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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은유, <다가오는 말들>

by Jaime Chung 2019.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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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은유, <다가오는 말들>

 

 

부제는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다.

나는 은유라는 저자를 좋아서, 이 책을 도서관에서 발견하자마자 냉큼 빌렸다.

그냥 에세이집인 줄 알았는데, 짧은 에세이마다 주제에 맞는 책에서 적절한 부분을 최소 한 문장 이상 인용을 해서, 그 책의 내용과 글의 주제가 잘 조화가 되게 썼다.

예컨대, 저자가 자신과 딸의 관계에 대해 환기하는, "친구 같은 엄마와 딸이라는 환상"이라는 제목의 꼭지에서는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인용해 이렇게 쓰는 식이다.

"어떤 감정 이입은 배워야만 하고, 그다음에 상상해야만 한다."(157쪽) 구원은 과거에 있다. 엄마가 되면서 상실한 '아이적' 감각을 복원하기. 이를 위해서는 엄마가 쓴 자식 양육서를 읽느니 딸이 쓴 엄마 이야기를 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환경운동가이자 작가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 앞부분에 나오는 엄마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귀했다. 사실 딸의 금발과 눈썹을 질투하는 엄마는 보편적이지 않다. 전래동화 캐릭터처럼 오싹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시기심이라는 "감정을 이성적 명분으로 바꾸고 명분을 사실로 바꾸는"(36쪽) 어머니, "내 삶에 분노를 쏟아내는"(41쪽) "나를 단 한 번도 알아보지 못한"(43쪽) 저자의 어머니는 내 모습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나도 종종 딸을 향한 불안함이라는 감정을 기정 사실로 왜곡할 때가 있고, 나의 풀리지 않는 화를 아이에게 퍼붓기도 한다. 보고 싶은 면에만 초점을 맞추니 있는 그대로의 아이를 본 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한 책 비평이나 개인적 감상이 아니고, 글 안에서 자신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문장들을 골라서 인용했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책에 대해 소개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나는 더 좋았다.

그냥 그 책 속 몇 문장을 보여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그 책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 책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온라인 서점 사이트에서 검색해서 출판사 평이라든지 차례 등을 훑어볼 수 있으니까, 굳이 이 책의 저자(은유)가 그렇게까지 해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책에서 소개되는 문장들은 문맥 내에서 참으로 적절하고, 그 자체로도 매력적이다.

예를 들면 이런 것.

바틀비가 변호사에게 했던 말이 나를 향한다. "알려 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시겠어요?"(79쪽) 

(참고로 이건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 나오는 문장이다.)

무엇이 사랑이고 무엇이 사랑 아닌가 하는 물음에 <사랑의 급진성>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험 제로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19쪽)

(이건 스레츠코 호르바트의 <사랑의 급진성>에서.)

 

저자는 자신이 글쓰기 수업을 할 때의 경험을 자주 이야기하는데, 나는 '학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을 여기에서 처음 봤다.

'학생'이라 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국가라는 커다란 틀이 제공하는 공교육의 범위 내에 있는 교육 기관에서 공부하는 (주로 어린)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학인'이라 하면 그런 나이는 아니지만 자기 계발이나 취미를 위해 공부한다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난 이 단어가 꽤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학인'이라는 단어의 사용법은 아래를 참고하시라. 이 부분은 너무 공감되어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은 문단이기도 하다.

글쓰기 수업에서 페미니즘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할 때 벌어지는 풍경이 있다. 함께 읽은 책의 내용에 공감한 여성 학인들이 자기 이야기를 쏟아낸다. 살면서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기가 막혔던 일……. 그러면 남성 학인들의 표정은 조용히 어두워진다. 급기야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잘하는데 왜 그러느냐" 항변하기도 한다. 그러면 말길이 끊긴다. 분노하는 여성은 우습지만 분노하는 남성은 위협적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그냥' 말한다. 말할 수 있을 때 말한다. 책의 서사에 자극받아 억압되어 있던 자기 얘기를 꺼낸다. 너도 그랬니, 나도 그랬어, 말의 봇물이 터지고 경험의 파도가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것뿐이다. 여성의 공적 말하기 기회가 드물기에, 여성의 말하기를 듣는 기회도 없다면 '그냥' 듣고 있는 게 남성으로선 어렵고 어색한 일일 수 있겠다. 그러나 평생의 억울함을 터놓는데 잠시의 억울함도 견디지 못하고 끼어드는 말은 제 스스로 힘을 잃는다.

