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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제넷 맥커디, <Half His Age>

by Jaime Chung 2026. 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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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제넷 맥커디, <Half His Age>

 

 

우리나라에는 아마 니켈로디언 채널이 만든 십 대를 위한 시트콤 <iCalry(아이칼리)>(2007-2012)에서 칼리(미란다 코스그로브 분)의 절친 샘 역을 맡은 배우로 가장 잘 알려져 있을 작가, 제넷 맥커디의 첫 장편소설이다(여담이지만 왜 저자 이름을 ‘제넷’이라고 음차했는지 모르겠다. 보통 이런 스펠링은 ‘지넷’으로 읽는데 말이다). 그의 작가 데뷔작은 아마도 국내에도 꽤 큰 충격을 불러온, 솔직하고 슬픈 에세이 <엄마가 죽어서 참 다행이야>다.

 

이 소설은 자극적이라고 할까, 충격적인 설정으로 시작한다. 왈도라는 이름의 열일곱 살 소녀는 미국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에서 엄마랑 같이 산다. 친아빠는 오래전에 엄마를 떠났다. 애 하나 딸린 여자라고 해도 노력하면 그렇게까지 불행하게는 살지 않을 수 있는데 엄마가 심각한 남미새이기 때문에 일이나 딸을 돌보는 데는 큰 관심이 없다. 그래서 왈도는 여성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냉동식품을 데워 먹고 유튜브를 보거나 아마존, 쉬인, 포에버21 등에서 온라인 쇼핑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 두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충동 구매’를 하는 게 왈도의 습관이다. 어느 날, 왈도는 ‘창의적 글쓰기’ 수업에 들어온 선생님, 중년의 백인 남자 코기 씨에게 반하고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장편 소설인지라 아주 썩 잘 쓰이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너무 전형적이고 뻔한 구석이 많다. 예컨대, 소설은 왈도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또래 남자애와 섹스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그 섹스가 끝이 남과 동시에 둘은 헤어진다. 남자애가 먼저 (자기는 이제 볼 장 다 봤겠다) 헤어지자고 하는데 왈도도 별 저항 없이, 미련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헤어지기 직전에 왈도는 자기가 엄마에게 ‘너는 사랑하기 어려운 애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며 이를 회상하는데, 어, 글쎄… 그렇게 생각하면 애가 왜 열일곱 살의 나이에 벌써부터 겁도 없이 이 남자애랑 저 남자애랑 자고 다니는지, 그러면서 딱히 쾌락이랄 것도 느끼지 못하면서, 어떻게든 상대와 연결된 느낌, 사랑받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는지는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이 시점에, 이렇게 대놓고 하는 게 너무나 뻔하지 않나. 엄마는 남미새고, 하나뿐인 딸을 돌보는 데 관심도 없고, 그 딸이 어린 시절부터 ‘너 같은 애는 사랑하기 어렵다’ 같은 말을 했으면 나라도 그렇게 됐을지 모른다.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이걸 이렇게 뻔하게 풀어냈어야 했나? 무척 아쉽다.

 

저자의 건조하고 꾸미려 하지 않는 문체가 이 소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게 냉소적인 십 대 소녀의 목소리와 잘 어울기도 하고. 예를 들어 방금 언급했던, 왈도가 섹스를 하던 또래 남자애가 갈 것 같다고 할 때에도 왈도는 “적어도 그 애는 자기가 하겠다고 한 일을 했다. 나는 어떤 형태라도 신뢰할 만한 구석(reliability)은 환영하니까.”라고 (마음속으로) 말한다. 또한 코기 선생님과 결국 불륜을 하게 된 후에도 왈도는 그가 자기에게 이런저런 취향을 ‘가르치게’ 내버려 두며 이렇게 혼자 마음속으로 궁시렁댄다. “나는 내가 데이트하거나, 자거나, 어떤 관계든 맺고 있는 상대가 나를 알려고 하는 대신 내가 알아야 할 것을 전부 알려 주는 데 익숙하다. 그게 남자들, 또는 남자애들, 또는 둘 다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여기저기에서) 말을 인용하고, 독백을 하고, 불평하고, 설명하고, 설명하고, 또 설명한다.”

 

내가 보기에 저자가 이 소설에서 잘하는 건 이 사회에서 여성이, 특히 십 대 소녀가 얼마나 자본주의적 마케팅에 속아 길들여졌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왈도네 화장실 캐비닛은 이미 화장품과 스킨케어 제품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 제품을 사들인다. 제모해야 하니까 새 면도기와 셰이빙 크림을 사고, 머릿결과 피부, 손톱에 좋다는 영양제를 사서 하루 권장량의 네 배를 먹고, 머리에는 코코넛향 컨디셔너를 쓴다. ‘오버나잇 립 마스크’가 (가격은 그 절반인) 립 밤과 똑같은 것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사고, 바디 버터, 바닐라-자스민 향 향수, 네일 버퍼, 바디 스크럽, 2달러짜리 마스크팩을 산다. 빅토리아 시크릿에서 일해서 버는 돈은 이런 충동 구매로 다 들어가고, 결국 나중에 다 환불을 할 걸 알면서도 일단 사들인다. 이런 장면이 여러 번 반복해서 등장해서, 요즘은 십 대도, 아니 십 대니까 더더욱 ‘이런 물건으로 내가 진짜 가지고 싶고 필요한 것(행복이라든지 안정감 등 정신적으로 내가 느끼고 싶은 감정들)을 대체할 수 있다’라는 환상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왈도의 남미새적인 면모에 대해서는… 이것도 할 말이 많은데 간략하게 하겠다. 적어도 왈도는 이제 열여덟 살이니까(소설이 시작할 때는 열일곱 살이지만 극중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열여덟 살이 된다) 그렇게 남자에게 목매는 게 이해는 된다. 이제 막 사랑에 빠졌고 진짜 처음으로 진지하게 좋아한 남자가 코기 선생 같은 작자면 그렇게 구를 수도 있지. 그렇지만 왈도네 엄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남미새인 건지. 오히려 엄마가 그렇게 심각하면 왈도야말로 어릴 때부터 ‘나는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하고 남자에게 관심 없이 살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요즘 여자애들 완전 불꽃 페미던데…

 

저자는 ‘여성의 분노(female rage)’를 이 소설의 주제라고 하지만, 여러 독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딱히 ‘분노’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왈도는 그보다는 공허하고 무감각한 것처럼 보인다. 소비를 통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몰아내려고 하는 왈도를 보여 줌으로써 현대 소비 문화를 비판한 점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저자가 정말로 ‘여성의 분노’를 표현하고자 했다면, 솔직히, 글을 더 잘 썼어야 한다. 이건 좀 아쉽군요.

 

288쪽밖에 안 되고(300쪽 넘는 원서를 읽다 보니 이 정도는 이제 짧게 느껴진다…) 왈도가 남미새 짓을 하는 걸 약간 아침 드라마 보는 느낌으로 보다 보면 정말 금방 읽을 수 있다. 비슷한 소재(십 대 소녀가 학교 교사과 그루밍 관계를 맺는다는 점)를 가지고 훨씬 더 잘 써냈다는 <My Dark Vanessa>는 나중에 읽어 볼 예정이다. 제넷 맥커디는 작가로서 여전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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