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마이클 해리스, <우리에겐 쉼표가 필요하다>
아마 알라딘 MD 추천에서 이 책을 봤던 것 같다. 그래서 보관함에 넣어 놓고 있었는데, 마침 도서관에서 눈에 띄기에 빌렸다.
난 이 책이 끊임없는 연결의 시대에, 그에서 벗어나 사색과 고독을 찬양하고 그를 즐기는 법을 알려 줄 거라 기대했는데, 알고 보니 저자 본인도 애인과의 대화 중에, 또는 일하는 중에 핸드폰과 메일함을 확인하기에 중독된 사람이라 우리에게 강력하게 "SNS 또는 온라인과의 연결을 끊으세요!"라고 주장할 수도 없고, 그러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가 끊임없이 연결돼 있으면서 잃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저자는 책 끝의 '나가며: 다가올 것과 남겨질 것'에서 이렇게 쓴다.
이 책은 처방전보다는 사색록에 가깝다. '건강한 디지털 삶을 위한 10가지 방법' 같은 쉬운 해답은 없다. 종합할 수 있는 이론도 공리도 없다. 그것 하나만 알면 우리가 든든하게 무장을 하고 삶에 나설 수 있게 해줄 원칙 같은 건 없다. 디지털 금욕도 답이 되지 못한다. 절대적인 거부는 또 다른 종류의 의존일 뿐이다.
그런 건 빨리 말했어야지! 괜히 기대했잖아!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읽은 게 시간 낭비는 아니었다. 저자는 우리가 온라인, 즉 인터넷과 함께 살게 되면서 잃어버린 것을, 구텐베르크의 인쇄 혁명에 비유하는데, 내게는 이게 꽤 신선하고 낯선 충격이었다.
물론 인터넷은 그 나름대로의 효용이 있고 그 효용은 참 놀랍지만, 인터넷이 우리에게서 홀로 있는 시간, 또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빼앗아 간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즉, 인터넷에게 두 얼굴이 있다는 건 누구나 받아들이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자 혁명에게도 부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나는 독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 인쇄기의 발명/발달이 도대체 어떻게 대중에게 나쁜 영향을 끼쳤다는 건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학교에서는 '인쇄기의 발명으로 대중이 문자를 쉽게 접하게 되어 전문가들의 권위(교회에서나 어떤 다른 분야에서나)에 덜 의지하게 되었다'라는 식으로, 이 인쇄 혁명을 긍정적으로 가르치지 않나.
그래서 저자의 말이 참 흥미롭게 들렸다.
인터넷처럼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도 몇몇 직업을 우스꽝스럽거나 쓸데없는 것이 되게 했다. (수도원의 필사실이여, 안녕히.)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이 미친 영향은 일부 고집 센 필사가들의 일자리를 없앤 데서 그치지 않았다. 복제의 정확도와 속도가 급격히 높아지면서, 요즘 표현으로 하면 '데이터 전송'이라고 할 만한 활동이 활황을 맞았다. 파리에서 있었던 설교의 내용이 금세 리옹에서 정확하게 복제돼 유통될 수 있었다. (브랜드 홍보 활동도 대폭 향상됐다.) 이런 통합성과 단일성은 지식과 과학의 발달에 거대한 도약을 가져왔다. 분산돼 있던 학문 세계가 일관성 있고 응집성 있는 방식으로 국제적인 소통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학자들은 서로의 연구 내용을 단지 반복하게는 게 아니라 거기에 새로운 것을 더해 더 발전된 내용을 내놓을 수 있게 됐다. 이런 영향이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인쇄술은 지식의 독점 전체를 무너뜨렸다. 그 덕분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심지어 가톨릭 교회라는 엄청난 권위의 기반을 뒤흔들 수 있었고, 그다음에는 계몽주의가 촉발됐다. 하지만 인쇄술 때문에 희생된 것들도 있었다. 서적이 낮은 비용으로 대량생산되면서 예전에 사람들의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던 몇몇 부분들이 뭉텅 날아갔다. 가령 서사시 낭송이 사라졌고, 필사본 서적을 구입할 여력이 되는 재력가들의 권위도 사라졌다. 블레이크 모리슨(Blake Morrison)은 소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변명(The Justification of Johann Gutenberg)>에서 구텐베르크와 어느 수도원장의 논쟁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들은 인쇄소가 내놓는 책들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라 인쇄 기술이 불러온, 글이 읽히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논쟁한다. "신의 말씀은 성직자가 해석해야 하는 것이며, 분뇨처럼 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비옥함, 지식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대중이 그것을 값싸게 접할 수 있게 하는 능력 때문에 인쇄술은 가톨릭교회의 기성 세력에게 큰 위협이었고, 나아가 당대의 문화 전반을 뒤흔드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1450년에 세상에 나오고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인쇄술은 양적인 변화(더 많은 책)만 가져올 수 있었다. 시장, 이동 거리, 대중의 문해력이 모두 제약돼 있었던 터라 인쇄술의 진정한 잠재력이 다 펼쳐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불러운 질적인 변화를 거의 곧바로 삶에서 경험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운명은 온라인 테크놀로지에 의해 즉각적이고 완전하게 재구성된다.
