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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진민영, <내향인입니다>

by Jaime Chung 2019.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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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진민영, <내향인입니다>

 

 

아주 얇아서(태블릿 PC보다 작은 크기의 판본에 159쪽밖에 안 된다) 정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제목에서 예고하듯이, 내향인의 기질과 성향에 대해 '내향인으로서 나는 이렇다'라고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에세이이다.

앞부분은 솔직히 내향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쓸 수 있을 법한 그런 얘기이므로 딱히 이야기할 거리는 없다.

내가 오늘 이 책에 대해 포스팅하는 것은, 책의 뒤부분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12살부터 18살까지 외국에서 영국계 국제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영어를 한마디로 못했던 저자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는데,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서구식 교육 생태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최적화된 방식을 학습해야 했다."

저자가 표현하는 대로, "외향성을 강요당한" 것이다.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조별로 프로젝트를 하고 토론으로 설득하는 등.

그래서 저자는 외향성 가면을 쓰려고 노력했다.

저자는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발표를 하고, 수업 시간에 질문할 내용은 그 전날 목록까지 작성해 와 적극적으로 손을 들고, 친구 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고, 철면피가 되어 친해지자고 달려 들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붙이고, 엉뚱한 이야기로 반 전체를 웃음 바다로 만들 수도 있게 되며, 친구도 많아지고 선생님들과도 친해졌다.

하지만 저자는 절대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7년을 연습했지만 그것조차 자신의 옷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도 공감이 되지만, 내가 진짜로 다루고 싶은 건 그다음에 나오는 꼭지다.

저자는 이 꼭지에서, 그렇게 서양식 교육을 받으며 외향성을 키워 오다가 한국으로 돌아오자 그 다름에 충격받았던 일을 이야기한다.

그러다 한국으로 돌아왔다. 외향적 기질을 온 몸에 두른 탓에 주목받고 표현하고, 설득하고 비판하는 것에 온통 길들여진 상태로 고요한 한국의 교실로 돌아왔다. 한국에 오니 친구들은 내 목소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나의 직설적이고 강한 어투에 상처받았다고 토로했다. 주장이 너무 강해서 다가가기 힘들고 말 붙이기가 무섭다고, 친해지기 힘든 성격이라고 말했다.

내향적인 본질을 무시한 채 표면적인 외향적 기질만을 뒤쫓기 바빴던 나는 그렇게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는, 이도 저도 아닌 성격이 되어 있었다. 나는 국제 학교를 다니며 익혀 온 나의 습성을 원망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문화권이 확실히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 타인과의 어울림을 중시하는 편이고, 그런 면에서 소수의 목소리가 묵살되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서양이라고 해서 완전히 이상적인 문화를 가진 것도 아니다. 여기에서는 자기 주장 강하고, 개성 넘치고, 설사 오늘 처음 본 사람들과도 절친처럼 잘 어울리는 '파워 인싸'라면 아주 사족을 못 쓰니까 말이다.

결국, 어느 쪽이든 내향인들 살기는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나라는 선비 문화라는 것도 있어서, 어느 정도 내성적인 것은 '차분하다', '진중하다'라는 이미지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는 것 같다. 

내 말은, 그러니까, 내향인으로 살 거면 그래도 엄청 활발한 것을 좋아하는 서양보다는 그래도 동양 쪽이 낫지 않겠느냐는 거다.

 

이 다음에 저자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을 위해 방한했을 때 기자들에게 질문할 것을 요구했으나, 우리나라 기자들 중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던 일을 언급한다.

질문하지 않는 교실은 답이 없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G20 정상회담을 맞아 한국에 왔을 때 우리나라 기자들에게 질문을 요구했다. 개최국인 우리나라에 심심한 감사의 말과 함꼐 질문의 기회를 선물한다고 했다. 한국 기자들은 아무도 질문하지 않았고 보다 못한 중국 출신 기자가 끼어들었다. 한 다큐멘터리는 이 장면을 전면으로 내세워 질문하지 않는 한국 교육을 지적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황한 표정과 어색하게 감도는 정적을 화면에 가득 담으며 질문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교육을 꼬집었다. 나는 이 장면이 상당히 불쾌했고 수치스러웠다. 질문을 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도와 개성은 무시한 채 오직 '질문'에만 목을 맨다. 다큐멘터리의 취지와 관계없이 내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질문' 자체에 거부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질문을 못하는 환경은 문제가 있지만, 질문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그 나름대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거다. 주변을 의식해 눈치를 보며 질문을 못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되지만, 질문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를 느껴서도 안 된다. 질문을 강요하는 것 또한 질문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폭력이자 차별이 될 수도 있다. 의견을 교환하고 다수가 동의하는 현명한 답을 찾는 데 분명 상호 작용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질문의 과정을 통해 정답을 구하는 사람이 있듯, 반대편에는 곰곰이 홀로 생각하며 가만히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다.

나도 내향인이고, 수업이나 행사 같은 곳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라서 저자가 하려는 말이 뭔지 이해하고, 공감한다. 별로 궁금한 것도 없는데 질문을 해야 할 거 같아서 쥐어 짜는 것도 고통스러우니까.

하지만 저자가 오바마 대통령의 질문 요구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기자들의 예를 드는 건 정말 적절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학생들도 아니고, 기자씩이나 되어서 아무 질문도 못 한다는 건, 그저 발표자(그게 누가 됐든)가 하는 말만 받아 적고 그대로 옮긴다는 건데, 그렇게 건전한 비판 의식이 없는 기자가 얼마나 좋은 기사를 쓸 수 있을까?

그럴 거면 기자가 왜 필요하겠나? 그냥 녹음기 하나 가져다 놓으면 되지.

오바마 대통령 이때는 박 모 씨가 대통령이던 시기인데, 그때는 청와대에서 딱 자기네들 할 말만 하고 질문 하나 안 받아도 얌전하던 기자들이, 정권이 바뀌어서 질문 받는 시간을 따로 할당해 주니까 고마운 줄도 모르고 '기레기' 소리 들을 만한 말만 웅앵웅 하는 걸 떠올려 보시라.

내가 블로그에서 웬만해서는 정치 얘기는 안 하려고 했는데, 이건 정말 적절치 못한 예여서 부득이하게 언급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이것 말고 다른 예를 들었으면 더 설득력이 있었을 텐데, 이 부분이 참 아쉽다. 

질문할 거리가 없는데 굳이 질문을 해야만 하는 분위기가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나도 동의한다.

 

어쨌거나 서양의 방식이나 지금 우리나라 방식이나 개선의 여지가 있으니, 소수(그게 내향성이든 아니면 성적 취향이든, 뭐든 간에)도 존중하는 교육 방식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나는 이 책이 오늘 이 포스팅에서 언급한 이 점만으로도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얇고 짧은 책이니까 금방 읽을 거고, 이 정도 내용이면 시간을 아주 버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강력 추천까지는 아니더라도, 내향인이라면 한 번 읽어 봐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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