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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by Jaime Chung 2019.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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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한수희,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한수희의 책을 좋아서 이 책도 도서관에서 예약해 빌려 봤는데, 인기가 많은지 예약하고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내가 이 책을 예약했는지도 잊고 있었다) 내게 와서 읽게 되었다.

'오래오래 좋아하기 위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한 바퀴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때 멈추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잠은 충분히 자고, 욕심부리지 않고 하루에 중요한 일 두어 가지만 처리하며, 마감일은 스스로 이틀 정도 앞당겨둔다. 오늘 다 끝내고 내일은 노는 게 아니라, 오늘도 즐겁게 일하고 내일도 즐겁게 일하는 시스템을 만든다.

쓸데없이 애쓰지 않는다. 내 한계를 받아들인다. 내 페이스를 유지한다. 뭐든 천천히, 꾸준히 해나간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옮기면 어려울 것은 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나처럼 열정도, 에너지도 평균 이하인 데다 별 재능도 없고 대범하지도 않은 사람이 오래 일하려면 무리해서는 안 된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

 

책의 제목이 된 동명의 꼭지 외에 다른 꼭지들도 이와 비슷하게 차분하고, 이와 비슷한 삶의 태도를 담고 있다.

글을 쓰고 싶은데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언젠가는 글을 쓸 거야, 이걸 하면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글 쓰기 위해서 이것도 저것도 다 안 할 거야, 라고 말하는 사람드릉ㄹ 나는 많이 만나왔다. 그런 말을 들으면 그저 의아할 뿐이다.

글은 그냥 쓰면 된다. 누가 읽어 주건 말건, 누가 좋아하건 말건 그건 다음 문제다. 굳이 말하고 다닐 필요도 없다. 글은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게 그렇게 힘들면 안 하면 그만이다. 글 쓴다고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아니다.

이 부분은 정말 공감이 됐다. 글쓰기가 뭐라고. 그냥 쓰는 거지. 남이 읽어 주건 말건, 좋아해 주건 말건, 그건 상관없다.

그런 태도를 견지하지 않으면 글쓰기는 정말 쉽지 않다. 

 

저자는 취미로 달리기를 하는데, 스스로를 그냥 (마라토너도 아니고 러너라고 할 수도 없는) '동네 생활 달리기인'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딱히 하고 싶은 운동도 없고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닌데, 운 좋게도 동네에 크고 좋은 육상 트랙이 있어서 달리는 것뿐이라고.

나는 달리기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솔직히 달리기를 한다는 사람을 보면 일종의 경외감을 느끼는 동시에 '나와는 다른 부류구나' 하는 약간의 상실감이랄까 배신감을 느끼는데, 저자는 이렇게 달리기에 큰 애정이라든지, 달리기를 엄청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아서 나는 약간 안심이 되었다.

게다가 혼자 달린다는 점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저자가 쓴 것과 아주 똑같은 이유로 나도 남들과 같이 달리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과를 바라는 행위일수록 과정이 고통스러워진다는 점이다. 달리기 위해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살을 빼기 위해 이 고통을 팜는다고 생각하면 달리기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운동일 것이다. 심지어 재미도 없다. 그저 똑같은 트랙을 계속해서 돌 뿐이다. 풍경도 똑같도 속도도 똑같고 정신적 감흥도 없다. 힘들기만 할 뿐.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함께 달리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함께 달리는 것이 싫다. 서로서로 속도를 맞추고 의욕을 북돋워가며 달리는 사람들, 웃고 떠들며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하나도 부럽지 않다. 나는 천성적으로 남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다. 남과 보조를 맞추지 않아도 되닌 이제야 사는 게 편해졌다. 지금도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기분이다. 종소리라도 들리면 숨이 가빠진다. 그런데도 매일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보면 대단하다 싶다. 하지만 나도 12년 내내 개근상을 받은 모범생이었다.

 

너무 더워서 기운이 빠지는 요즘, 에어컨을 틀어 방을 시원하게 해 놓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옆에 낀 채 이 책을 읽는다면 편안한 여름 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그렇게 쉬는 게 너무 게으름 피우는 것 같고 불안하다면, 저자의 이 말을 한번 믿어 보시라.

불안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다시 나 자신을 다독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정말이야. 오늘 푹 쉬어야 내일 또 기분 좋게 일할 수 있어. 오늘 너무 달리면 내일 못 일어나. 나는 단거리 주자가 아니라 장거리 주자야. 1년 달리고 말 것이 아니라 10년, 20년을 달리기 위해서 이렇게 살아야 해. 게으름을 피우겠다는 게 아니야. 꾸준함의 힘을 믿어보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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