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Roofman(루프맨)>(2025)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제목의 ‘루프맨(roofman)’은 1990년대 후반, 대체로 맥도날드 지점의 지붕을 뚫고 들어가 돈을 훔치되, 직원들에게는 수상할 정도로 친절했던 강도 제프리 맨체스터(위키페디아 페이지)의 별명이다. 그는 맥도날드 직원들을 워크인 냉동고에 가두는 대신 “부탁합니다(please)”라든지 “감사합니다(thank you)” 같은 말을 꼬박꼬박 했고, 심지어 코트를 입지 않은 직원에겐 자기 코트를 벗어서 입혀 주는 등 이상한 포인트에서 예의가 바른 인물이었다. 그러다가 들통이 나서 45년 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용되었는데, 뛰어난 관찰력과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 4년 만에 탈옥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샬롯이란 마을에 있는 ‘토이저러스(Toys “R” Us)’에서 숨어 살았고, 그 와중에 교회에서 만난 한 동네 여인과 사귀기까지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요? 그러니까 뉴스로도 나오고 영화로도 만들어졌지 않았겠습니까.
영화 속 제프리 맨체스터 역은 채닝 테이텀이 맡았고, 그가 존 조린(John Zorin)이란 가명으로(실제로는 존 조른(John Zorn)이란 가명을 사용했다고) 사귄 동네 여인 리(Leigh) 역은 커스틴 던스트가 맡았다. IMDB에 있는 이 영화 페이지를 보면 장르를 ‘다크 코미디, 다크 로맨스, 전기, 범죄, 드라마, 역사, 음악, 로맨스’라고 구분해 놨는데, ‘이 범죄 이야기에 어떻게 로맨스를?’이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근데 정말 놀랍게도 그게 된다. 애초에 그가 탈옥한 이유도 전처와의 사이에서 얻은 딸 베키(알리사 마리 피어슨 분)를 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제프리가 탈옥 후 집에 전화했더니 ‘우리는 다 잊었으니(moved on) 다시 전화하지 말라’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물론 전처의 이런 태도는 100% 상식적이고 이해가 간다). 그래서 더 ‘나만의 가족’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이 컸을 테고, 원래 아이들과 잘 놀아 주고 잘 어울려 주는 성격이었던 것도 이게 ‘범죄’ 장르인 동시에 ‘로맨스’가 가능한 이유에도 기여하지 않았나 싶다. 여담이지만, 영화 엔딩 크레딧에 실제 인물 리의 인터뷰 장면이 조금 나오는데 리가 본인 딸들에게 맨체스터를 기억하냐고 물어봤더니 잘 기억한다고, 나쁜 말을 할 거리가 없다고 말했단다. 얼마나 애들에게 잘했으면…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 이 이야기가 ‘로맨스’가 되는 건, 첫째, 루프맨이라는 주인공의 성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병장(sergent) 출신이고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상하게도 생활력은 없는 남자. 맥도날드(그리고 종종 버거킹이나 블록버스터 같은 프랜차이즈들)를 털었을지언정 직원들을 해치진 않았고, 예의 발랐던 남자. 심지어 라이플을 들고 맥도날드 직원들에게 금고를 열라고 하면서는 “미안합니다, 미안해요. 당신들은 좋은 사람인데. 내가 나쁜 놈이에요. 이런 짓을 해서 미안해요.(“I’m sorry. I’m so sorry. You’re the good people”, “I’m the bad guy. I’m sorry for doing this to you.”)”라고 하기도 했다고(출처는 여기). 미안한 줄 알면 그러지 말아야지요…
그리고 두 번째, 그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도 그를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물론 강도짓은 나쁜 것이지만, 맥도날드가 털린다고 해서 그 지점에서 일한 아르바이트생이나 매니저 들이 월급을 못 받는 것은 아니다. 점주나 본점 입장에서는 아쉬울 테지만, 개인적인 트라우마를 제외한다면 직원들은 그다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토이저러스에서 제품을 전시하기 위해 세운 가벽 뒤 공간에서 먹고 잔 것도, 직원이나 손님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 물론 매니저 입장(영화에서는 ‘미치’라는 이름의 캐릭터로, 피터 딘클리지가 맡았다)에서는 손해가 막심하겠지만 그거야 프랜차이즈니까, 보통 소시민들이 운영하는 치킨집이라든지 작은 가게에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었다. 토이저러스에서 파는 베이비 모니터를 몇 개 훔쳐서 그걸로 직원들을 감시했다? 화장실에 몰카를 둔 것도 아니고 그냥 매니저가 컴퓨터 비번을 뭘로 쓰나, 앞으로 다가오는 달들에 어떤 이벤트가 있나 같은 것들을 알아내기 위함이었다. 직장에서 감시당했다고 하면 물론 기분은 나쁘겠지만 본인이 그냥 평범한 직장 생활을 한다면(그러니까 직장 내 불륜이라든가 뭔가 다른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면) 기껏해야 남들 안 볼 때 코딱지 판 거 외에 그다지 우려해야 할 일은 없지 않을까. 제프리가 친구 스티브(키스 스탠필드 분)를 통해 자기 신분증, 여권 등을 위조해서 자기 신분을 위조했다고 해도, 그것은 신체적 폭력(성폭력 포함)이나 강도질처럼 소시민들이 제일 우려하는 범죄들은 아니다. 다시 말해, 소시민들이 봤을 때 ‘나에게 그렇게까지 큰 피해는 끼치지 않는 사소한 범죄들’로 보인다는 것이다. 차라리 마약 거래, 화이트 칼라 사기 같은 범죄를 했으면 했지, 길을 건너는 사람을 차로 친다거나 여성, 아이, 노약자, 또는 동물을 해하는 짓은 절대 안 되는 소설 속 범죄 묘사 같은 거랄까… 반쯤 농담으로 사람들이 로맨스나 BL물에서 주인공이 다른 주인공을 황제 감금하는 것은 괜찮아도 밥 안 주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그러니까 이 정도 남자면 대충 로맨스의 대상으로 봐줘도 되지 않을까 싶은 거다. 채닝 테이텀이라는 배우의 외적 매력도 거기에 기여하겠으나(제프리 맨체스터 본인은 원래 자기 역을 맡기에 채닝 테이텀은 너무 잘생겼다고 여겼다고. 하지만 그와 이야기해 본 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기와 그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나 뭐라나), 일단 맨체스터 본인이 남자라는 사실이 제일 큰 요인인 것 같다. 이런 똑같은 짓을 여자가 했다? 그러니까 탈옥 후 어디에 숨어 살면서 어떤 남자와 사귀기까지 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 스탠스가 ‘아니, 어떻게 자기 본색을 숨기고 착한 여자인 척했지? ㄷㄷㄷ 저렇게 무서운 팜므 파탈이!’ 이랬을 거다. 맨체스터가 남자니까 ‘머리는 비상하지만 생활력은 부족하고, 예의 바르지만 어딘가 어수룩한, 마음 따뜻한 남자’ 같은 이미지로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거다. 좀 씁쓸하군.
어쨌거나 현실은 언제나 소설보다 더한 법이다. 그걸 다시 한번 경험해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를 한번 보는 것도 좋겠다. 의외로 로맨스 부분이 정말 강력하다. 이 실화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기사 또는 이 기사를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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