뭐, 서사시 낭송이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진 일자리라 생각하고 안타까워해 줄 수 있는데, 재력가들의 권위나 가톨릭교회의 기성 세력이 망한 건 하나도 안 안타깝고 오히려 고소하기만 하네.
내가 또 마음에 들었던 건, 위에 인용한 문단이 속한 제1장의 제목이었다. 이름하야 '1장: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Notre-Dame de Paris)>은 루이 11세 통치하의 프랑스에 인쇄소가 막 생겨나기 시작한 1482년이 배경이다. 클로드 프롤로 부주교는 인쇄된 책을 처음 보고 그것의 정교함에 경이로워하는 동시에 노여워하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Ceci tuera cela)." 책이 성당을 죽인다고? 여기에서 위고는 부분으로 전체를 비유하는 제유법을 쓰고 있다.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키는 데 크게 일조한 민주주의의 엔진으로서, 인쇄술은 가톨릭교회를 죽일 것이다. 더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도 인쇄된 책은 노트르담 대성당 같은 거대한 건축 구조물보다 뛰어나고 효율적인 의미 전달 수단이 될 것이다. "인류가 손으로 쓴 위대한 문자"로서 수천 년간 서 있었던 대성당보다 말이다. 인쇄된 글자들은 정보 전송의 위계를 무너뜨렸을 뿐 아니라 지식을 획득하는 방식, 전에는 너무나 신성해서 일반 민중들은 접할 수 없었던 그 방식도 무너뜨렸다. 물론 위고는 1482년보다 훨씬 후대인 1831년에 이 소설을 썼으므로 프롤로에게 일종의 예지력을 부여할 수 있었지만, 당시, 그러니까 15세기 파리 사람들은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역시 빅토르 위고다.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이다'라니, 이런 기가 막힌 표현 때문에 나는 문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그렇고, 학문의 수단으로서 문자와 인쇄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을 비판적으로 다시 살펴봄으로써 인터넷이 우리에게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인지할 수 있게 해 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심리학자 앨리슨 코프닉(Allison Gopnik)은 인터넷이 우리 뇌에 영향을 미치기 한참 전에 독서라는 행위가 우리 뇌를 어떻게 변형시켰는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때는 시각과 음성 언어에 집중하던 대뇌피질을 인쇄술이 가로챘다. 이제 나는 실행과 견습을 통해 학습하지 ㅇ낳고 강의와 교재에 의존한다. 또 독서 장애, 난독증, 주의 집중력 장애, 학습 장애에 대한 통계 수치들은 우리의 뇌가 이렇게 근본적으로 부자연스러운 테크놀로지들을 다루게끔 만들어져 있지 않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읽기'에 헌신하는 것은 지극히 건전하고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놀라운 세뇌 효과다. (...) 맥루언은 인쇄된 단어가"중력처럼 당기는 힘"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의 정신을 그것 중심으로 재조정한다고 봤다. "인쇄의 가장 명백한 특징은 반보깅며, 반복의 명백한 효과는 최면 또는 강박이다." (...) 책을 파고드는 행동이 요구하는 고도로 근시안적인 집중은 전혀 자연스럽지 않으며, 그것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갖는 태도를 재구성해 (맥루언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도래와 언어의 규율을 가져왔고, 시각에 우위를 부여해 다중감각적인 삶을 제거했다. "눈의 속도는 빨라지고 음성은 조용해졌다." 맥루언은 우리 시대의 특징인 "새되게 외쳐대는 확장적 개인주의"의 근본 원인을 구텐베르크의 발명품에서 찾았다.
이렇게 보니 인쇄기의 발명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확실히 알겠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서 새로운 것, 놀라운 관점을 얻게 되어서 만족스러운데, 이 책은 또한 이 인터넷 시대에 집중력이 조각조각 나 버린 현상도 잘 기록하고 있다(예컨대 <전쟁과 평화>처럼 긴 소설을 도저히 읽지 못하는 것처럼).
인터넷 때문에 얻은 것도 많지만 잃은 것도 많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잠시 폰과 컴퓨터, 인터넷은 멀리하고 이 책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이 인터넷 시대의 짧은 쉼표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나는 이 (약) 330페이지를 읽는 동안 얼마나 집중하지 못하고 핸드폰을 들여다 보았는가! 반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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