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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by Jaime Chung 201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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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내가 이전에 책 리뷰를 쓴 적이 있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의 그 이진송 작가가 낸 새 책이다!

2018/12/21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책 감상/책 추천] 이진송, <연애하지 않을 자유>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三抛)' 세대 때문에 출산율도 1명 이하로 낮아진 이 시대에, 아직도 이들이 포기한 그 세 가지를 강요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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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도 너무나 공감하면서, 재미있고 유쾌하게 잘 읽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부분에는 (종이 책의 경우)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이북의 경우) 하이라이트를 하는데, 이 책은 내가 하이라이트한 것만으로도 책 리뷰 한 편은 거뜬히 쓸 수 있다.

일단 책 제목은 여자들을 구속하는 "~해야 한다",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규범들에 대항해, 이런 것들을 지키지 않고 그저 자신의 모습 그대로도 여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저자는 여자들이 살면서 부닥치는 많은 굴레들 중 대표적인 것들을 스물여섯 가지 꼽아 각각의 꼭지에서 다루는데, 이 정도면 웬만한 규범들은 다 커버되는 듯하다.

이 리뷰에서는 그중에 제일 공감되는 것들 몇 가지를 꺼내 같이 이야기해 볼까 한다.

 

결혼은 그 자체로 여자의 꿈, 로망처럼 여겨진다. 웨딩드레스를 모두의 욕망인 것처럼 포장하거나 여성들이 남성들로부터 결혼을 얻어내려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수없이 반복 재생산되었다. 여성지를 읽다 보면 꼭 나오는 대목이 있다. 연애에서 남자를 '질리게' 하지 않도록 '현명하고 센스 있는' 여자 친구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각종 조언들이 그것이다. 그중 스테디는 단연 "결혼 이야기를 꺼내지 말 것"이다. tvN 드라마 <연애 말고 결혼>은 제목에서부터 결혼을 강렬하게 원하는 여자 주인공이, 결혼을 부담스러워하는 남자 친구에게 뻥 차이면서 시작한다.

이런 식의 구도는 아주 흔하다. 현재의 젊은이들이 결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보편적이지만, 언제나 결혼을 원하는 쪽은 여성인 것이다. 사실은 어떨까? 2016년 미혼자 대상으로 결혼 인식을 조사한 통계청 자료를 보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대답한 비율은 남성이 42.9%, 여성은 31.0%이다. "결혼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대답한 비율도 남성 3.3%, 여성 6.0%이다. 2016년 7월 10일자 MBC 뉴스 보도를 보면 여성 10명 중 9명이 결혼을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대답하지만, 남성의 60%는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18%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여전히 여성에게는 결혼이 궁극적인 목표이고 스스로 그렇게 원하는 것처럼 조장하는 약이 유통되다니... 부들부들!

내 주위만 봐도 결혼을 한 사람들은 분명 있지만(내 대학 동기 중 연락이 닿는 소규모 그룹 중에서도 벌써 둘이 결혼했다), 그들조차도 "결혼하지 않으면 안 돼!"라는 느낌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까지 친한 사이는 아니어서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통계가 저렇게 나오는데 왜 아직도 '여자들은 결혼하고 싶어 하고, 남자들은 피하고 싶어 한다'라는 고정관념이 지속되는 건지 모르겠다.

현실을 보면 오히려 '(결혼하면 여자가 잃는 게 뭔지 잘 모르는, 또는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남자들이 결혼하고 싶어 하고, 여자들은 피하고 싶어 한다'가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말이다.

각 성별에 대해 이런저런 고정관념을 만들어 놓은 게 하루이틀은 아니지만(예컨대 여자가 남자보다 말이 더 많다는 고정관념처럼 -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남자들이 말이 더 많다는 건 심리학자들의 실험으로도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현실과 정반대인 '뇌내 망상'을 현실처럼 이 사회에 유통하는 건 정말 너무하지 않나?

 

이진송 작가는 언제나 말을 재밌게 잘하지만, 나는 이 부분이 특히 너무 통쾌하고 웃겼다.

결혼을 꿈구는 친구의 남자 친구는, 내 친구가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고 하자 "네가 아직 어려서 그래, 나이가 들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받아치라고 속삭였다. "그건 네가 자궁이 없어서 그래, 자궁이 있으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자궁이 없는 존재가 자궁이 있는 (따라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존재에게 애를 낳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설교라니!

낙태죄 폐지 시위에서 마음에 들었던 문구로 이 장을 마무리하겠다.

"야, 이건 내 거야. 국가는 나대지 마라."

 

나는 늘 궁금했다. 왜 "산모와 아기 둘 다 위험합니다." 같은 상황이 되면 대개 아이를 살리려고 하는 걸까?

내가 산모라면 내 목숨부터 부지하고 싶을 것 같은데 말이다(공평하게 말하자면 나는 애초에 애를 갖고 싶은 생각이 없다).

근데 왜 내가 여태껏 TV나 소설에서 봐 온 산모들은 그런 위험에 처했을 때 아이의 목숨을 자기의 것보다 중시하고, 최악의 경우엔 아이만 남기고 숨지는 걸까?

이성적으로 따지면 산모가 살아 있어야 (이번 애는 죽는다 쳐도) 또 다시 애를 낳는 걸 시도라도 해 볼 수 있으므로 산모를 살리는 게 이득이다. 그렇지 않나?

