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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사노 요코, <쓸데없어도 친구니까>

by Jaime Chung 2019.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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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사노 요코, <쓸데없어도 친구니까>

 

 

친구인 듯한 고양이 두 마리가 그려진, 포근한 느낌의 커버를 가진 이 책은 제목이 이 책의 주제라 할 수 있겠다.

<100만 번 산 고양이> 그림책으로 유명한 사노 요코는, 나도 <사는 게 뭐라고>,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같은 수필을 읽어 봤다.

이건 그녀가 다니카와 슌타로(일본의 시인, 번역가, 그림 작가)와 '친구', '우정'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참고로 책에는 말을 거는 사람(인터뷰어, 슌타로)와 대답하는 사람(인터뷰이, 요코)의 구분을 딱히 하지 않고 그냥 이야기한 순서대로 실어 놓았으므로, 읽다 보면 '잠깐, 이게 인터뷰어인가? 아니면 이거? 그럼 저건 누가 한 말이지?' 하고 다소 헷갈릴 수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인터뷰어가 다니카와 슌타로라는 사실조차 책 맨 끝에 후기에만 언급돼 있고, 책 시작할 때나 아니면 책 뒷표지에 흔히 쓰는 책 소개에도 없으므로, '아니,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데 사노 요코에게 말을 거는 거야? 혹시 사노 요코의 또 다른 자아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뒤로 갈수록 그가 남자라는 것과 그녀를 알게 된 지 16, 17년쯤 됐다는 언급이 나와서 그런 얼토당토 않은 추측이 틀렸다는 걸 깨닫게 되긴 하지만.)

 

사노 요코는 자기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 오빠와 놀던 이야기부터 시작해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을 지나 사회인이 된 후에도 친구들과 우정을 지킨 이야기를 해 준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우정이 자신에게 이득이 될 때만 친하게 지내는 그런 얄팍한 관계를 가리는 단어가 아니라, 정말로 서로를 위하고 생각하는 따뜻한 관계를 가리킨다는 게 너무 좋았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

하지만 나는 말이야, 그때 우정이라는 것에 미래를 맡기고 있었어, 확실하게. 아무도 입 밖에 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우리의 우정은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 믿고 있었어. 그리고 그렇게 되었지.
- 그룹 안에서 배신이나 반목 같은 건 없었어?

- 없었던 것 같아. 적어도 나는 느끼지 못했어. (...)

 

-그럼, 서로 경쟁하거나 질투한 적은 없었어?

- 아마 질투는 없었을 거야. 그저 순수하게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했어.

- 하지만 그 사람들 모두가 도쿄 예술대에 들어간 것은 아니잖아.

- 맞아, 마지막에는 내기를 했어. 누구는 붙을 거고 누구는 아슬아슬하다는 등. 나 자신은 아슬아슬한 쪽이라고 생각했어. (...)

도쿄 예술대에 합격한 녀석들은 모두 멋지고 훌륭하지. 도쿄 예술대는 지망자가 많아서 필기시험에서 절반 정도가 떨어져. 그중에는 정말로 재능이 뛰어난 사람도 많아. 하지만 사실은 떨어진 녀석이 훨씬 재능이 뛰어나다는 걸 우리끼리는 알고 있었으니까 합격했다고 질투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 그래서 다른 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우정은 계속되었어?

- 응, 계속되었어. 오히려 대학에 들어가서 사귄 친구들보다 더욱 돈독한 사이였다고 생각해.

이게 전부 그녀가 중고등학생 때 이야기다. 정말 감동적이다. 같은 대학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끼리 경쟁도 질투도 하지 않고, 다른 학교를 가게 되더라도 서로 돈독한 사이를 유지할 수 있었다니. 정말 순수하고 멋진 우정 아닌가.

 

책 중간중간에 짧은 단편 에세이가 나오는데, 나는 그중에서 사노 요코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들이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이야기하는 편을 제일 좋아한다.

