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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샘 J. 밀러, <슈퍼히어로의 단식법>

by Jaime Chung 2026.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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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샘 J. 밀러, <슈퍼히어로의 단식법>

 

 

십 대 게이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한 게이 소년이 자신을 굶길수록 온 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슈퍼 파워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아빠 없이 혼자서 고된 노동으로 자신을 먹여 살리는 엄마와 어느 날 갑자기 가출한 누나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누나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잘생긴 남학생 타리크에게 접근하기로 하는데… 사실 그는 타리크를 짝사랑하고 있다.

 

주인공 맷은 단식이 자신의 몸에 미치는 영향을 기록하는데, 각 장(章)은 이런 감각의 발견으로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이런 것.

우리 몸은 희한한 방식들로 자신의 굶주림을 표현하곤 해. 어떤 방식은 직설적이기도 하고. 음식에 대한 굶주림은 네 배 속에서 시작되지. 성에 대한 굶주림은 네 다리 사이에서 시작되고. 또 어떤 표현 방식들은 좀 은근해. 너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곳에서 은밀히 나타나기도 한다고. 예를 들어 우리 아빠에 대한 갈망과 같은 굶주림이 그래. 아빠가 누군지 알고 싶고, 아빠를 만나고 싶고, 아빠의 목소리를 전화상으로라도 듣고 싶은 그런 마음 말이야. 아빠에 대한 굶주림은 내 팔 안쪽에서 시작되더라고.

네 몸은 다양한 굶주림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해. 그냥 사랑에 반응하는 방식대로 증오에도 똑같이 반응하지. 그래서 렉스가 슈퍼맨에게 계속 집착하는 거야. 배트맨이 조커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똑같고.

그래서 모든 복수 이야기가 사랑 이야기와 구분되지 않는 거야.

 

내가 게이 소년이 아니라서(게이도, 소년이었던 적도 없으니) 이게 게이 소년을 잘 표현했는지는 알아볼 방도가 없다. 하지만 나와 모든 게 다를 듯한 맷에게도 내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게 잘 썼다는 건 알겠다. 당연히 작가 본인도 게이고, 청소년 시절 섭식 장애를 겪었음을 고백했다. 작가가 진짜 섬세한 사람이라고 느낀 게, 극 중에서 맷과 타리크가 읽는 책이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와 <다르마 행려>인데, 그게 어떻게 읽힐 수 있는지 이미 인지하고 있는 듯, 맷의 누나 마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책 진짜 형편없는데.」 마야 누나가 내 손에서 『길 위에서』를 뺏어 가며 말했다.
「나는 이 책 짱이던데.」 내가 말하며 책을 도로 뺏어 오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갑자기 현기증이 일었다. 내 오랜 친구들, 검은 별들이 벽면에서 마구 피어났다.
「물론 너는 그렇겠지.」 누나는 내가 갑작스럽게 창백해지는 모습을 알아채지 못한 채 말했다. 「이건 남성 기득권에 관한 책이야.」
「남자들에 관한 책이긴 하지.」 내가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 정도는 인정할게. 하지만 그들이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잖아. 그들은 1950년대 시트콤 <오지와 해리엇의 모험>스러운 미소 만연하고 가짜 같고 사악하도록 남성 우월주의적으로 여성을 억압하던 사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잖아.」
「당시에는 너도 알다시피 낙태가 불법이었잖아. 피임약도 발명되지 않았을 때고. 그런데 그 남자 둘이 차를 끌고 돌아다니며 보는 여자마다 잠자리를 갖잖아. 그러면 그 여자들은 임신을 하고, 절대 육아를 도와주지 않을 무책임한 남자들의 애들을 키우는 일에 얽매이게 되지. 어쨌든 네가 그 책을 좋아하는 유일한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두 남자가 서로를 사랑했다는 점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들은 두려워서 그 마음을 인정하거나 달리 어찌하지 못했고.」
「그럴지도 모르겟네.」 나는 수긍했다. 아빠가 잭 케루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나도 좋아했던 거야 또는 타리크가 준 책이기 때문에 좋았던 거야 또는 타리크가 그 책을 좋아해서 나도 좋아한 거야와 같은 말들은 하지 않았다.
누나가 덧붙였다. 「게다가 당시는 1950년대였다는 걸 기억해. 짐 크로의 시대였잖아. 이 남자들이 흑인이었다면 차를 끌고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멋진 모험을 하지 못했을 거라고. 수많은 가게가 그들을 상대해 주지 않았을 거야. 수많은 기계공이 그들의 차를 고쳐 주지 않았을 거고. 게다가 백인만 출입 가능한 <유색 인종 차별 지역>에 우연히 들어서기라도 했다면 물리적 폭행을 당할 위험까지 무릅썼겟지. 그러니 이 책은 백인 우월주의에 관한 책이기도 해.」 누나가 내게 책을 돌려줬다.

개인적으로 나는 <길 위에서>를 읽어 보고 극혐했다. 위 인용문 말대로, 백인 남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니면서 여성이랑 자유롭게 자는데 그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재미만 보는 것 같아서 불쾌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한곳에서 오래 뿌리 내리고 사는 편이라 방랑벽 있는 이들을 더 싫어하는 것도 있는데, 그 책을 읽으며 ‘자유’라는 이름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남의 기분이나 상황에는 일절 관심 안 주는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야의 저 말에 얼마나 속이 시원했는지. 애초에 맷이 자기 누나를 끔찍하게 사랑하고 잘 따르는 것만 봐도 여자는 자기의 수비 범위가 아니라고 무시하는 그런 류의 게이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인간적이고 따뜻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대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자로서 너무 순진한 걸까? 성별, 성적 지향과 무관하게 사람들끼리 잘 지내 봅시다 좀…

 

청소년들이 읽어도 좋을 소설이다. 섭식 장애라는 게, 굶주림을 참는다는 게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려는 일종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주인공의 현실과 잘 어우러져서 영리하게 잘 쓰였다. 후반에 일어나는 일은 진짜 맷이 슈퍼 파워를 얻은 것인지, 아니면 지나친 굶주림과 정신적 문제로 인한 착각인지 일부러 애매하게 남겨졌는데, 둘 다 그럴듯해서 좋았다. 영화화하기에도 적당한 소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관심이 간다면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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