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트렌트 돌턴, <Gravity Let Me Go>

내가 눈물 콧물 흘리며 읽은 <우주를 삼킨 소년>의 저자 트렌트 돌턴의 최신작(2025년 10월 출간). 언제나 그랬듯 이번 작품에도 저자 본인의 모습이 많이 담겼다고 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은 호주 퀸즐랜드 주의 살기 좋기 좋은 동네, ‘쥬빌리’에 사는 노아 코크. 그는 범죄 사건들을 취재해 온 저널리스트이다. 어느 날, 그가 아내 리타와 두 딸, 에린과 클렘(클레멘타인의 애칭)과 같이 사는 집의 우편함에 정체 모를 인물로부터 온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이 수상한 메시지를 통해 그는 탐신 펠로우스라는 실종 여성의 시신을 발견하고, 이 사건에 대해 책을 썼다. 자기 집 우편함에서 평생 한 번 접할까 말까 한 특종을 얻은 셈. 문제는 그가 이 책에 몰두하느라 가족을 돌보는 데는 뒷전이었다는 거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이제 좀 숨을 돌릴까 했더니 그의 아내 리타는 갑자기 말하기를 거부한다. 남편인 노아뿐 아니라 딸들, 동네 사람들, 그 누구에게도. 발성 기관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그냥 말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이제 그는 아내가 왜 말하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아내가 다시 말하게 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찾기 위해 애쓰는 와중에, 자신의 책으로 인해 얻게 되는 대중의 관심, 경찰의 비협조, 그리고 살해 협박까지 견뎌내야 한다.
이 소설은 글쓰기에 관한 책이면서 커리어와 야망, 그리고 그 대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노아는 살면서 평생 한 번 얻을까 말까 한 대박 사건, 그러니까 탐신 펠로우스라는 실종 여성의 사건을 취재하게 된다. 그가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범인은 누구일지 추리해 가는 동안 가까운 이들은 뒷전이 되는데, 여기에서 가까운 이들이라 함은 같은 집에 사는 아내와 두 딸만을 말하지 않는다. 노아의 아버지는 노쇠해서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면서 지내는데 노아가 책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사로부터 살 날이 기껏해야 한 달가량 남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뒤로 밀어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노아는 인정하고 후회할 수밖에 없다.
인상적인 이 책의 제목은 소설에 여러 번 등장하는 미스터리한 문구에서 가져온 것이다. 소설이 시작하는 시점에서 노아는 샤워를 끝내고 나와 욕실 거울에 ‘Gravity let me go’라는 알쏭달쏭한 글귀가 쓰인 것을 본다. 정확히는 이렇게.
Gravity
let
me
go
그가 샤워를 하는 동안 누가 들어와서 손가락으로 거기에 메시지를 남긴 것일까? 하지만 아내 리타는 이미 출근한 뒤고, 두 딸은 욕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력이 나를 (날아가게) 버려두었다’ 또는 ‘중력아, 나를 놓아 다오’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이 표현은 맥락상 전자로 해석하는 게 옳을 것이다(나는 후자가 더 마음에 들지만). 극 중 리타가 콜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막내딸 클렘과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에 휘말려 리타가 거의 날아갈 뻔한 장면이 나오기 때문이다.
폭풍우에 휘말려 날아갈 뻔했다는 말에서 이미 감을 잡으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소설 속에서 <오즈의 마법사>는 자주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결과적으로 탐신 펠로우스 사건을 노아가 붙잡게 만든, 노아의 집 우편함에 들어 있던 메시지는 노아를 ‘레몬 드롭’이라고 부르며 ‘집에 가고 싶다’라고 했다. 노아는 이 미스터리한 존재에게 ‘파랑새’라고도 불린다(<오즈의 마법사> 주제가인 <오버 더 레인보우> 가사를 떠올려 보시라). 탐신이 신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는 빨간 구두도 도로시를 연상시킨다. 탐신의 딸인 헬렌은 <오즈의 마법사>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하루에 한 번씩 돌려 볼 정도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저자 트렌트 돌턴이 노아라는 인물에게 자신의 모습이 많이 반영돼 있다고 한 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겠다. 커리어, 일에 매몰되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과 보낼 시간조차 내지 못한다는 거. 이런 점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소설은 또한 영리하게도 계속해서,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미스터리를 남겨 둔다는 것이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여러 가지 궁금한 점이라고 할까, 미스터리라고 할까, 그런 것들을 주면서 하나씩 비밀을 풀어내는데, 마지막 한 가지는 끝까지 붙잡고 있다가 최후에서야 밝힌다. 그래서 ‘아, 이제 그건 알겠어. 하지만 저건 뭔데?’ 하며 모든 비밀을 다 알게 될 때까지 읽어 나가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을 공유하자면 여길 꼽고 싶다. 노아의 막내딸 클렘은 아빠를 닮아 ‘게코가(街) 가제트’라는 동네 신문을 만든다. 클렘은 이 신문에 실을 요량으로, 자기 엄마 리타가 젊을 적에 화재에서 구해냈다는 마이클이라는 남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길에 아빠에게 인터뷰 비법을 묻는다. 노아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속에 커다란 박물관을 가지고 있는데, 진짜 중요한 비밀은 휘황찬란 멋지고 번쩍이는 갤러리에 두지 않고, 그 누구도 들여 보내지 않는 창고에다 숨겨 두고 있다고 말한다.
