. 톰 히들스턴이 춤 추는 모습이 2막에 등장하는데 그게 보고 싶으시다면 꼭 보셔야지, 뭐 어쩔 수 없다… 참고로 나로 하여금 이 영화를 보고 싶게 한, 내가 좋아하는 배우는 이 영화에 약 2분 나왔다… 그것도 “폰허브를 운운한 사람은 없었지만 마티는 참석한 학부모 대다수가 남녀를 막론하고 그 사이트의 소멸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라는 이 문장 하나를 바탕으로 만든 학부모2 캐릭터로! 폰허브가 뭔가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 드리자면(이렇게 음차해 놔서 안 와닿는 것 같으니) ‘Pornhub’, 즉 포르노 사이트다. 우리 배우는 아들을 두고 20년 된 아내가 떠나서 괴로워하는, 폰허브의 멸종을 슬퍼하는 학부모 캐릭터로 나왔다고요… 이에 비하면 척은 스크린 타임 19분? 게다가 주연? 감사하십시오 휴먼… 어쨌거나 단 한 문장을 2분 분량의 캐릭터와 대사, 장면으로 만들어 내는 각본가의 솜씨에 놀랐다는 일화… 앞에서 말했듯 나는 소설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편인데 이 영화는 그 반대로 해도 딱히 나쁘지 않을 듯. 스티븐 킹은 그저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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