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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너새니얼 브랜든, <낭만적 사랑의 심리학>
너새니얼 브랜든은 '자존감'의 원리를 최초로 명확하게 규명한 심리학자로, '자존감 개념의 아버지'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흔하게 입에 담는 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을.
1장에서는 (서양) 역사에서 각 시대에 사람들이 가졌던 사랑관을 살펴보고, 2장부터는 '우리는 왜 사랑하고 싶어 하는가',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 '사랑할 때 넘어야 하는 어려움' 등, 보통 연인들이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문제를 다룬다. 2장부터가 본격적인 내용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며 좋았던 문장들을 옮겨 보는 것으로 책 소개를 대신할까 한다. 일종의 명상록이라고 생각해 주시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강렬하게 느낄 때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우리가 드러내는 성격에는 과거의 수많은 만남이 맺은 결말, 과거의 경험이 깔려 있으며, 타인이 우리의 행동에 보인 수많은 태도와 반응이 스며들어 있다. 만남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진화해 간다.
'자존감과 낭만적 사랑' 집중 과정을 진행하면서 나는 이러한 심리 문제를 바로 보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고안했다. 참가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지시를 준다. "공책의 깨끗한 면을 펼쳐 맨 윗줄에 '어머니'라고 쓰시오. 그다음에 여섯 개에서 여덟 개의 문장을 써서 어머니를 묘사하시오. 그러고 나서 어머니가 사랑을 주고받는 능력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쓰시오. 다음 장을 펼쳐 맨 윗줄에 '아버지'라고 쓰고 같은 식으로 묘사하시오. 다음 장을 펼쳐 '어머니나 아버지에 대해 실망한 것은'이라고 쓰고 그 뒤에 이어질 수 있는 여섯 개에서 여덟 개의 문장을 쓰시오. 다음 장을 펼쳐 첫 결혼 상대 또는 인생에서 가장 격정적이고 힘든 사랑을 했던 연인의 이름을 쓰시오. 앞에서 쓴 것과 마찬가지로, 이름 아래에 그 사람의 특징을 묘사하는 문장을 여섯 개에서 여덟 개 쓰고 그 사람의 사랑하는 능력과 사랑받는 능력에 대해 당신이 생각하는 바를 한 문장으로 쓰시오. 다음 장을 펼쳐 '(그 사람의 이름)에 대해 실망한 것은'이라고 쓰고 그 뒤에 이어질 수 있는 문장을 여섯 개에서 여덟 개 쓰시오." 언제나 괴로워하는 신음, 웃음소리, 진저리 치는 소리가 방 안을 채운다. "맙소사, 엄마랑 결혼했잖아?" 누군가 비명을 지른다. "난 아빠랑 결혼했어!" 다른 사람의 고함이 돌아온다. "나는 최소한 결혼 안 할 만큼은 제정신이었다고." 또 다른 사람이 소리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다섯 쪽은 엄청나게 충격적이지만 아주 새로운 충격은 아니다.
(부모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보고 자란 여성 이야기 이후)
어머니, 아버지와 똑같이 불행해진다는 것은 곧 어머니, 아버지에게 '속한다'는 뜻이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곧 어머니 또는 아버지에게 맞서 그들로부터 독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쩌면 가족 모두와 맞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전망은 생각만으로도 무서운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어머니와 사이에 있을 수도 있고, 아버지와 사이에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겪는 것은 여성만이 아니다. 남성도 어머니나 아버지로부터 '너는 앞으로 낭만적 사랑으로 행복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의미의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착한 아이'가 되기를 그만둔다는 것을 뜻한다. 연인 혹은 배우자와의 사랑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은 자신의 원 가족에게서 분리되는 일이기도 하다. 원 가족에게서 분리되려면 일정 수준의 독립성을 갖추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여기서 우리는 분리 개별화, 자존감 결핍, 행복감에 따르는 불안이라는 주제들이 어떻게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는지 관찰할 수 있다.
또 자율적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그 사람만의 삶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상대가 혼자 있고 싶어 하거나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에 더 신경쓸 때도 있다는 것, 자신과의 관계가 아니라 다른 중요한 문제에 골몰하기도 하며 때로는 자신과는 직접적으로 전혀 상관없는 문제, 예를 들어 직업, 개인적 변화, 깨달음, 성장을 두고 고민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자율적인 사람은 항상 자신이 무대 중심에 있어야 한다거나 최우선으로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다고 해도 당황하거나 겁먹지 않는다. 자율적인 사람은 사랑하는 상대에게도, 자기 자신에게도 이런 자유를 허용한다.
(...)
