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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구정우,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by Jaime Chung 2019.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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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구정우,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

 

 

저자 구정우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사회학교 교수다.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High Fidelity, 2000)>를 패러디한 숱한 책/영화/드라마 중에서 이게 제일 교육적인 책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은 난민 문제, 범죄자의 인권, 양심적 병역 거부, '미투' 운동, 동성 결혼 허용, 혐오 표현의 자유, 장애인 인권, 채용과 관련한 정당성과 차별/역차별 이슈, 파업권 등을다룬다.

읽다 보면 저자의 입장이 어느 쪽일지 대강 예측은 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한쪽을 강하게 강요하거나 '이것만이 옳다!'라고 주장하지 않고 꽤 중립적으로 잘 서술해 놓았다.

사실 얼마나 중립적으로 형평성을 잘 지켜 썼는지, 나는 '미투' 운동에 대해 논하면서 "형사법의 대원칙이자 인권의 근간인 '무죄 추정의 원리'가 흔들리고, 여론의 압력이 사법부의 판단을 앞서가는 현실에 대한 합리적 문제 제기"라고 쓴 걸 보고 약간 억울했다.

내가 보기엔 피해자들이 뒤늦게 진실을 폭로하는데 시간이 오래되어 딱히 증거라고 내세울 게 없으니 이를 부정하기도 쉬운 마당에 '무죄 추정의 원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운운하는 게, 여성들의 오랜 세월 입막음당해 온 입장에서는 너무나 기계적인 원리 적용처럼 느껴졌던 탓이다.

물론 모든 '미투' 폭로가 진실은 아니었을 수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성들이 오랫동안 참아 왔던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 대세에 그런 태도는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쨌거나 이렇게 어떤 이슈에 대해 이미 정립된 의견이 있다면, 이 책을 읽으면서 정말 저자가 어찌나 중립을 잘 지키면서 이 모든 이슈들을 언급했는지 그 인내심에 감탄할 수 있다.

인권에 대해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는 1장 이후, 본격적인 토의는 '난민 문제'로 시작하는데, 이걸 어찌나 보통 국민들의 입장과 인권주의자들의 입장을 잘 버무려서 써 놨는지, 그 솜씨에 감탄할 정도다. 

대개 다수의 국민들은 난민들이 무조건 싫다기보다는, 그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한국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한국 정부가 보조해 주는 돈만 받아 챙기는 게 아닐까 우려해서 난민 수용에 반대하는 입장일 텐데, 저자는 그런 입장이 절대 옳지 않다거나 너무 감정적인 반응이라는 식으로 폄하해서 서술하지 않는다.

정말 양쪽 입장에서 내세우는 근거와 주장을 고루고루 잘 보여 주기 때문에, 내가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어도 상대 측의 근거를 일단 잘 귀 기울여 듣게 되는 효과가 있다.

마치 토론할 때 나긋나긋한 말투의 중재자가 있으면 나도 흥분을 덜하게 되고, 상대방 입장에 조금 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은 다른 두 입장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 준다.

예컨대, 난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가 유럽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고 인정하고, 그렇지만 '우리도 한국 전쟁 이후 유엔한국재건단(UNKRA)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들어 전 세계가 서로 돕고 사는 국제 사회의 일면도 상기시키는 식이다.

또한 '난민법을 반대하는 이들이 인종차별주의나 혐오주의자여서 난민을 배척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라고 유하게 난민 수용 반대 입장을 표현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드러운 말솜씨를 갖고 싶다고 감탄하며 읽었다.

난민이 가져오는 경제 효과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마무리로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난민일 것 같은, '욤비 토나' 씨의 이야기를 언급하며 마무리.

토나 씨의 첫째 아들 '라비'가 시장에서 홍어를 먹는 모습을 본 어느 할아버지가 "자네 부모가 전라도 사람인가?" 하고 묻는 한 장면은 인터넷 짤로도 많이 돌아다녀서 다들 알 것이다.

라비의 영상 역시 캡처되어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으니 이렇게 친근감을 가진 '난민'의 예를 들어 '난민들이 모두 다 무섭고 이기적인 존재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난민에 대한 생각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꾸어 보라'는 주장을 이렇게 은근히 하는 것도 저자의 능력일 듯싶다.

따라서 이 책을 읽고 어떤 이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이 100% 바뀐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상대 입장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의 미덕은, 양측의 입장을 전달하면서 정당성이 있고 설득력 있는 근거를 참 고루고루 잘 제시한다는 것이다. 바로 위에서 말했듯, 내가 몰랐던 상대방 입장을 잘 알게 된다.

예를 들어, 한때 항일운동이었던 병역 거부가 국민의 공분을 사는 범죄로 탈바꿈한 이유가 "앞으로 법을 만들어서라도 병역을 기피한 본인과 그 부모가 이 사회에서 고개를 들고 살지 못하는 사회 기풍을 만들라"라고 지시한 박정희 대통령 때문인 줄은 전혀 몰랐다.

그래서 덕분에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내 입장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사람의 생각이라는 게 한번 정해지면 바뀌기 참 어려운데, 이 책은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돌아볼 기회를 주는 뛰어난 미덕을 지녔다.

 

저자가 2016년 국가 인권 위원회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국민 인권 의식 조사'에서, '인권'이라는 용어를 접해 봤다고 답한 응답자는 85%에 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인권이 존중된다고 답한 비율은 33.4%에 그쳤다고 한다.

이렇게 인식과 현실 사이에 50%p 이상의 차이가 발견되는 지금이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좋은 시기인 듯하다.

책이 쉽게 잘 쓰여서, 고등학생 정도만 되어도 이 책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읽고 나서 토론까지 해 본다면 금상첨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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