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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강민호,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by Jaime Chung 2019.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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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강민호, <브랜드가 되어간다는 것>

 

 

몇 달 전에 서점에 나온 이 책을 보고 '흠, 읽어 볼 만하려나?' 생각했는데 마침 도서관에 있길래 빌려 왔다.

여러 브랜드의 마케팅을 돕고 또 여러 기업에서 강의를 해서 유명한 사람인 듯하다(참고로 나는 원래 마케팅에 관심이 없을 뿐더러 마케팅은 '어떻게 하면 이걸 좀 있어 보이게 만들어서 잘 팔까?' 고민하는 것 정도로 보는 사람이다).

첫 번째 저서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100주 연속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브랜드 및 마케팅 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는데, 누가 봐도 이런 '보도 자료'스러운 내용을 책 앞날개에 써넣은 걸 (아니면 적어도 써넣게 허락한 걸) 보니까 과연 마케터다 싶었다.

이 정도로 뻔뻔하게 자기 PR을 해야지 마케터로 살아남을 수 있는 거구나... 

나는 세상에 정말 정반대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예컨대 내향인이 있고 외향인이 있는 것처럼), 이런 책 또는 마케터들을 볼 때 느낀다.

마케팅이라는 게 정말 진정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와 180도 대척점에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그저 놀라울 뿐이다.

 

어쨌거나 내용은 당연히 브랜드에 대한 건데, 에세이 형식으로 쓰였다.

저자가 초졸 출신이라, 이를 보상하고자 책을 엄청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이 책 내에도 그의 많은 독서량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각 에세이는 제목, 그리고 그 내용에 어울리는 인용문으로 시작하는데, 어디서 이런 말을 따 왔는지 참 존경스럽긴 하다.

그런데 애초에 마케팅을 하는데 '인문학' 또는 '인문학적 소양'이 왜 필요한 걸까? 난 늘 그게 궁금했다.

어차피 마케팅은 자기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 먹기 위한 궁리 아닌가. '인간을 중심으로 둔다' 같은 말은, 물론 듣기 좋은 말이고 어느 정도 정말로 맞는 말이긴 하지만(누구나, 기업의 이익보다는 개인 - 그게 거기에서 일하는 사람이 됐든, 아니면 소비자가 됐든 간에 -을 중시하는 기업을 선호하지 않을까), 실제로 기업 운영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는 공허한 말이 되기 쉽다.

브랜드 철학이니 뭐니 있어 보이는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이 그냥 말만 내세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실망한다.

그리고 기업의 존재 목적이 '이윤 창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기업 운영자든 소비자든 간에) 많은 이 사회에서, 정말로 기업들의 그런 '말, 말, 말'들을 믿기는 힘들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도 삐딱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예컨대 이런 거다. 워라밸은 좋은 거지만, 직장을 벗어나는 오후 6시가 되어야 진정한 자신의 삶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면 조금 서글프지 않느냐는 말. 아니면 이런 말도 있다.

목표에 부합하는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미친 듯이 몰입합니다. 몰입하는 사람들을 스스로 목표를 세웁니다. 하지만 낮은 목표를 가지고는 몰입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몰입은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성과와 결과를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이 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이유와 필요를 스스로 납득할 때 나타나는 특별한 업무 방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은 목표에 대한 내적 기준이 외부의 기준을 훨씬 초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이 내놓은 결과에 칭찬해도 정작 본인은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직업인입니다.

반면에 타인의 기대와 기준에 겨우 맞추면서도 스스로 안도하며 만족하는 패턴의 사고방식과 태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습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이를 통해 삶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타인의 기준과 편안함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기준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결코 남이 나를 바로 세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뭐,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저자가 묘사하는 것만큼 열정적인 '직업인'이 아닌 걸까?

나는 그 이유를, '그래 봤자 얻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 봤자 적절한 보상이 따르지 않으니까, 나중에는 그냥 열심히 일하기를 포기한다는 거다.

소위 'ㅈ소 기업'이라고 하는 기업들의 상황을 보시라.

회사에서 무엇을 할 줄 안다고 티 내지 말라는 말이 사회 초년생들을 위한 조언처럼 돌아다니는 이유가 뭐겠는가? 이런저런 퍼포먼스를 보여 줘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돌아오지 않고, 오히려 일만 늘어나서 피곤하게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는가(사실 이건 규모나 작은 기업이나 큰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을 저자는 혹시 모르는 걸까? 저자가 운 좋게 이런 기업들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걸까?

그게 아니라면, 아래 문장 같은 말을 쓰면서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던 걸까?

회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에 대한 후행지표입니다.
개인이 성장하면 회사는 반드시 성장합니다.

그렇게 회사가 성장해서, 개인에게 이득이 돌아오는가? 내가 살면서 한 경험에 근거해 대답하자면, 답이 '아니오'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다.

 

이러한, 마케팅에 대한 개인적 불신은 차치하고서라도, 에세이라 그런지 책 내에서도 저자의 입장이 약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앞에서는 성격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성격이 좋아도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과는 사업을 할 수 없다 하더니 왜 뒤에 가서는 인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건지?

그리고 퍼스널 브랜딩 얘기와 기업 브랜딩 얘기가 번갈아 나와서 어떤 쪽에 타깃을 두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제일 실망한 건, 분명히 저자가 책을 많이 읽어서 나름대로 독학으로 지식을 쌓았다는 점을 어필해 놓고는 뒤에 가서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우리에게 팝아트로 유명한 앤디 워홀은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사람들은 당신이 똥을 싸도 박수를 쳐줄 것이다."라는 말을 남깁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긴 적이 없고, 이 말을 검색하면 원문으로 나오는 영어도 누군가 그럴듯하게 영작한 것에 불과하다(나라면 'poop'라는 동사보다 더 노골적인 'shit'이라는 단어를 썼겠지만, 이것만 봐도 누군가 그냥 그럴듯하게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 말이 안 믿긴다면 검색해 보시라. 구글에서 '일단 유명해져라'까지만 타이핑해도 이 말이 지어낸 거라고 밝히는 글들이 많이 뜬다.

이 책을 내기까지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을 당했다는데, 그렇게 여러 곳을 거친 후에 이 책을 내게 된 출판사의 편집부에서도 이런 팩트 체크는 놓쳤던 걸까? 저자의 이미지에 흠을 내는, 아쉬운 옥의 티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마케팅을 종교에 비유한 건, 꽤나 그럴듯한 아이디어였다는 건 인정하겠다. 둘 다 비이성적인 믿음에 근거한다는 면에서 꼭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마케팅 책을 읽는 새로운 시도를 하긴 했지만, 이 책에 썩 만족하지는 않았으므로 섣불리 추천하지는 않겠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완전히 엉망인 것이냐 하면, 그건 또 아닌데, 음, 그냥 내가 마케팅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하셔서 적당히 필터링해 들으시라. 

정 의심이 가면 도서관에서 거들떠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빌려 읽으시거나 사서 보시면 되니까. 

다음에는 나도 좀 더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고 적극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책으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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