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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가토 다이조, <왜 나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by Jaime Chung 2019. 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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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가토 다이조, <왜 나는 사소한 일에 화를 낼까?>

 

 

가토 다이조 선생님의 전작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던 터라(예전에 리뷰도 썼다. 링크는 아래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고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2018/10/26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가토 다이조,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

 

[책 감상/책 추천] 가토 다이조,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

[책 감상/책 추천] 가토 다이조,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 자립과 의존의 심리학> 오늘은 읽으면서 뼈를 맞는 듯한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며 공감하고 반성도 한 책이 있어 소개하려 한다. 저자는 가토 다..

eatsleepandread.xyz

 

나는 화가 넘치는 편은 아닌데, 오해는 마시라. 착하려고 한 말이 아니니까. 예전엔 나도 화가 정말 많은 사람이었는데 요즘엔 슬픔이나 우울감이 화보다 더 많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그래도 가토 다이조 선생님의 식견을 믿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크, 그럼 그렇지, 전작에서 나를 선생님의 팬으로 만든, 뼈를 때리는 선생님의 정확한 원인 분석과 책 중반부터 뒤따르는, 애정이 깃든 응원과 조언은 이 책에서도 여전했다.

일단 원인 분석부터 보자.

 

독일의 정신 분석학자 카렌 호나이(Karen Horney, 1885~1952)에 의하면, 신경증적 요구를 가진 사람이란 스스로는 노력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바라기만 하는 사람이다. 원래 개인의 욕구는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가령 십만 원짜리 물건을 만 원만 주고 사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욕구를 갖는다. 그렇기에 늘 욕구불만 상태일 수밖에 없다. 현실의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신경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절대로 우선되어야 한다고 여긴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나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필요는 나에게만 중요한 것일 뿐이기에 끊임없이 상처 입을 수밖에 없다.

(...) 신경증이 있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신이 결코 최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이 다치거나 병에 걸리면 다들 놀라서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자녀, 배우자나 절친한 친구라면 물론 한달음에 달려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

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모두 충족되어야 하며 자신에게는 그만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상대방은 나의 요구를 거부해서는 안 되고 나의 모든 필요를 만족시켜주어야만 한다. 이런 자기중신적 태도는 인간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한다.

분노 조절 장애나 징한 진상들이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런 사람들이 자기에게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이 책을 읽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나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신경증적 요구는 결국 나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달라는 뜻이다. 신경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불안에 떨며 초조해하는 것도 바로 이 욕구 때문이다. 유아기 때부터 관심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 이러한 욕구를 갖는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유아가 양육자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를 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신경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 유아와 다른 점은, 바로 보복 심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기본적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차게 된다.

유아가 양육자에게 보이는 애정 욕구의 가장 큰 특징은 배타적이라는 점이다. 즉 '나만 사랑해달라'는 뜻이다. 그리고 배타적인 관계가 가능하려면 양육자와 아이 사이에 두 사람만의 비밀 세계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신경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 세계가 없다.

 

신경증 환자의 특징은 '타인의 칭찬과 인정에 목숨을 건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독점하고 싶은데 그것이 안 되니까 상대방에게 분노하게 된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보모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면, 이제 보모가 곁에 없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 분노는 사라지지 않을까? '이제 이것을 잃어도 좋아' 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미움받지 않으려던 마음도,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마음을 비우면 나 자신을 위한 에너지가 솟아난다. 마음속의 분노 때문에 괴롭다면, 잃을 각오를 하고 말하고 싶은 것을 솔직히 말하라.

학원을 경영하는 원장이 있었다. 수강 학생이 줄어들면 경영 파탄이 나고 만다. 그래서 늘 학부모들의 눈치를 보았고, 그로 인한 분노에 시달렸다. 그러다 학생을 잃어도 좋다는 각오로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기 시작하자 분노가 사라졌다. 그리고 분노가 사라지자 학원은 더 잘됐다.

'버림'으로써 분노가 사라진다. 잃을 것인가 아니면 생명을 단축시킬 것인가의 선택이다. 다시 말해,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인가 아니면 심리적으로 피폐해지고 육체적 질병까지 얻을 것인가의 선택이다. 할 만큼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버리는 것이 좋다.

