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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종산, 조시현, 현호정, 한정현, 박문영, 박서련, 정수읠,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by Jaime Chung 2026.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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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종산, 조시현, 현호정, 한정현, 박문영, 박서련, 정수읠, <내 인생이 알고 보니 내 인생이 아님>

 

 

현재 유행이라는(아니면 벌써 한물갔나?) 판타지 웹소설의 ‘회빙환’, 즉 회귀•빙의•환생이라는 세 가지 소재를 키워드로 삼은 앤솔러지. 일곱 작가가 참여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 두 작품만 빼고는 그냥 그렇다.

 

첫 번째 작품, 이종산 작가의 <두 친구>가 이 앤솔러지에서 제일 최악이다. 그냥 “‘맨헤라(’정신 건강’을 뜻하는 영단어 ’mental health’를 일본식으로 읽고 줄인 것.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 친구가 나에게 집착한다”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내용을 길게 늘인 것에 불과하다. 딱히 단편소설적인 즐거움도 없고, 깨달음이나 무엇도 없고, 그냥 작가가 맨헤라 캐릭터를 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안 읽고 넘어가도 무방.

 

두 번째 작품, 조시현 작가의 <크림의 무게를 재는 법>은 인간이 AI에게 지배당하며 고통받는다는 점에서 할란 엘리슨의 <나는 입이 없다 그리고 비명을 질러야 한다>를 연상시킨다. 할란 엘리슨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썩 나쁘지 않으나, 이 소재와 포인트를 가지고 쓸 수 있는 것보다 분량이 좀 길어서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이 덜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량을 현재의 70-80% 정도로만 줄였어도 조금 더 긴장감이 살았을 것 같다. 여기에서 글이 끝났으면 너무 흥미롭고 ‘와, 이 뒤에 어떻게 될까?’ 싶은 포인트가 두어 군데 있었는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감으로 인해 타이트한 느낌이 사라졌다. 그래도 첫 작품보다는 훨씬 낫다.

 

세 번째 작품, 현호정 작가의 <물결치는~몸~떠다니는~혼>은 지구가 멸망한 후, 기생 쌍둥이라는 새로운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이것도 읽을 만하다.

 

네 번째, 한정현 작가의 <어느 날 여신님의 다리 위에 우리가>는 다리의 여신이자 질투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해치는 존재인 ‘하시히메’ 전설을 소재로 사용했는데,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는 알겠으나 나에게는 굳이 일본 전설을 가져와서 쓸 것까지야 있나 싶었다. 한국인 언니가 일본 남자랑 결혼해서 살다가 (스포일러를 막기 위한 후략) 하는 설정도 나에게는 굳이 하시히메 전설을 쓰기 위해 한국과 일본 사이에 교량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으로 보여서 별로였다. 내가 너무… 흥선대원군 같나?

 

다섯 번째, 박문영 작가의 <덮어쓰기>는 ‘민희’라는 이름을 가진 두 대학생들이 몰카 촬영에 대처하는 법을 다루었다. 한쪽이 무력한 피해자라면, 다른 한쪽은 가해자들에게 글자 그대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보복하는 자경단의 일원이다. ”자기가 남이 되고, 남이 자기가 되는 걸 봐야지.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찬 세상이 지옥인 걸 알아야지. 민희야. 그때도 지금도 우리가 본 영상에 우리가 어디 있어?”라는 인용문까지 참 멋지고 좋았는데, 이 자경단을 나타내는 캐릭터가 일본 만화 <건슬링거 걸>에 등장하는 ‘키아라’라는 캐릭터 이름이라는 게 (내가 추측한 게 아니고 본문에서 정말로 이렇게 밝힌다) 좀 안 멋졌다. 멋지지 않은 정도가 아니고… 굳이 여기에다가 일본 서브컬쳐 작품을 갖다댈 필요가 있나? 뭐, 다른 고전 작품(책이 됐든 영화가 됐든)에서 가져온 말이나 라틴어 경구 같은 것도 아니고 서브 컬처 일본 만화 캐릭터 이름은… 좀 깬달까. 하다 못해 같은 일본 작가라도 이미 잘 알려지고 문학성을 인정받은 기성 작품에서 따오면 안 됐을까? 이 점이 나에게는 커다란 옥에 티처럼 느껴졌다. 이것만 아니었어도 진짜 완벽했을 텐데…

 

여섯 번째, 끝에서 두 번째 작품은 박서련 작가의 <니가 왜 미쳤는지 내가 왜 알아야 돼>이다. 여기서부터가 진짜다. 박서련 작가는 ‘회빙환’이라는 소재를 써서 그냥 흥미로운 이야기, ‘한번’ 읽어 볼 만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이 단편소설의 주인공은 한 추리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 강인영에 빙의했음을 알게 된다. 그는 스키 동호회에서 ‘네 번째로 예쁜’ 여자다(참고로 이 동호회에 여자 회원은 총 네 명이다. 한마디로 가장 안 예쁘다는 뜻이다). 그는 이 추리 소설을 중반 정도 읽었기에, 곧 누가 어떻게 죽어 나갈지는 알지만 누가 진짜 범인인지는 모른다. 그는 적당히 자기가 맡은 인물인 척하면서 이 소설의 끝을 예측해야 한다.

독자인 나는 최근에 퇴직한 은행원인 강인영보다 다른 인물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았다. 독자여서 내가 다른 등장인물보다 먼저 아는 것도 있었지만, 그건 조감도처럼 묘사된 인물 관계와 초반에 살해당하는 인물의 명단 정도. 나머지는 나 스스로 알아내거나 생각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추리소설 속에 있는 내가 이 소설을 끝까지 읽은 적 없다는 것은 강인영이 끝까지 살아남을지 그러지 못할지 역시 알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강인영이 죽으면 나도 죽는지, 강인영이 죽어야 내 의식이 이 몸을 빠져나가 원래 몸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등이 불확실한 이상은 일단 강인영이 지키기 위해 추리력을, 추리력이 아니라면 초능력이라도 짜내야 했다.

그런데 범인은 알고 보니…!? 이걸 추리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누가 범인이냐’ 하는 반전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이미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님이 다 추리 소설의 기반을 다져 놓으셨기에… 그렇지만 그 반전까지 나아가는 길과 거기에서 얻게 되는 깨달음이 이 소설의 주제와 닿아 있다. 빙의를 그냥 소재로 쓴 게 아니라, 남자들이 모든 주권을 가지고 제 멋대로 이야기를 써나가는 세상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현실을 보여 주는 도구로 썼다. 또한 이 소설은 주권을 가진 작가와 그걸 읽어 나갈 수밖에 없는 ‘독자’의 관계이기도 하다. 도구가 목적에 적합하다. 진짜 완벽하다.

 

그다음, 마지막 일곱 번째 작품인 정수읠 작가의 <이 시점에 문필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 없다>는 상당히… 자전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문과라도 안 죄송한 이세계로 감>이라는 웹소설을 쓴 이 작가에 대해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소설 속 내용이 상당히 자전적으로 보인다. 적어도 나에게 그런 환상을 갖게 한달까.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창작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이 작품은 흡인력이 있다. 글쓰기만 보고 살아 온, 극 중 화자의 구질구질한 삶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람이 잘됐으면 좋겠다’ 하는,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데, 화자의 인생은 끝까지 구질구질하다. 소설 제목처럼 이 화자가 글로 일억을 벌려면 다시 태어나는 수밖에는 없다. J. K. 롤링 정도 되어야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인가…

 

여기까지가 굉장히 개인적이고,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내 평가이다. 전체적인 평을 내리자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시되 마지막 두 작품에만 집중하시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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