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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임윤희, <도서관 여행하는 법>

by Jaime Chung 2019.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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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임윤희, <도서관 여행하는 법>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할 정도로 책과 도서관을 사랑하는 저자가 도서관에 대해 쓴 짤막한 글을 모아 낸 것인데, 대개는 우리나라 도서관도 벤치마킹했으면 좋을 것 같은, 외국 도서관의 선례를 풍부히 담고 있다.

책에서 소개되는 외국 사례 중 내가 제일 놀랐던 것은 이거다.

저자의 동생이 미국에 살고 있어서 그곳에 저자가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집 뒤에 있는 식물에 노란 열매가 달렸단다.

그 열매를 몇 알 따 들고, 저자는 조카를 데리고 동네 도서관에 가서 "이거 이름이 뭐예요?"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사서 선생님이 외관으로 봐선 노란 방울토마토 같다 하더니 사무실에서 조그만 칼과 장갑, 지퍼백을 들고 나와 직접 열매를 잘라 봤단다.

그리고 열매 가운데 딱딱한 씨앗이 있는 걸로 봐서 토마토는 아닌 것으로 판명됐지만, 정확히 어떤 식물이냐를 두고 도서관 이용자들끼리 가세해 논박이 이어졌다.

사서 선생님은 어린이용 식물 백과사전을 찾아 대출을 권하셨고, 동네의 화원 연락처와 약도를 복사해 주시면서 도서관에서 보냈다고 이야기한 뒤 직접 질문해 보라고 하셨다. 가능하면 열매뿐만 아니라 식물의 사진도 찍어 가라는 조언도 덧붙이셨다. 혹시나 거기서도 정체를 알 수 없다면 식물 사진을 보며 함께 인터넷 검색을 해 보자는 약속도 하셨다. 우리는 해부된 열매가 든 지퍼백과 화원 연락처 및 약도가 적힌 종이 한 장, 그리고 책 한 권을 들고 도서관을 나왔다. 열매의 정체를 알 순 없었지만, 그 정체를 파악하는 방법은 배우고 돌아온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친절한 응대라니. 나는 살면서 평생 이렇게까지 자세하고 친절하게 응대받아 본 적이, 꼭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어디에서도 없는데 말이다.

미국의 사서들은 호기심을 가진 모든 이들의 길을 도우라는 교육을 받기 위해 철저히 돕는다는 게 모토인 것일까? 정말 놀라웠다.

 

감동적인 도서관 이야기는 또 있다. 저자가 북미에 있는 도서관에 들렀을 때인데,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오페라 입문자를 위한 강의를 들으러 갔더니 옷을 잘 차려입은 직장인들뿐 아니라 더러운 카트를 끌고 온 노숙자들도 있더란다.

그 노숙자는 저자의 바로 앞에 앉아 악취를 풍기면서도 눈을 지그시 감고 노래를 감상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일 아닌가. 도서관이 모든 이들을 위한 공간이라는 게 물론 기본 전제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노숙자들이 도서관에 왔다고 하면 이용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테니 말이다.

하지만 노숙자들의 냄새에 괴로운 건 우리나라 이용자들만이 아니고, 북미 이용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 샌프란시스코 공공도서관은 사회복지사를 직원으로 고용하고 도서관 내부에 샤워 시설을 만든 뒤 이용자의 항의가 들어오면 노숙자에게 샤워를 권한다. 지역의 노숙자 지원 단체와 연계하여 인문학 프로그램을 만들고 식사를 지원하는 도서관도 많다. 그렇게 노숙자는 엄연한 도서관 이용자로 자리하고 있다.

노숙자라고 해서 도서관을 이용할 권리를 배제하지 않고 포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정책이다. 뜻은 물론 좋지만 현실적으로 옮기기 어려웠을(예산 문제도 있고 하니) 텐데 이걸 정말로 해냈다는 게 참 대단하다.

우리나라도 예산만 허락해 준다면 더 많은 이용자들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 수 있을 텐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북미 도서관 사서들은 참 '배움에 열정을 가진 설명충 덕후'라는 생각이 들게 한 일화가 또 하나 있다.

서울에서 수년째 조그만 텃밭을 가꾸고 있는 저자가, 샌프란시스코가 도시농업에 대해 오랜 고민을 해 왔다는 것을 알고, 관계자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시도를 했는지 물어보려고 이메일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질문을 써서 보냈단다.

그랬더니 이틀 만에 그보다 세 배가 넘는 길이의 답변이 돌아와서 놀랐다고. 사서는 일단 환대의 인사 후, 신문 기사나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자료는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고, 저자의 두루뭉술한 질문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오히려 질문을 했단다. 그에 맞는 답변을 해 주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도서관 일정을 알려 주면 관련 자료를 갈무리해 준비해 두겠다고 안내하고, 일반인도 신청하면 방문할 수 있는 농장들 홈페이지 주소까지 덧붙였다고 한다. 정말 지극정성이다... 이런 답변을 받고 감동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도 호주에 가면 그곳 도서관을 한번 이용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얇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도서관 수다'가 가득 담긴 이 책의 요지는, 결국 이 문단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도서관은 참 신기한 곳이다. 도서관으로선 자료 미반납자에 대한 대책을 나름 고심하겠지만, 그럼에도 그곳은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간이다. 또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공유하려는 태도 역시 기저에 깔려 있다. 즉 도서관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믿음 그리고 책이 이들을 성장시키리라는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는 곳이다.

책을 사랑하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는 분이라면 마음속으로 멋진 해외의 도서관, 그리고 우리나라의 도서관을 그리며 행복하게 읽을 수 있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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