단념하라.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할 만큼 해보고도 쉽사리 포기하지 못한다. 반면에 시도해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아무 깨달음도 얻지 못한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설령 칭찬받지 못한다 해도 불만이 생길 리 없다. 화가 나지도 않는다. 보통 사람들은 칭찬받지 못해도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를 멸시하는 사람은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얻고 칭찬을 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스스로 자신의 가치를 낮게 평가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인정이 없으면 심리적으로 죽음과 같은 상태에 처한다.

칭찬받지 못하면 불쾌해지고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지 않는 사람에게 적의를 느끼는 것은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칭찬과 인정은 이들에게 목숨과 같다. 그 결과 살아가는 일은 고통이 된다. 인정과 칭찬을 받아야만 자아가 안정되고 평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은근히 남의 칭찬과 관심을 바랄 때 스스로에게 새겨야 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 태도가 아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기분이 상할 때는 "이것은 기분 나빠 할 말이 아니야. 내가 언짢게 느끼는 것뿐이야" 하고 자신에게 말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가토 다이조 선생님의 애정 어린 칭찬과 격려가 시작된다. 

따라서 무방비 상태로 모두에게 물어뜯겨 만신창이가 되고도 아직 살아있다면 그 생명의 에너지에 자신감을 가져도 좋다. 그렇기에 살아올 수 있었다. 이는 굉장한 에너지가 있었다는 의미다. 씩씩하게 잘 살아왔다.

단지 숙면을 취할 수 없다고 한탄할 일이 아니다. 수면유도제에 의존하지 않으면 잠들지 못한다고 탄식할 이유가 없다. 불명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하루를 열심히 살고 잠자리에 몸을 누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자신의 에너지에 감사해야 하고 그런 에너지를 유지해온 나 자신을 칭찬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이 이미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은 인생에 비현실적인 기대를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는다. 오래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 살아있다는 자체만으로 칭찬받아도 좋을 만큼 노력해왔기 때문이다. 지금 죽는다 해도 멋진 인생이다. 그 정도의 환경 속에서 역경에 굴하지 않고 어쨌든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스스로에 대해 자긍심을 가져도 좋다.

'그런 상황에서 살아남은 게 대단하니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겨라'라는 말은 가토 다이조 선생님 책에서 매번 보는 것 같은데, 그래도 매번 감동받아서 눈물이 난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토닥여 주는 느낌.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사람이 성장한 환경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 사람의 주변에는 자아를 확립하고 자기실현을 하며 사는 사람이 없었다. 그랬다면 사정은 달라졌을 것이다. 자기실현을 하고 있는 사람은 상대방이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허용하고 격려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내 반응은 잘못된 것이며 언짢아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습관을 몸에 익힐 줄 알아야 한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분노 조절 장애나 진상인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반성을 할까?)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카테콜아민(cathecholamine, 신경 전달 물질은 도파민, 노르아드레날린, 아드레날린 등 아민류의 총칭)의 분비를 억제하는 수용체가 40퍼센트가 적었다. 카테콜아민은 스트레스 호르몬이다. 매일 부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느라 지쳐버린 '착한 아이'에게도 카테콜아민의 분비를 억제하는 수용체가 적다. 심리적 압박감으로 인해 아이는 마치 바위가 가슴을 내리누르고 있는 듯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래서 쉽사리 녹초가 된다. 지쳐 녹초가 된 사람에게는 '기쁘다'는 감각이 없다. 호르몬 분비 양상이 변하면, 아이는 그 시점에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그러니 머릿속에서 비상사태를 알리는 경보가 울리는 나 자신에게 타이르는 수밖에 없다.

'비상벨이 울리고 있지만 이것은 비상사태가 아니다. 내 신경의 경보 장치가 잘못 설정되어 있어 낮은 위험 수준에서도 벨이 울릴 뿐 실제로는 그 정도로 큰일이 아니다.'

즉 현재 자신이 느끼는 두려움은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나는 지금 이 사태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어릴 때 겪었던 스트레스 상태를 다시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

 

아래는 조금 길긴 한데, 그래도 너무나 좋았던 부분이라 다 한번 옮겨 적어 보겠다.

앞서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들은 카테콜아민의 분비를 억제하는 수용체기 보통 사람들에 비해 40퍼센트나 적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를 받고 화가 나며 우울증 징조가 있는 사람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인 셈이다. 베트남에서 실제로 적군과 사투를 벌이다 돌아온 사람이 아니라 해도, 그에게는 '나의 베트남 전쟁'이 있다. 그러니 이렇게 생각하라.

