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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한재우,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by Jaime Chung 2019.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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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한재우, <노력이라 쓰고 버티기라 읽는>

 

 

제목이 웃퍼서 빌려 보았는데 썩 괜찮았다.

저자는 서울대 법학대 출신으로 사법 고시를 준비하다가 포기하고, 카페를 차려서 운영하다가 접었다. 그리고 독서 교육 회사에 입사해 일했다.

그는 그동안 책 몇 권을 냈고, 3년 넘게 주 3회 팟캐스트(<서울대는 어떻게 공부하는가>)를 올렸으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강의를 했다.

이 책은, 저자 말마따나, "그런 버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때로 노력이란 말은 굉장히 눈물겹거나 혹은 다소 우아하게 들린다. 하지만 본질은 조금 다르다. 보통은 죽을 만큼 힘들지도, 감상에 잠길 만큼 아름답지도 않다. 나는 내가 하는 노력들이 축축하게 젖은 구두를 신은 채 먼 길을 걷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텔레비전을 보는 대신 2시간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한가. 버틸 만한 일이었다. 하지만 고시와 장사를 경험한 나는 버텨야 할 이유와 버틸 수 있는 기회가 인생에서 늘 갖춰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버틸 수 있으므로 버텨야 했고, 버팀으로써 조금씩 나아졌다.

 

이 책에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제시하는 조언도 사실 위에 인용한 문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요약하자면 '버틸 수 있다면 버텨라', 내지는 '생각하기 전에 먼저 실천으로 옮겨라' 정도가 될 말들인데, 그렇다고 해서 꼰대 느낌이 나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냥, 담담하게 버텨 온 사람이 자기 경험을 풀어 가며 해 주는 조언 느낌이지, 꼰대의 '나 때는 말이야~'가 아니니 안심하시라.

 

내가 좋아하는 꼭지 중 하나는 이거다. 저자가 검도장을 다니던 20대 초반 시절, 죽도를 높이 치켜들고 있다가 벼락처럼 상대방의 정수리를 향해 내리꽂는 '상단세' 자세를 배우고 싶었단다.

그래서 그걸 가르쳐 달라고 사범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왼손으로 죽도 끝을 잡고 100번을 휘두를 수 있으면('후리기'라는 동작) 상단세를 가르쳐 주겠다고 하셨단다.

그래서 저자는 그날부터 죽도를 후리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게 만만치 않아서, 오징어처럼 흐느작거리는 게 고작이었다고 했다.

사범님에게 분명 자기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거냐 물었더니, 사범님은 "딱 한 번만 제대로 해 보세요."라고 대답하셨단다. 우선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고.

그래서 저자는 더 묻지 않고 연습에 매진했다. 2주가 지난 후, 제법 괜찮게 후리기를 1번 성공했더니, 그 개수가 2개, 5개, 10개, 30개 등으로 확확 늘기 시작했다. 

(...) 결국 첫 보름 동안 1개를 제대로 못했던 나는 그다음 보름 만에 100개에 성공했다. 사범님은 "거 봐요. 금방 되잖아."라며 다시 껄껄 웃었다.

그때 깨달았다. 자에 새겨진 눈금은 그 간격이 모두 똑같지만 삶에 놓인 눈금은 0에서 1 사이가 가장 멀다는 사실을. 처음의 한 번을 해 내는 것이 그 뒤의 몇십 번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불가능이란 말은 그 최초의 한 번에 닿지 못한 사람들이 0과 1 사이에 제멋대로 갖다 붙이는 이름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일화가 저자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어떻게 버틸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이 말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란 좋아하는 음식과 같다. 이것저것 먹다 보니 저절로 입에 맞는 음식이 생기는 거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기 전에 미리 정해놓을 수는 없다. 음양오행이나 유전자 검사로 체질에 맞는 음식을 찾아내더라도 말이다. 그러니 좋아하는 음식을 가지고 싶다면 이 음식 저 음식을 부지런히 먹어보면 된다. 과감하게 젓가락을 대는 것이다. 이렇게 하나하나 맛을 보다 보면 그중에 '괜찮네?' 하는 것이 생기기 마련이다.

혹시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더라도 아무 문제 없다. 지금 눈앞에 차려진 밥상을 감사하게 받으면 되니까. 시골에 계신 어르신들은 내가 큰 숟가락으로 밥을 푹푹 떠먹을 때 복 있게 먹는다고 좋아들 하셨다. 인생의 복은 좋아하는 반찬이 아니라 푹푹 뜨는 내 수저에 달려 있는 셈이다.

 

'훌륭함'과 '완벽함'을 자주 혼동하는 우리에게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훌륭한 작품은 긍정을 향해 걷는 길에서 나온다. 형편없는 작품을 고치고 다듬어 보통의 작품이 나오고, 이 보통의 작품을 매만져 광을 내면 '제법 괜찮은 작품'이, 그리고 제법 괜찮은 작품을 끌어안고 끙끙대면 훌륭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완벽한 작품은 부정의 도구가 필요하다. 흠집이 없어야 완벽한 작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실수가 뒤따를 수밖에 없고, 이제 막 무언가를 시도하는 사람이 그것을 완벽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좋게 말하면 야무진 꿈이고, 적나라하게 말하면 틀려먹은 망상이다.

따라서 '완벽함'이라는 이상에 사로잡혀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그저 '훌륭함'을 향해 묵묵히 걸어나가면 된다. 그뿐이다.

 

이 부분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법륜 스님은 수행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하면 반드시 좋아지기에 수행이다. 수행을 하면 100일 뒤, 1,000일 뒤에는 반드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수행을 하는 하루하루를 보면 꼭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좋았다가 나빴다가 또 포기하고 싶었다가, 이렇게 마음이 요동을 친다. 하지만 100일이든 1,000일이든 수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나쁜 일이 있더라도 멈추지 말고 쭉 해야 한다. 좋은 날에 좋아서 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다. 나쁜 날에도 변함없이 해야 수행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쭉 하면 하루하루는 좋지 않더라도 100일 뒤, 1,000일 뒤에는 반드시 좋아진다.

노력하고 있다면 하루하루의 괴로움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가까운 발밑의 바닷물은 늘 출렁거리지만 저 먼 곳의 수평선은 언제나 고요하니까.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오늘 일기에 적힌 기록이 아니라 지속적인 노력과 방향이다. 노력하고 있고 방향이 맞는다면 진인사대천명(), 나머지는 믿고 기다릴 뿐이다.

 

이 외에도 좋은 말들이 참 많은데 여기에서 전부 같이 나눌 수 없는 게 아쉽다.

어떤 조언은 따끔하게 혼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어떤 말은 부드럽게 어르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모두 다 좋은 조언들이다.

버티는 자세, 버틸 때의 마음가짐을 좀 단단히 하고 싶을 때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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