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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ses(더 로즈: 완벽한 이혼)>(2025)

by Jaime Chung 202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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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ses(더 로즈: 완벽한 이혼)>(2025)

 

 

내가 일전에 리뷰를 썼던 <The War of the Roses(장미의 전쟁)>(1989)과 마찬가지로, 워렌 애들러가 쓴 동명의 소설에 기반한 영화. 나는 원작 소설은 안 읽어서 (왜 이처럼 유명한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책과 비교할 수는 없고, 1989년에 개봉한 대니 드비토 감독의 영화와 견주어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89년작을 떠올리지 않고 이 영화만 떼어놓고 본다면 괜찮다. 하지만 아무래도 <장미의 전쟁>을 (이 영화 보기 전에 준비한다고) 먼저 본 나로서는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일단 이 2025년판 <더 로즈: 완벽한 이혼>의 기본 설정은 이렇다. 여주인공은 요리사 아이비(올리비아 콜맨 분)이고 남주인공은 건축가 테오(베네딕트 컴버배치 분)다. 둘은 한 성격 하기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장본인들인데, 신기하게 서로 임자를 만나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와 결혼했다. 테오는 해양 박물관을 설계했는데 이게 유난히 강한 폭풍이 부는 날에 무너져 버려서 그의 커리어도 박살 난다. 아이비는 일주일에 겨우 사흘 여는 작은 게 요리 전문점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 둘과 남편을 먹여살릴 겸 자신의 일에 매진하게 된다. 마침 아이비는 운까지 도와줘서 승승장구하고 테오는 집에서 자식 둘을 돌보는 전업 주부가 되어 버린다. 아이비가 잘나갈수록 테오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고, 아이들을 도맡아 키우는데도 고맙다는 말이나 아내에게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둘 사이는 점점 최악으로 치닫게 되는데…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1989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거다. 남자 주인공(1989년작에서는 올리버, 2025년작에서는 테오라는 이름)이 여자 주인공(1989년작에서는 바바라, 2025년작에서는 아이비라는 이름)을 끝까지 ‘사랑’한다는 느낌이 안 느껴진다는 것. 1989년작에서는 정말 남자가 구차하고 구질구질해도, 최소한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기저에 있어서 이런 전쟁 같은 사랑을 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어떻게든 붙잡으려 하고, 여자는 그런 남자가 지긋지긋해서 ‘너랑 같이 사느니 차라리 죽겠다’ 하는, 그런 갈등이 느껴졌다. 하지만 2025년작에서는 그냥 오히려 여자가 남자를 조금 더 사랑하는 것 같다. 어쨌든 영화 후반에 사과를 먼저 시도한 것도 아이비였고. 테오도 아이비를 위해 노력했다고 하지만, 애초에 이 2025년작은 설정이 좀 그렇다. 1989년작과 달리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는 가장-집에서 집안일하는 사람의 성별을 확 바꾸어 버렸더니, 사실 뭘 해도 테오 쪽이 좀 못나 보인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남자가 못나 보인다는 게 아니라, 여자들은 매일 하면서도 딱히 ‘고맙다’ 소리를 바라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일을 하는데 아이비에게 굳이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한다는 점이 그렇다. 뭐, 어떤 한쪽이 전업으로 집안일을 한다면 당연히 밖에서 일을 하는 쪽이 집안일을 해 주는 쪽에게 감사의 말을 하고 자신이 하는 일만큼이나 집(과 만약에 자녀가 있다면 자녀까지)을 돌보아 주는 일이 가치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이 이상적이겠으나, 이쪽은 자기가 남자라고 좀 더 티 나게 그 인정을 요구한다. 그래서 그 면이 너무 못나 보임… 여자들이 이 일을 할 때는 어땠나요?

 

그리고 이건 내가 캐슬린 터너와 마이클 더글라스(각각 1989년작의 두 주인공 역할을 맡은 배우들)을 잘 몰라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2025년작 <더 로즈: 완벽한 이혼>을 보면서는 이 두 주인공이 아이비와 테오라는 인물들로 보이는 게 아니라 올리비아 콜맨과 베네딕트 컴버배치라는 배우들로 보였다. 너무나 잘 알려진 배우들이라 그런가, 인물에 몰입이 안 되고 그냥 배우로 보였다. 그냥 다른 역할이면 모르겠는데 둘이 커플이라는 설정이 내게는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케이트 맥키넌(에이미 역)을 좋아하는데, 그가 맡은 에이미나 앤디 샘버그(배리 역)가 맡은 배리 등, 아이비와 테오 커플 주변의 다른 커플 캐릭터들이 다 (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불행하고 그냥저냥 사는 것처럼 그려져 아쉬운 면이 있다. 솔직히 영화 후반에 나오는 대판 싸우는 장면을 위한 희생자들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뭐, 끼리끼리라고 하니까… 서로 아껴 주면서 행복하게 잘 사는 커플은 이런 커플들이랑 안 놀겠지.

 

앞에서 말했듯이 1989년작 영화를 생각하지 않고 따로 놓고 보면 이 영화는 괜찮다. 확실히 더 영국스러운, 날카롭고 싸늘한 유머를 더 첨가했고, 살벌하게 싸우긴 해도 그래도 ‘코미디’ 영화라는 장르에는 (1989년작 영화보다) 들어맞는다는 느낌. 하지만 1989년작처럼 ‘이혼에서 승리란 없고, 얼마나 지느냐 하는 문제만 있다’(그러니까 그냥 상대가 달라는 거 다 주고 깔끔하게 물러서라) 하는 교훈을 주지는 않는다. 개인적으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대니 드비토가 감독한 1989년작을 고르겠다. 그래도 이것도 나쁘진 않다. 비교하는 마음만 버리면 이것도 그 자체로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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