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The School of Life, <평온>
저번에 읽은 '인생학교'의 <끌림>에 이어, 같은 시리즈의 <평온>도 빌려 읽어 봤다.
2019/08/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The School of Life, <끌림>
이번에도 역시 좋았다. 제일 마음에 들었던 것은, 제목처럼 마음에 '평온'함을 주는 여러 가지 방법을 연애, 일,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찾아 본다는 거다.
연애 분야에서 제시되는 방법은, 대표적으로 하나만 꼽자면 이거다. '기대를 내려놔라.'
누군가와 만날 때는 '어느 정도 끊임없이 오해하고 오해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상'이라고 간주하고 관계를 시작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하면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든 앙심을 품거나 놀라지 않게 된다. 우리의 마음은 한없이 미묘하고도 깊은 굴 속 같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다른 사람들이 영영 알아내지 못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이에 맞춰 기대치를 조정하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를 가장 애정 어린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들조차 우리에 관해 읽어내지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저자(들)는 "집에서 벌어지는 사소하고 하찮은 문제들" 역시 갈등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하는데, 이건 굳이 같이 사는 커플이 아니어도, 혈육 또는 하우스/룸메이트들과의 사이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듯싶다.
나는 그런 일들을 예술 작품에 비유한 게 좋았다. "아주 작은 상징적 디테일 속에 복잡한 의미가 응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리고 내가 남녀관계에 관한 장에서 제일 공감한 건 이거다. 연인이 아무리 가까운 사이여도, "거절의 공포"는 계속 남아 있다는 것. 특히, 성생활과 관련해서 그러하다.
그런데 남녀 둘 사이의 관계에서 더욱더 이상한 점은 실제로는 성적 거절에 대한 두려움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멀쩡해 보이는 사람도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매일같이 계속 느끼며, 이런 상황은 처참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성적 두려움에 충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데다, 다른 사람에게서 언뜻 알아보기 힘든 여러 징후를 포착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상한 사람으로 낙인찍히지 않으면서도 '내겐 이 정도의 확신이 필요해'라고 꾸준히 인정할 수 있는 방법을 아직까지 알아내지 못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당연하게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는 단 한 번도 내가 느끼는 것을 상대방도 그대로 느낄 것이라고 확신해 본 적이 없다. 실제로든, 기분상으로든 사랑에는 늘 새로운 위협이 생길 수 있다. 불안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촉발된다. 배우자나 연인이 이상하리만큼 길게 출장을 간다거나, 파티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너무 신나게 떠들고 있다거나, 혹은 섹스를 한 지 꽤 오래되었기 떄문에 불안이 엄습할 수 있다. 부엌에 들어갔는데 배우자나 연인이 어쩐지 내게 별로 다정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거나, 혹은 30분 넘게 내게 말을 걸지 않아서 불안을 느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는지 종종 불안을 느끼는 게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오래 같이 산 부부도 이렇게 느낄 수 있다고 하니 마음에 좀 위로가 됐다.
남들과의 관계에서 평온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두 번째 장에서 놀라운 건, 관료주의라는 사회적 틀에 대해서도 언급한다는 거였다.
나를 중심으로 반응하는 세상에서 자란 우리는, 부모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부모는 아이의 마음에 꼭 들 생일 선물이나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느라 고심하고, 아이의 기분과 몸 상태에 따라 집에 갈지, 뭘 먹을지 등을 결정한다.
이렇게 자란 우리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남들이 재깍재깍 알아차려 줄 거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다.
관료주의는 우리 생활에사 숱하게 마음의 분란을 일으키는 확실한 원인 중 하나다. 전화요금 납부 방식을 바꾸려고 통신사에 전화를 건다. 통신사에서는 온라인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한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 전화상담원의 의사는 중요하지 않다. 계좌번호가 입력되지 않으면 시스템이 수정 작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숫자 몇 개에 대한 순전히 기술적인 요구 앞에서 인간적 연민 따위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우리가 이런 것에 격분하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많이 걸리고 불편해서가 아니다. 여기에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경종을 울리는 문제가 있다. 이런 문제는 공감과 이해와 인간적 유대감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우리는 끌어들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누구인가'(품위 있고 정직하고 선한 개인)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저자(들)는 관료주의가 겉으로는 "둔감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은 "합리적이고 훌륭한 의도에서 비롯된 부작용"으로, "지금 누군가의 구체적인 요구가 무시되고 있는 것은 '공정함'이라는 더 큰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관료주의를 단순히 책임의 소재를 애매하게 만들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이런 관점은 신선한 것이었다.
또한 저자(들)는 평온을 유지할 수 있는 기초는 '이해'라고 말한다. "세상과 역사를 더 넓은 시각으로 이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고 왜 그런지에 대한 인식의 틀이" 바뀌기 때문에.
위에서 든 예처럼 효율성을 추구하다 보면 규칙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가피하게 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면, 아무래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가 상대적으로 더 쉬워질 것이다.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상황이 좋다거나, 우호적이라거나, 흥미롭다고 생각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열을 내고 속을 끓여 봤자 도움이 되지 않고 어려움만 커진다는 사실을 안다는 뜻이다. 이렇게 추상적으로 말하면 별 진전 없는 얘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속이 뒤집어질 만큼 분노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이 같은 점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긍정적이고 어마어마한 발전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직장 생활에 관한 장에서 내가 특히 마음에 새기고 싶은 말은 이거다.
초조함이란 어떤 일이 절대적 의미에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느끼는 좌절감이 아니다. 초조함은 어떤 일이 우리 예상보다 오래 걸릴 때 감지되는 느낌이다. 어떤 일을 할 때 가끔은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주로 문제의 관건이 되는 것은 '실제로 걸리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한다'는 우리의 가정이다. 이렇게 시간 프레임을 빡빡하게 잡는 것은 대개 우리의 무지 때문이다. 일의 성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밖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것들'에 관한 장에서는 우주처럼 거대한 것을 보며 숭고함을 느껴, 자신과 자신이 하는 고민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를 깨닫는 방법도 제시된다.
전반적으로 삶의 여러 면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시도해 볼 법한 방법과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제안해 줘서, 나는 아주 잘 읽었다.
열이 부글부글 끓는다거나 불안하다든가, 마음에 평온을 잃었을 때 읽어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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