'나는 전쟁터에서 돌아왔으니 조금 쉬어도 좋아.'

혹은 마음의

특히 마지막 줄처럼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이렇게 생각하면 내가 예민하다는 점을 나쁘게 보지 않을 수 있으므로 참 좋은 것 같다. 나도 이제는 이렇게 생각해야지!

 

상대방의 말에 겁을 먹거나 그의 위협이 두려울 때는 나의 감정을 바로잡을 기회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지금까지 내가 느낀 감정의 흐름이 이상했던 것이다. 이때가 바로 그 비정상적인 감정의 흐름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을 기회다.

건물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할 때가 있다. 마음도 다 허물고 다시 세워야 할 때가 있다. 감정의 흐름을 다시 한 번 새롭게 설정할 때다. 분해서 잠이 오지 않는다면 지금이 출산의 고통을 겪는 때라고 생각하라. 이 고통의 시기는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길이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에른스트 크레치머(Ernst Kretschmer, 1888~1964)가 말한 대로, 특히 민감한 성격의 소유자일수록 한번 생긴 감정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래서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을 때는 행복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지금 중환자실에 의식 없이 누워 있거나 호스피드 병동에서 지내고 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다. 우리가 가장 쉽게 잊고 지내는 것이 바로 건강의 소중함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즉 건강, 가족, 직업, 친구, 그 밖의 많은 것들이 내게로 와주었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다.

 

행복에 관한 책들을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덧붙이자면, 나에게 주어진 것이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일이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 불만이 많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현실을 못마땅해한다. 자신에게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 그렇지 않다. 자신이 그 이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신의 무의식을 계산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 되는 일이 없고 운도 따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가? 그렇다면 스스로 반성해야 할 때다. 이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한다면 불운의 시기에서 벗어나 비약적인 발돋움을 위해 재충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여기서도 말할 수 있다. 주어진 것에 만족하라. 나에게 주어진 이 반성의 기회는 나에게 가치 있는 일이다.

 

인생의 마지막에 지불할 고통을 지금 미리 지불하고 있다고 생각하라.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끝없는 인내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자벌레다"라는 데이비드 시베리의 말처럼, 인생은 끝없는 노력을 필요로 한다. 분해도 인내하며 한 발짝씩 신에게 다가가라.

대부분의 사람은 빚을 지고 태어난다. 그 빚을 조금씩 갚아나가라. 매일매일 조금씩 갚아나가는 것이다. 굴욕을 당했을 때는 오늘도 빚을 조금 갚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로써 죽을 때의 고통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은 빚이 늘어났고 나는 빚을 갚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사람은 단번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처음부터 적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적을 증오하는 것이 인간이다. 갑자기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반드시 분노나 증오의 과정을 통해 용서에 이른다. 곧바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은 위선자이기 때문에 나중에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니 마음에 생긴 상처는 가능하면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지금 행복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그러면 증오심의 뿌리는 반드시 마를 날이 온다. 증오심의 뿌리가 마를 때까지 긍정적인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라.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것 말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없다.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는, 자신에게 완전히 솔직해지는 일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역작이라고 했다. 분노와 적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증요한 것은 분노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현명하게 처리하는 일이며, 그 분노를 의식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들은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부분만 가려 뽑은 것이므로, 다른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나와는 다른 부분을 '좋은 부분'으로 꼽을 수 있다.

각자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부분을 골라 보는 것도 좋겠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기에, 좋았던 부분마다 붙인 포스트잇 플래그를 다 떼고 다시 반납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정도다. 리디 셀렉트로 읽었다면 내가 좋았던 부분마다 하이라이트를 칠하고 나중에도 언제고 다시 꺼내 보며 읽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가 같은 책을 두 번 읽는 일은 거의 없으므로(읽어야 할 새책은 언제나 많다), 지금 리뷰를 쓰는 이 순간 이 책에서 좋았던 부분을 옮겨 적는 게 이 책을 읽는 마지막이 될 것이다.

차라리 내가 가토 다이조 선생님의 지혜와 그 마음을 가질 수 있었으면! 나도 가토 선생님처럼 내면이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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