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어슐러 K.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by Jaime Chung 2019. 8. 30.
반응형

[책 감상/책 추천] 어슐러 K. 르 귄, <남겨둘 시간이 없답니다>

 

 

이 책은 SF의 거장 어슐러 K. 르 귄이 늙는다는 것, 자신이 키우는 고양이 파드, 페미니즘과 정치, 문학 등에 대한 사색을 담아 쓴 짧은 에세이들 모음집이다.

나처럼 르 귄의 대작들을 안 읽은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편히 읽을 수 있다(그녀의 책에 대한 내용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 같은 건 안 나오니까).

문장 자체가 재미있어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데, 예컨대 2014년 10월에 기고된 '따라잡기, 하 하'는 이렇게 시작한다.

블로그를 놓은 지 두 달이 되었다. 여든다섯 번째 생일 전야이기도 하고 75세를 훌쩍 넘은 노인이 계속해서 눈에 띄게 활동하지 않으면 죽은 줄 여기기 십상이라 살아 있다는 티를 좀 내야겠다 싶었다. 이를테면 무덤으로부터의 손 인사랄까.

안녕하세요, 거기 여러분! 청춘의 세상은 어떻습니까?

여기 노인의 세상에서는 다소 이상한 일들이 있었다. (...)

 

이 할머니는, 남편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는데, 고양이 키우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자신과 그 고양이의 만남을 운명으로 여긴다.

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의 이름은 '파드'인데, 할머니의 묘사에 따르면 '반짝이는 두 눈, 부드럽고 윤기 나는 털, 곧게 뻗은 검은 꼬리, 왼쪽 뒷다리에 난 검은 점무늬는 귀여움 종결자였다'고 한다. 책 커버에 그려진 고양이가 바로 이 고양이인 듯하다.

[동물 보호소] 직원이 방으로 돌아오자 내가 말했다.

"좋아요."

직원은 물론 딸도 약간 놀란 눈치였다. 나 스스로도 조금 놀라웠다.

"다른 고양이들을 더 안 보시고요?" 직원이 물었다.

아니, 다른 고양이를 볼 마음은 없었다. 그 녀석을 돌려보내고 다른 고양이를 구경하다가 그중에 하나를 고른다니. 이 녀석 말고? 그럴 수 없었다. 운명인지 동물의 왕이 점지하신 건지 어쨌든 내 눈에 고양이 하나가 들어왔다. 됐다.

 

이 고양이를 데려온 후, 할머니는 제법 이 고양이를 '확대'했다.

고양이와의 첫 만남에 관한 에세이 다음에 나오는 '고양이의 간택을 받다'라는 에세이는, 고양이를 만난 지 4개월 후의 이야기이다.

파드가 집에 왔다는 소식을 쓴 이후로 넉 달이 지났고 '꼬마 파드'는 장성하여 '거대하진 않지만 제법 튼실한 파드'가 되었다. 코비에 속하는 고양이 종인데 다리는 길지 않다. 꼿꼿이 앉아 있는 모습을 뒤에서 보노라면 기분 좋은 대칭의 달덩이 같은 구가 검게 빛난다. 거기에 머리와 꼬리가 붙어 있다. 뚱뚱하진 않다. 하지만 살찌려는 의지가 부족한 고양이도 아니다. 여전히 사료를 너무나 좋아한다.

오, 사료! 오, 사랑스러운 사료! 오도독, 오도독, 오오독!

마지막 부스러기를 먹어 치우자마자 눈에 무한의 비통함을 실어 나를 올려다본다.

배고파. 죽을 것 같아. 몇 주 동안 먹지를 못했어.

녀석은 기꺼이 뚱뚱보 파르도가 될 것이다.

 

2011년 3월에 쓴 '제발 좀 '씹할' 그만해 줄래요?'라는 에세이는 아예 욕에 관한 내용이다.

씹할(fucking) 아니면 씹(fuck), 그도 아니면 제기랄(shit)이라는 말밖에 못 하는 사람들만 나오는 씹할 책과 영화를 계속 접하게 된다. 씹하고 같은 처지가 되어서도 그 씹할 놈의 씹할 외에는 묘사할 형용사가 전무한 사람들 같다. 그리고 제기랄은 그들이 망했을 때 하는 말이다. 망할 일이 생기면 제기랄이라고 하거나 오, 젠장 또는 오, 젠장 망했네.라고 한다. 정말이지 문자 그대로 충격적인 상상력이다.

씹할 모든 등장인물의 대사마다 젠장이 나오는 것도 모자라 작가가 몸소 그 씹할 분위기에 동참하는 소설도 있었다. 어찌 그런 젠장맞을 일이. 그래서 소설 전체에 제기랄 감동이 이렇게 넘친다.

'석양은 씹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주 그냥 씹할 아름다웠다.'

예전에는 과격하게 여겨지던 이 표현은 한낱 소리로 위상이 바뀌면서 하려는 말의 감정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 같다. 혹은 단순히 말 사이의 공백을 채우려고 사용하는 표현인데 그 과정에서 진짜 하려는 말을 씹할의 틈바구니에서 망하게 하는 역할인가?

ㅋㅋㅋㅋㅋㅋ 어쩜 할머니는 욕도 이렇게 재미나게 잘하실까!

 

약간 빈정대는 글도 있다. 2012년 6월에 쓰인 '약간의 제안: 식물연민'은 '고통받는 동물을 염려한다면서 비건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풍자하는 글이다.

인류를 위하여 잡식주의, 육식주의, 채식주의 그리고 비건이라는 우리의 원시적 상태를 초월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유기체주의(organism)라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비만과 알레르기에서 탈피하고 수치를 모르는 순진함을 처벌하는 에어로보어(Aerovore)로 사는 방법이다. 우리의 모토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직 O뿐이 될 것이다.

(...) 식물의 생명력은 눈에는 덜 띌지 몰라도 동물의 생명력보다 훨씬 더 강하고 끈질기다. 만약 굴 하나를 신선한 물이 담긴 접시에 담아 일주일을 내버려 둔다면 결과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굴을 음식으로 전락시키는 건 비윤리적이라 하면서 당근이나 두부 조각에 그런 짓을 하는 건 떳떳하고 고결하기까지 한 행위가 되는 걸까?

즉, 식물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는 이유로 동물 대신 식물을 먹는 사람들은 식물의 감정을 알지 못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르 귄은, '그런 잔인한 위선을 피하고 진정한 양심의 투명성을 성취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오건(Ogan)이 되는 것이다'라고 (당연히 빈정대며) 말한다.

오직 대기와 물(H2O)의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산소(O)만 섭취하는 오건들은 온갖 동물 및 식물들과 진정한 우의를 맺고 살 것이다. 또한 할 수 있을 때까지 자랑스럽게 그들의 신조를 설파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게 몇 주간 이어지리라. 가끔씩은.

나도 동의하는 바다. 인간을 위해 잡아먹히는 동물이 불쌍하다면서 식물만 먹는 게 나는 좀 웃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 식물들은 아무것도 못 느끼나?

그렇지만 이런 글이 불편하시다면 그냥 이 부분은 뛰어넘고 읽으시거나 이 책을 아예 안 읽으시면 되겠다. 어차피 그건 개인의 자유니까.

 

하지만 '파드 연대기'는 책 내에 세 번이나 걸쳐서 나오니까, 고양이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그 귀여움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기 위해 읽어 보시면 좋겠다.

SF 작가로서의 르 귄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아니든, 그저 편한 마음으로 재밌는 에세이를 읽고 싶으신 분들은 한번 이 책을 거들떠 보시라.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