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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인들이 보라색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라색을 싫어하는 걸까?

by Jaime Chung 2018. 1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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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인들이 보라색을 좋아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라색을 싫어하는 걸까?

 

내가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서 지내며 제일 놀랐던 것 중 하나가, 여기에선 보라색을 자주 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단 보라색 벚꽃이라고도 불리는 자카란다 나무가 많은 데다가, 정확히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보랏빛을 띄는 여러 꽃들이 일반 가정집 정원이나(영국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호주는 땅덩이가 넓어 정원 있는 집도 많다 보니 사람들이 정원을 참 열심히 가꾼다) 공원 등에 많이 피어 있다.

(자카란다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2018/10/04 - [호주 이야기]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아름다운 보랏빛 꽃을 피우는 자카란다(jacaranda) 나무)

그래서 그런지 옷뿐 아니라 일반 사물에도 보라색을 아주 자연스럽게 쓰고 호주인들도 그것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가장 단적인 예가 내가 갔던 호주 가정집 파티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놨는데(손님들이 원하는 음식을 담아 가서 먹으라고) 한 꼬마(남자애였다)가 굳이 보라색 접시를 꺼내서 가져가더라. 너무 예쁜 보라색이라 내가 그거 쓰고 싶어서 눈독 들이고 있었는데 애한테 밀림ㅋ...ㅋ...ㅋㅋ...ㅠㅠ

우리나라에도 보라색 꽃이 없는 건 아니지만(지금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제비꽃과 라일락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보라색을 그렇게 널리 잘 쓰는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보라색을 제일 좋아해서 어떤 물건을 사든 보라색이 선택 범위 안에 있으면 그 색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내 경험상 우리나라보다 호주에서 그런 선택권이 훨씬 많았다.

흠,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라색을 특별히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그래서 검색을 좀 해 봤다.

2017년에 조선일보에 실린 한 기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색'은 파랑(16.9%)이 1위를 차지했다. 초록(11.3%)과 보라(11.3%)가 공동 2위를 차지했고, 남색(9.9%), 검정(9%)이 뒤를 이었다. 파랑, 초록, 보라, 남색 등 푸른 계열을 좋아한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49.4%) 가까이 됐다. (...)

봐서 좋은 색과 실제 소비하는 색엔 차이가 있었다. '좋아하는 옷 색깔'을 묻는 말엔 검정이 43.4%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2위는 남색(18.3%)이었고, 흰색(7.3%)과 회색(7.3%)이 공동 3위였다.

'검정'은 가장 멋스럽고 클래식하면서도 권위 있는 색깔로 꼽힌다. 한국 사람이 검정 옷을 좋아하는 데는 일명 'DNA 컬러'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머리카락, 눈동자 색 등을 'DNA 컬러'라고 한다. 서양인은 금발, 갈색, 빨강 등 머리카락색도 다양하고 눈동자 색깔도 파랑 등 여러 가지다. 다양한 머리카락색과 눈동자 색에 맞춰 코디하다 보니 자연히 옷 컬러도 다양해진다. 반면 우리는 DNA 컬러가 검정 톤 하나다 보니 거기 어울리는 검정 옷을 주로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김수정 교수의 분석이다. 사회 분위기도 검정, 남색 같은 어두운 계열 옷 선호와 관련이 있다. 현정오 노루팬톤 수석 연구원은 "튀는 색 옷을 입으면 '왜 저런 옷을 입나'라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었다. 자연히 어둡고 묻히는 색상을 입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했다.

(출처: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4/2017012401610.html)

 

아하! 우리의 검은 머리색 때문에 잘 어울리는 색이 검정 톤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적으로 튀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 문화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이는 굳이 옷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물건(예를 들어 그릇이라든가 가위라든가)에도 해당되는 것 같다. 굳이 어떤 색이든 크게 상관이 없는 물건들이라면 다양한 색으로 만들어도 될 것 같은데, 우리나라는 그런 제품조차 확실히 '무난'한 색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굳이 보라색은 아니어도 밝고 쨍한 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게 참 안타까웠다. 특히 겨울옷을 보면 남성복은 물론이요, 여성복조차 밝은 색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추워도 예쁜 색 옷을 입고 싶은데ㅜㅜ 핑크라든가 민트라든가 하늘색 같은 것...

 

팬톤이 선정한 2018년의 색이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이라 그런지 올 한 해 호주에서 정말 다양한 톤의 예쁜 보라색을 많이 만나 볼 수 있었다.

 

 

호주에서 제일 많이 옷을 사서 입은 브랜드 '코튼 온(Cotton: On)'에서도 보라색을 어찌나 알뜰살뜰하게 잘 쓰던지, 정말 보라색 옷은 다 사고 싶을 정도였다!

(코튼 온에 대해서는 이 포스트를 참고하시라.

2018/07/22 - [호주 이야기] -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호주에서 이것이 필요하면 여기로 가세요(식품, 옷, 문구류, 화장품 편))

 

사회생활을 하면 물론 TPO는 따져야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우리나라는 튀는 걸 너무 억압하는 경향이 있다. 사고(思考)든 라이프스타일이든 옷이든 간에.

우리나라도 다양한 색, '튀는' 색의 옷을 입어도 눈치를 주거나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문화가 사라져서 다들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자유롭게 마음껏 몸에 걸치고 다닐 수 있으면 좋겠다. '달라도' 괜찮은, 조금 더 자유로운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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