 

그냥 기억하고 싶은 말들도 있다.

이 책의 최고령 97세 소무의도 윤희분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농땡이가 최고야. 젊어서 일 많이 하지 마시오. 늙어서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했어. 젊었을 때는 뼈가 나긋나긋하니까 물불 안 가렸지. 농땡이가 최고야."(220쪽) 짐승처럼 일하다가 벌레처럼 작아진 몸피에서 나온 사리 같은 말, 인간다움을 추구하기에 너무도 혁명적인 그 입말을 곱씹는다. (박미경, <섬>)
에릭 호퍼는 이런 통찰도 내놓는다. "우리는 일이란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세상에는 모든 이들이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의미가 있는 일이라는 건 있을 수 없어요."(190쪽) 일이 의미 있기를 요구하는 것은 '인간의 몰염치'라고 했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까지 덧붙이면서, 삶의 유일한 의미는 배움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에릭 호퍼, <길 위의 철학자>)

 

그리고 이건 이 책에서 제일, 내 머리 위에 느낌표를 띄웠던 말이다.

한 강연에서 그간 청소년을 만나면서 편견이 깨졌노라 고백하다가 그 문제적 발언, '청소년들 정말 대단하다'고했다는 걸 지적받고 알았다. 한 청소년이 말했다. "만약에 은유 작가님께 '누가 여자가 이런 글도 쓰고 대단하다'는 말을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습니까?" (...)

나도 청소년은 아직 성인으로 되는 준비 과정을 거치는 이들이라고 생각했기에, '나이도 어린데 대단하다' 같은 말이 당사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솔직히 해 본 적 없었다.

장애인에게 '장애가 있는데 대단하다'라고 말한다면 당연히 실례이고 차별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지만, 같은 논리가 청소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걸까? 그래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제일 놀랐다. 

 

이 책에서 내가 제일 크게 웃었던 부분도 소개해 드리겠다.

스마트폰에 카메라 앱을 깔았다. 셀카를 찍어 보니 소문대로 신통했다. 주름 제거, 미백은 기본에 눈동자가 크고 또렷해졌다. 메이크업 기능이 내장된 듯, 칙칙한 얼굴이 지중해 햇살 받은 해사한 분위기로 변모했다. 흡족함도 잠시, 곧 도덕 감정이 올라왔다. 이건 속임수이며 나 아닌 거 같다고 했더니 누군가 말했다. 오렌지 과즙 3퍼센트만 들어가도 오렌지주스라고 하는데 본래 얼굴 3퍼센트만 있으면 자기 얼굴 맞다고.

이후의 내용은 여성으로 살면서 외모에 대한 의식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지만, 나는 여기에서 엄청 웃고 공감했다. 참고로 이 꼭지에서 인용한 책은 사라 아메드의 <페미니스트로 살아가기>이다.

 

내가 위에서 인용한 책 내용 때문에 벌써 어느 정도 짐작했겠지만, 사회적 운동에도 참여하고 (주로) 여성들을 대상으로 강의하는 저자의 특성 덕에, 이 책 내에서 언급되는 책들도 사회학이나 페미니즘 관련인 것이 많다.

아, 특히 이 책에는 저자의 경험 덕분에 '엄마'나 '엄마다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이런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어떤 책을 읽어 볼까' 하는, 정보를 수집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봐도 좋겠다.

나도 덕분에 이 책에서 다음번에 도서관에 가서 빌리고 싶은 책의 정보를 잔뜩 구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읽고 싶은 책들, 읽고 싶은 문장의 뷔페'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먹어도 살 찌지 않는 정신의 양식을 마음껏 맛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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