애는 기껏해야 10개월 살았고 산모는 그래도 한 20년은 살았을 건데, 그 산모인 여성을 낳고, 키우고, 살아 있게 만들고, 교육시키고 하는 것 등등에 들어간 돈과 노력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된 여성을 살리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 여성이 있어야 나중에 애를 또 낳든 말든 할 수 있는 거고(아니면 다른 애를 입양해서 키울 수도 있다).

근데 왜 대부분은 '산모와 아이기 둘 다 위험한 상황'이 되면 아기를 살리려고 그렇게들 애를 쓰는 걸까?

이런 생각이 "아이보다 내 삶을 더 중시해도 ― 영화 <국화꽃 향기>"라는 꼭지를 읽으면서 다시 떠올랐다.

똑같은 생명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 없다는 결정은 숭고하며, 위험을 감내하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무사히 태어난 아이들을 보며 느끼는 그들의 기쁨과 행복은 생판 남의 눈에도 반짝거린다. 다만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임신과 출산은 온전한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기에 이를 마냥 아름다운 희생과 모성의 승리로만 포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성의 몸은 복잡한 억압과 폭력과 이데올로기가 교묘하게 교차하는 전쟁터이다. 임신과 출산이라는 거대한 사건 앞에서 그 양상은 더욱 치열해지는데, 이는 오랫동안 숭고하고 신성한 모성 신화의 베일로 은폐되어 왔다. 아직도 여성이 선택하는 임신 중절은 불법이고, 기혼 여성의 경우 법이 정한 사유를 충족하는 동시에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만 임신 중절을 할 수 있는 현실은 여성들을 일제히 어느 한 방향으로만 몰아간다. 이 과정에서 임신 중절 여부는 여성의 도덕성이나 모성을 판별하는 성적표가 되고야 만다.

 

또한 중요한 질문 하나. 살면서 "그 여자 진국이야" 같은 말을 들어 본 적 있으신지?

나는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왜 '진국', 그러니까 '거짓이 없이 참된 것. 또는 그런 사람'(네이버 국어 사전)은 늘 '남성'인 것일까?

그런데도 세상에는 참 많고 많은 진국이 있으며, 남성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진국은 여러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다. 이 진국이 언제나 남성이라는 것은 곧 내면의 진가, 혹은 내실이 언제나 남성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그들은 외면이, 경제적인 조건이, 사회적 지위가 어떻든 고결한 내면의 소유자일 수 있다. 만섭은 무례하거나 성차별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지만, 잘생기거나 스펙이 좋은 캐릭터가 아니다. 다만 성실하고, 자기만의 철학이 있으며, 순정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순정 진국의 카테고리에 들어갈 수 있겠다.

여성은 왜 진국이 될 수 없는가? 한때 '개념녀'라는 단어가 여성 진국의 자리를 차지할 뻔하기도 했으나, 원칙적으로 여성은 '겉모습은 보잘것없지만 알고 보면 진짜 좋은 사람'을 의미하는 진국이 될 수 없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예쁜 것이 곧 '착한' 것이기 떄문이다. 분서갱유를 해도 시원찮을 수많은 문구들을 생가해 보자. 착한 몸매, 착한 얼굴, 착한 각선미, 착한 비율…… 
아름다운 내면 때문에 보잘것없는 겉모습이 용서되는 것은 가판대에 널려 있는 옷만 집었다 놨다 하는 검소하고 안쓰러운 어머니 정도?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은 진국이 아니라 진국의 가치를 알아보는, 말하자면 장금이 같은 역할뿐이다. 좀 못생겨도, 볼품없어도, 매력을 쥐어짜서 사랑할 구석을 찾아낸다 하여 이것을 '착즙'이라고 냉소적으로 부르기도 한다. 썅년이 되기 않으려면 볼품없는 껍질 안쪽에 감춰져 있는, 파인애플 속살처럼 향긋하고 달콤한 아름다운 내면을…(하아) 착즙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는 명제는 너무 뻔하고 진부하다. 그리고 이 도덕적 가르침은 여성에게만 향한다. 어떤 규범이 정체성에 따라 비대칭적으로 적용된다면 차별이다.

바로 이거다. 여성은 '겉모습은 볼품없어도 내면이 아름다운' 운운 하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남성만이 '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웩.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는 많은 시간과 정서적인 노동이 필요하며, 심지어 내면도 보잘것없을 수 있다. 풀꽃은 오래 보아야 예쁘지만, "어리석은 여자들아, 나의 내면을 보라"고 울부짖는 이의 내면은 그냥 잡초가 아닐까? 나는 언제나 한국 사회가 너무나 많은 여성들을 이 불확실하고 위험 부담이 큰 발굴에 몰아넣는다고 생각했고, 그 광경을 괴이하게 여겼다.

'미녀와 야수'의 예시는 이제 그만 좀 유통하고 부추겼으면 좋겠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발견되어 사랑받으려고 기다리는 산삼이 아니다. 타인에게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내면을 발견하고 사랑해 달라고 요구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군다나 여성은 굳이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선구안을 기를 필요도, 모든 조건을 제치고 그것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사랑할 의무도 없다. 혹여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고 해도 다른 아름다움을 원한다면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선택은 누구에게도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아, 이 외에도 너무나 공감되는 글이 많은데 다 소개할 수 없어서 아쉽다.

하지만 이진송 작가의 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또는 모르더라도 속 시원하고 유쾌한 페미니즘 책을 찾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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