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After Yang(애프터 양)>(2021)

알렉산더 와인스타인(Alexander Weinstein)의 단편 소설 <Saying Goodbye to Yang>을 바탕으로 한 영화. 다들 아시겠지만 나는 이제서야 보았으므로 이제서야 리뷰를 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아이가 자신의 뿌리를 알 수 있도록, 중국어를 하는 인간형 안드로이드 로봇 양(저스틴 H. 민 분)을 딸 미카(말레아 엠마 찬드로위자야 분)에게 사 준 제이크(콜린 파렐 분)와 카이라(조디 터너 스미스 분). 그러나 어느 날 양은 작동을 멈추고, 미카는 사랑하는 오빠의 죽음을 슬퍼한다. 제이크는 어떻게든 양을 고치려 하지만 쉽지 않은데…
이 영화는 대체로 ‘테크노-오리엔탈리즘(techno-orientalism)’이라는 개념과 연관지어 설명되는 모양이다.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은 말 그대로 테크노, 즉 기술과 관련한 오리엔탈리즘이다. 가장 대표적인 게, 아시아계 인물을 감정 없는 로봇처럼 묘사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그런 ‘트로프(trope, 이게 뭔지는 이 포스트에서 자세히 소개했다)’를 전복한다고 하는데, 미카에게 중국어를 가르쳐 주고 중국에 대한 이런저런 지식을 알려 주는 양이 인간답고 따뜻한 존재로 묘사되며, 이 가족도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제이크와 카이라가 미카에게 양을 사 준 것도 아이의 뿌리를 지키고 존중해 주기 위해서였다. 양에게는 제이크와 카이라가 몰랐던, 풍부한 내면과 삶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양은 단연코 테크노-오리엔탈리즘을 전복시키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그 외의 영화적인 면모는 그다지 ‘전복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내가 제일 혼란스럽고 이상하다고 여겨졌던 게, 이 SF 세계는 너무나 오리엔탈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제이크는 차(茶)를 파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고, 제이크와 카이라는 종종 ‘라멘(라면 아니고!)’을 먹는다. 미카가 ‘고추장 소스’를 만들었다는 언급이 딱 한 번 나오긴 하는데, 그것 외에 등장인물들의 의복이나 그들이 사는 정원이 참으로 일본식으로 생겼다. 한두 명도 아니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양식’ 의복을 입고 나오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제이크가 찾아가는 기술자 러스(리치 코스터 분)네 가게에 붙은 작은 포스터 같은 선전물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60년이나 계속된 전쟁이 끝난 시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에게 먹히기라도 했나요? 그게 아니라면 왜 이런 거지? 원작에도 나오지만, 제이크가 양을 낑낑 데리고 러스네 가게에 갔을 때 러스는 양을 보고 한국인이라고 넘겨짚고, 제이크가 사실은 중국인이라고 정정해 주니까(양을 연기한 저스틴 H. 민이 한국계라서, 따지고 보면 러스가 제대로 알아본 거다) “그게 그거지 뭐”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대놓고 인종차별주의가 이렇게 쩌는 세계관에서 왜 다들 동양식 복식을 입고 있는지 누가 설명해 주실 분? 원작 소설에서는 아예 이런 부분도 있다.
The wall behind the desk is cluttered with photos of Russ and his kids, all of whom look exactly like him, and, buried among these, a small sign with an American flag on it and the message THERE AIN’T NO YELLOW IN THE RED, WHITE, AND BLUE. 책상 뒤에 있는 벽에는 러스와 그의 가족의 사진으로 어수선한데, 그들 모두 다 그와 똑같아 보이고, 그 사진들 사이에는 미국 국기와 “빨강, 하양, 파랑(미국 국기의 색깔)에 노랑은 없다”라는 메시지가 쓰인 작은 표지가 있다.
이 외에도 이 세계관에 팽배한 인종차별주의를 보여 주는 부분이 두어 군데 더 있는데, 한 크리스마스에는 짐(원작 소설 속 제이크는 짐이라고 불린다), 키라, 미카, 양 모두 각자 공항에서 수색을 받았고,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하는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언급이 있다. 어차피 그들은 미국인에게 모두 ‘노란’ 아시아인으로 보일 뿐이므로. 그러니까 이런 세계관을 고려한다면 모든 등장인물들이 동양식 옷을 입고 라멘을 먹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요!
이것과는 조금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화 초반에 나오는 ‘온라인 우리 가족 춤 경연대회’ 같은 거… 으으, 개인적으로는 보기 괴로웠다. 갑자기 제이크가 무슨 사이버스러운 옷을 주섬주섬 입길래 일하러 가나 했는데 다들 그걸 입고 춤을 추더라. 이 영화가(소프트하긴 하지만) SF 장르에 속한다는 걸 이런 식으로 보여 줘야 했나… 아니, 내가 가족들과 춤 경연대회 따위에 나가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이라 이 장면이 더 괴로웠던 걸까? 영화 속 가족들은 즐거웠는지 몰라도 보는 나는 공감성 수치를 느꼈는데요… 대놓고 은색 번쩍번쩍하는 ‘사이버’스러움이 나에겐 너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아무래도 원작이 단편 소설이라, 영화로 만들려면 이야기를 좀 더 만들어서 끼워넣어야 하므로 양이 이 집에 오기 전에 살던 기억이라든지 조지(클립튼 콜린스 주니어 분)네 클론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같은 걸 넣은 것은 이해가 된다. 양이 단순히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풍부한 내면을 가진 인물이라는 걸 보여 주는 장치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역시 전반적으로 이 영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난 직후에, 비슷한 주제라서 이쪽을 깊이 생각해 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으나, <클라라와 태양>에서도 나는 이미 로봇이나 주변 인물에 대해 그렇게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도 크게 생각이 깊어지진 않았다. 그게 <클라라와 태양>이나 이 영화가 나쁘다, 별로라는 뜻은 아니고, 그냥 나랑 공명하기에는 진동이 안 맞았던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깊게 생각할 수는 없는 법이지. 그냥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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