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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미미 시스터즈,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

by Jaime Chung 2019.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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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미미 시스터즈, <미안하지만 미친 건 아니에요>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도서관에서 발견하자마자 빌렸다.

'장기하와 얼굴들' 1집 활동 당시에 뒤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춤을 추던 두 여인들, '미미 시스터즈'를 기억하시는가.

그분들의 에세이집이다. 나는 솔직히 정말 위에서 미미 시스터즈를 소개한 것 이상으로는 미미 시스터즈를 몰랐다.

'그냥 장기하 공연에서 춤 추는 두 여자' 정도로만 알았다. 장기하와 얼굴들 이후로 독립해서 앨범도 낸 줄, 난 정말 몰랐다. 이 책을 읽고서야 알았다.

 

하지만 그런 건 몰라도, '그냥 두 여자들이 수다를 떠는 책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해도 이 책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작은미미들을 위한 변명"이라는 제목의 꼭지에서 작은미미는 마치 기자 회견장에서 발표를 하는 듯한 말투로, '정말 작은가 봐요, 이름 지을 때 기분 나쁘지 않았어요?'라든지, '전혀 반항 없이 (작은미미라는) 이름을 받아들였어요?' 같은 질문에 이렇게 너스레를 떤다.

저희가 원래 이름이라는 게 없는, 거의 자웅동체와 같은 존재였잖아요. 자웅동체라 하면 좀 그렇다. 음, 좌우동체라고 해요. 한때는 좌미미 우미미로 불렸으니. 근데 좌미미 우미미 하니까 좀 정치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괜히 우미미였던 큰미미가 우파가 아니냐 하는 오해를 받을 것도 같고 해서. 아, 물론 미미는 정치 따위 몰라요. 하지만 괜히 우파로 오인받는다면 기분이 좀 그럴 것 같아요. (...) 

근데 우리가 샴쌍둥이도 아니고 샴쌍둥이들도 각자의 이름이 있거늘 기자 양반들이 엄청 헷갈려하곘다 싶어 나름 배려한 티를 내지 않고 배려를 해드린 거죠. 하지만 식상한 이름은 싫었고 색다른 이름을 짓고 싶어서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너는 크고 나는 작으니 우리 큰미미, 작은 미미로 할까?

그러자 큰미미 역시 크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는지 금방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다음날 아니나 다를까 기자 분들이 "저기, 두 분을 따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요?"라며 난감해하셨고 우리는 준비한 듯이 "네, 큰미미 작은미미로 명명해 주시죠"라고 했어요. "하아, 그렇군요. 크고 작음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요?"

저는 약간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가슴 사이즈요"라고 대답을 했는데 아뿔싸 그것이 그달 발간된 수십 종의 잡지, 월간 낚시질에서 월간 맥심 모카에 이르기까지 대서특필된 것이 아니겠어요?

 

이렇게 웃긴 언니들이었나! 나는 큰미미와 작은미미가 번갈아 가며 한두 꼭지씩 이야기를 하는 이 책에 반했다.

미미 시스터즈는 자신들을 일약 스타덤에 올려 준 장기하와의 만남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각자 '반인반미(반은 인간, 반은 미미)'의 삶을 살면서 힘든 점 또는 미미가 아닐 때의 삶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나는 책 전반적으로 큰미미와 작은미미 사이의 끈끈한 자매애가 느껴지는 게 참 좋았다.

그룹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가족이나 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서로 보면서 지내니까, 배우자나 가족 못지않게 진한 정을 나누게 되기 마련 아닌가.

난 그런 게 참 부럽고 신기했다. 어떤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단순한 동료나 친구를 넘어서 거의 영혼의 형제/남매/자매 수준에 오를 정도로 서로를 향한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근데 미미 시스터즈는 여자 듀오다 보니까 여자들만의 그 끈끈한 자매애가 엿보여서 더 좋고 더 부러웠다.

뭐, 꼭 같이 그룹 활동을 해야만 깊은 우정을 맺을 수 있는 건 아니고, 같이 인기나 이익을 나눠야 하는 면에서 껄끄러운 면도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나오는 정이라는 게 있으니 말이다.

 

미미들의 이야기가 마냥 웃기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들은 감동적이고, 어떤 것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나름대로 교훈적인 것도 있다. 그렇다고 대놓고 독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거 말고, 그냥 삶의 작은 상황 속에서 '아, 삶은 이래야 하는 거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일들이 있지 않나. 그런 걸 잘 캐치해 냈다는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

자전거를 타니 나의 애매한 성격이 여실히 드러났다. 맞은편에 사람이 오고 있으면 어쩔 줄을 몰랐다. 페달을 밟았다 바닥에 발을 내렸다가, 상대방의 판단력이 판단력이 빠르면 괜찮은데 그 사람도 만약에 나처럼 우물쭈물하고 있으면 나도 오락가락 그 사람도 오락가락 결국에 그 사람과 충돌 10센티미터 앞에서 자전거를 멈추고야 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만 연발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차도로 진출하면 이것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먹었다. 내가 먼저 방향을 결정하리라.

저쪽에서 사람이 온다 싶으면 확실히 한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저쪽도 나와 반대로 간다. 신기한 게 아니다. 당연한 거다. 내가 방향만 먼저 정하면 된다. 나에겐 내가 먼저다.

(...) 맺고 끊는 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난 이렇게 일상에서 삶의 깨달음을 얻어 쓴 글을 참 좋아한다. 이걸 읽고는 나도 내가 먼저 방향을 정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배려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 미미 시스터즈에 대해 몰라도 괜찮다. 그냥 읽으면서 알아 나가도 되고, 미미 시스터즈에 관심이 없어도 상관없다.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그녀들의 매력을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미미 시스터가 미친 것 같아도 걱정은 마시라. 미친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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