‘You want to get to the storage room,’ I say. ‘You want to get to the storage place at the very end of the museum, that room that’s dark and covered in cobwebs that nobody wants you to enter. The place where they store the cases made of nailed-down plywood. These are the storage rooms of our lives that never see the light of day. The ones we always keep locked. The rooms you gotta open with a crowbar.’
Clem nods, scribbles: Get to the storage room.
‘So the storage room is where they keep their secrets?’ Clem asks.
‘Sometimes,’ I reply. ‘But sometimes it’s just a single moment. That one revelatory moment of their life that speaks to who they really are, not just who they say they are.’ ‘But why would anyone let a journalist bring a crowbar into their museum?’
‘Well, time is a crowbar. Trust is a crowbar. Enthusiasm is a crowbar. Understanding is a crowbar.’
‘Love is a crowbar,’ Clem says.
‘How so?’
‘I’m only ever gonna let the people I love bring a crowbar into my museum.’
‘Sounds pretty smart to me, kiddo,’ I say.
Clem scribbles more notes. Then she looks up at me, eyes squinting in the sun, face filled with thought.
‘Maybe that’s all we gotta do, Dad,’ Clem says. ‘Find someone we love enough to hand them the crowbar.’
That makes me laugh. ‘Maybe, indeed.’“너는 창고로 가야 해,” 내가 말한다. “박물관의 가장 끝에 있는 창고, 어둡고 거미줄에 뒤덮여서 아무도 네가 들어가길 바라지 않는 그 방으로 가야 해. 못으로 고정한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관하는 그곳에 말이야. 그것들이야말로 절대 햇빛을 보지 못하는, 우리 삶의 창고란다. 언제나 우리가 잠가 두는 창고들. 쇠지렛대로 열어야 하는 방들 말이야.”
클렘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적는다. ‘창고로 갈 것.’
”그럼 창고가 사람들이 비밀을 숨겨 두는 곳이에요?” 클렘이 묻는다.
”때로는 그렇지.” 내가 대답한다. “하지만 때로 그건 그냥 단 한순간일 뿐이야. 그들이 자기 입으로 말하는 ‘나는 이런 사람이야’ 하는 거 말고, 그들이 정말 누구인지를 폭로해 주는 단 한 순간이지.”
”하지만 누가 왜 저널리스트를 자신의 박물관에 들여 보내들이려고 하겠어요?”
”흠, 시간이 바로 쇠지렛대란다. 신뢰가 쇠지렛대지. 열정이 쇠지렛대야. 이해가 쇠지렛대이기도 하고.”
”사랑도 쇠지렛대죠.” 클렘이 말한다.
”무슨 말이냐?”
”나라면 오직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만 내 박물관에 쇠지렛대를 들여가게 허락할 거예요.”
”꽤 똑똑한 말이구나, 얘야.” 내가 말한다.
클렘은 무언가 더 끼적인다. 그러고 나서는 눈부신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며, 생각에 잠긴 얼굴로 나를 올려다본다.
”아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그거인 것 같아요, 아빠.” 클렘이 말한다. “쇠지렛대를 들려 줄 만큼 사랑할 사람을 찾는 거요.”
그 말에 웃음이 나온다. “아마 정말 그럴 거다.”
이 말이 깊은 여운을 남기는 건, 우리는 때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못하고 숨기기 때문이다. 노아에게도 그런 비밀이 있었는데… (더보기) 나는 그냥 이 장면이 너무 좋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상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정도로 솔직하고 취약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진리가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온달까.
트렌트 돌턴의 책은 아직까지 <우주를 삼킨 소년> 이외에 국내에 번역된 게 없는데, 사실 이 책 외에도 여러 장편 소설을 냈다. <Gravity Let Me Go>도 국내에 번역되어 들어오면 좋겠다. 나는 4주 정도 걸려서 읽었는데 모국어로 번역돼 있었으면 훨씬 더 빨리 읽었을 것… 좋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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