아버지의 죽음은 내 자신에게 커다란 사건이었고, 그것은 나 스스로 극복해야 하는 개인적인 일이었다. 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친구들이 나를 위로하고 격려해 준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정말 행복했다. 인간은 모두 선량하다는 신뢰감을 갖게 된 것은 열아홉 살의 겨울이었다. 어쩌면 그것은 평생 변하지 않을 삶에 대한 나의 기본적인 태도가 되었다.

 

나오는 순서로만 치면 끝에서 두 번째이고, 후기 직전에 나오는, 본문 맨 끝의 에세이에서는 사노 요코의 어머니가 언급된다.

어머니도 일흔 살에 위의 5분의 4를 잘라 내는 대수술을 했다. 그런 어머니 옆에서 한 달 동안이나 간병해 준 것은 역시 일흔 살 된 어머니의 친구였다.

위를 잘라 낸 후, 어머니는 친구의 손을 잡고 우리에게 "너희는 일해야 할 테니 이제 그만 돌아가라"고 말했다. 우리는 어머니의 친구에게 "정말 여러모로 죄송해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고개 숙여 인사한 후, 각자의 생활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친구에게 "아이들은 보탬이 안 된다"고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마 어머니에 관해서는 집에서 멀리 떠나 있는 친딸보다는 어머니의 친구가 훨씬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고, 현실적으로 의지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의 친구에게 머리를 들 수가 없다. 남편을 잃고 네 명의 아이를 길러 낸 어머니에게 만약 친구가 없었다면 어쩌했을까 생각하면 오싹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어머니에게 난 이상적인 딸이 되지 못한다. 불효자인 딸은 어머니가 가끔 친구들과 온천 여행을 가면 잘됐다며 크게 안심한다.

"아주머니, 저렇게 제멋대로인 어머니인데, 여러모로 정말 감사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인다. "무슨 그런 말을, 요코, 나도 어머니에게 여러모로 신세를 지고 있어. 피차일반이야"라고 말씀하시면 정말 기쁘다.

나는 어머니의 친구가 어머니보다 오래 사셨으면 하는 내 멋대로의 바람을 갖고 있다.

나도 사노 요코의 어머니와 그 친구분처럼 지금 내 절친과 평생 함께하고 싶다.

 

나는 이 책을 요약하는 말을 꼽아 보자면, 후기에 나오는 이 문단이라고 생각한다.

이 친구는 내 바보 같은 구석, 나쁜 구석, 싫은 구석, 시시한 구석을 받아 주고 있었던 거다. 이 친구가 없었다면 나의 싫은 구석, 시시한 구석은 갈 곳을 잃고 내 안에 넘쳐나서 살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내 곁에 훌륭하고 존경받아 마땅한 친구만 있었다면 나는 얼마나 변변찮게 살아가는 생명이었을까. 둘이서 흘려보낸 엄청나게 쓸모없는 시간, 그 쓸모없음을 빨아들여 우리들은 살아왔다.

생각해 보면 친구란 것은 쓸모없는 시간을 함께 보내는 존재다. 나는 친구와 함께 아무 말 없이 돌계단에 앉아서 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이나 멍하니 있었다. 실연한 친구에게 그저 이불을 덮어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날도 있었다. 그날 나는 이불 속에서 울고 있는 친구 옆에서 가스오부시를 자르고 있었다. (...)

친구란 것은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혹시 그런 것에 친구를 이용하면 그것은 우정과는 다른 것이다. 결과적으로 친구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된다고 해도, 결코 그것이 목적은 아니다.

나도 내 친구들과 쓸모없는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같이 보냈던가. 그 시간들을 지나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고, 아직도 친구다.

그런 소중함과 감사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책이어서 너무 좋았다. 책 안에 언급되는 이야기도 마침 우정의 교과서 같고.

오랜 친구에게 그동안 함께해 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선물해 주고 같이 나눠 읽어도 좋을 책 같다. 마음이 너무 따뜻해지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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