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Harrigan’s Phone(해리건 씨의 전화기)>(2022)

스티븐 킹이 쓴 동명의 중편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 중편 소설은 국내에 <피가 흐르는 곳에>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중편 소설집에 실려 있다). 줄거리를 간략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크레이그(제이든 마텔 분)는 은퇴한 주식계의 ‘큰손’인 해리건 씨(도날드 서덜랜드 분)네 집에서 책 읽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이다. 해리건 씨는 지인들에게 1달러짜리 복권을 사서 나눠 주곤 했는데, 이 복권을 받은 크레이그는 무려 3천 달러에 당첨된다.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할 겸, 크레이그는 당시 신제품이던 아이폰을 사서 해리건 씨에게 선물한다. 손 안의 보물 단지(또는 요물?) 같은 휴대전화에 푹 빠진 해리건 씨는 크레이그의 도움을 받아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워 나가며 유용하게 사용한다. 해리건 씨는 성격이 상냥하거나 다정하지는 않았지만 크레이그에게 애정이 있었고, 크레이그에게 큰돈을 (신탁을 통해) 유산으로 남길 정도였다. 해리건 씨의 장례식에서 그가 쓰던 아이폰을 그의 재킷 상의 안에 슬쩍 넣어 둔 크레이그. 장례식이 끝난 후 크레이그는 해리건 씨가 그리운 마음에 전화를 걸어 보았더니, 놀랍게도 아직도 신호가 울리고, 무덤에서는 해리건 씨가 핸드폰 벨소리로 설정한 음악이 흘러 나오는데…
요약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그 지점은 이야기의 중간조차 아니다. 크레이그의 아버지(조 티펫 분)는 해리건 씨가 친지도 없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부검을 했다고, 해리건 씨는 분명히 사망한 상태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아이폰은 어떻게 아직도 신호가 가는 걸까? 더욱 놀라운 점은, 고등학교에 진학한 크레이그를 괴롭히던 케니 얀코비치(사이러스 아놀드 분)에 대해, 해리건 씨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푸념을 털어놓고 얼마 지나지 않아 케니가 사망했다는 점이다! 크레이그는 이게 혹시 자기가 해리건 씨에게 케니 욕을 해서 해리건 씨가 케니를 대신 혼내 준 건 아닌가, 무언가 초자연적인 힘이 그를 처벌한 건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게 된다.
더 이상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지만, 이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하는 표현인 ‘저런 놈은 뭐하나, 귀신이 안 잡아가고’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감정 또는 생각이라는 것이다. 분명히 범죄 또는 악행을 저질렀는데 돈이라든지 권력 등을 이용해 처벌을 피하는 족제비 같은 자들. 그런 자들에게 법이 아니어도, 어떤 식으로든 정의를 구현할 방법이 없을까? 그런 마음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가질 만한 마음이 아닐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이 이야기에서는 해리건 씨를 통해 구현이 된 거고.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원작이 훨씬 낫다. 스티븐 킹이 쓴 작품들을 바탕으로 한 영화가 참 많은데, 그건 그가 놀라운 ‘이야기’를 구상하는 것도 잘하지만 풀어내기도 잘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든 영화로 만들려면 그에 맞는, 적절한 표현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 영화는 조금 안일했다는 느낌이다. 원작에 나와 있는 핵심, 그러니까 죽은 해리건 씨가 크레이그를 대신해 복수를 해 준다(또는 정의를 구현해 준다)는 이야기만 그대로 옮겼어도 될 것을, 굳이 해리건 씨네 집에 있는 벽장이 수상해 보였고 어쩌고 하는 (원작에 없는) 얘기는 왜 굳이 넣었나 싶다. 도대체 벽장에 뭐가 있었을 거라 생각했어? 악마를 모시는 제단? 해리건 씨가 주는 1달러짜리 복권도 ‘Red Devil’ 하는 이름이었고 악마 그림도 그려져 있었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공포 요소를 곳곳에 끼워 넣어야 했을까 싶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잖아요… 이야기만 놓고 봐도 충분히 초자연적인, 알 수 없는 요소를 다루고 있는데.
IMDB에 있는 이 영화 별점은 6.0점이다. 내 평가도 딱 그렇다. 완전 쓰레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소설을 완전 잘 살려서 만든 수작은 아니라는 느낌. 그냥 원작 소설을 읽고 영화는 건너뛰는 게 낫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이 실린 <피가 흐르는 곳에>라는 중편 소설집은 이 작품을 포함해 총 네 편(<해리건 씨의 전화기>, <척의 일생>, 표제작인 <피가 흐르는 곳에> 그리고 <쥐>)이 실려 있는데 이중 두 편(이것과 <척의 일생>)이 영화화된 것으로 알고 있다. 진짜 가성비 쩌네요 작가님…! 말인즉슨, 이 소설집 한 권 읽으면 영화 두 편을 본 거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척의 일생>을 바탕으로 한 <The Life Of Chuck>(2025)도 꽤 괜찮은 영화였기에 일단 이 책 먼저 읽으실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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