자율적인 사람은 아무리 서로 열정적으로 사랑한다 해도 각자 독립적인 공간과 자유가 필요하다는 것, 때로 홀로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아무리 절실하게 사랑하는 연인들이라 해도 '오로지' 누군가의 연인이기만 한 사람은 없다. 더 넓은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각자 서서히 발전하는 독자적인 인간이다. 자율적인 사람은 인간이 궁극적으로 혼자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부인하거나 그 운명에 맞서지 않고, 끔찍한 고통이나 비극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자율적인 사람은 타인과 맺은 관계를 통해 인간은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얻으려고 끊임없이 헤매지 않는다. 자율적인 사람은 인간은 본래 홀로인 존재이기에 사랑이 특별하다는 것을 이해한다. 혼자라는 사실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에 자율적인 사람이 낭만적인 사랑을 이루는 데 특히 유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화가 났을 때 화가 났다고 말하리라 믿을 수 있는 것이 나 자신에게 좋은 일이다. 상대가 자신을 속상하게 하거나 화나게 하는 일을 두고 침묵한다면 그것은 나 자신에게 해로운 일이다. 나의 상처, 나의 두려움, 나의 분노를 기꺼이 털어놓고자 하는 태도가 낭만적 사랑을 성장시킨다. 나의 감정을 숨기려 하는 태도는 낭만적 사랑의 성장을 방해한다.
정직함과 용기는 낭만적 사랑을 성장시킨다. 비겁함과 거짓말은 낭만적 사랑을 무너뜨린다.
많은 사람들이 대개 서른 살이 넘으면 낭만적 사랑뿐 아니라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열정과 의욕을 잃곤 한다. 그런데 왜 꼭 낭만적 사랑만 짚어서 말하는가? 낭만적 사랑의 불만 꺼지고 다른 불은 타오를 리 없다. 그의 내면에는 모든 불이 꺼져 있을 게 분명하다.
사랑하는 사람 덕분에 내가 느끼는 즐거움을 상대방에게 보여 주는 것만큼 감동적인 일이 또 있을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숨기고 가라앉히고 지워 버려야 어른이라고 배우며 자란다. 이런 사람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그 사람에게 느끼는 애정이 얼마나 깊은지, 그 사람 덕분에 자신이 일머나 기쁘고 행복한지를 자신이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이 알까 봐 두려워한다.
다른 사람을 보살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을 믿는 것이다. 나 자신이 필요로 하고 원하는 것을 그 사람에게 솔직하게 보여 주면서도, 그 사람이 나의 욕구와 소망을 채워 주려고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이다. 그 사람이 지닌 힘과 내적 자원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면서도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손을 내미는 것이다.(그리고 때로 도움을 청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손을 내밀어야 할 때가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분위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그러면서도 그 사람이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하는 순간도 있을 수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밀하고 서로 깊이 사랑하는 관계에서도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고 스스로 존중해야 한다. 사랑하는 관계에서는 타협과 절충이 발붙일 곳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확실히 그럴 때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의 기쁨과 만족을 위해 나 자신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것을 무시하고 희생하는 일이 너무 잦다면, 나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죄를 짓는 것이다. 나에 대해 짓는 죄는 무엇일까? 나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배신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대해 짓는 죄는 무엇일까? 상대방이 내가 희생한 결과를 누리도록 함으로써 결국 그 사람을 내가 미워할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 하기는 어렵다.
내가 질투심을 느낀다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단순히 질투심을 털어놓는 것을 넘어 마음속 불안과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깊은 속내를 털어놓을 때, 괴로운 마음이 덜해지거나 나아가 사라질 수 있다. 낭만적 사랑을 위해서는 표면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자기 내면 깊숙이 내려가 두려움과 무력감, 과거에 버림받은 적이 있다면 그 기억에까지 가 닿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숙한 사랑의 특징 중 하나는 상대방을 깊이 사랑하면서도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가 나고 따분하고 거리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순간순간, 하루하루, 또는 어느 한 주일에 느끼는 감정 변화로 관계 자체를 부정적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쌓아 온 역사가 있다는 것, 둘의 관계에는 맥락이 있다는 것, 당장 눈앞에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그 역사와 맥락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근본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다. 성숙한 사람은 기억한다.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한다. 사랑하는 상대가 오늘 한 행동만 보고 그를 평하거나 정의하지 않는다.
정말 너무나 행복하다고 느낄 때 이 행복이 변치 않기를 바라는 마음, 지금 이 순간을 영원히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사랑이 영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오히려 사랑은 인간의 삶에서 가장 영원한 것이다), 이 우주에서는 변화와 움직임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해 명상해 볼 만한 주제가 가득한 책이며, 성숙한 사랑을 위해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한 권 사서 두고두고 오래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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