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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bungle(~을 엉망으로[서투르게] 하다, 실수하다)

 

덜렁대는 스타일은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는 귀여울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선 전혀 안 그렇다.

'bungle'은 이런 덜렁이들이 일을 '엉망으로[서투르게] 하'거나 '실수하'는 걸 말한다.

케임브릿지 사전은 'bungle'을 "to do something wrong, in a careless or stupid way(어떤 것을 부주의하거나 멍청한 방식으로, 틀리게 하다)"라고 정의했다.

콜린스 사전은 'bungle'을 이렇게 설명했다. "If you bungle something, you fail to do it properly, because you make mistakes or are clumsy(무엇을 bungle 한다면, 실수를 하거나 서투르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Two prisoners bungled an escape bid after running either side of a lamp-post while handcuffed(두 명의 죄수는 수갑을 찬 채로 서로 가로등 기둥의 다른 쪽으로 달려 나가려다가 탈출 시도에 실패했다)."

"...the FBI's bungled attempt to end the 51 day siege(51간의 포위를 끝내려는 FBI의 서투른 시도)."

맥밀란 사전은 'bungle'을 "to spoil something by doing it very badly(어떤 것을 형편없이 해서 망치다)"라고 풀이했다.

"Police totally bungled the investigation(경찰은 그 수사를 완전히 망쳤다)."

[책 감상/책 추천] 이영미, <인생운동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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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을 추듯 움직이는 사람들이 그려진 책표지를 보면 대략 감이 오겠지만, 이건 생존을 위해 운동이 될 '춤'을 시작한 한 중년 여인의 에세이이다.

저자는 이영미라는 연극평론가로, '몸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이유인즉슨, 원체 타고난 몸이 약한 데다가, 체력 이상으로 과로하는 경향 때문에 30대 후반부터 보약을 달고 살 정도로 몸이 삐그덕거리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이런저런 운동을 다 고려해 봤지만, '1분만 더!' 하며 죽을힘을 다해 버티는 운동은 맞지 않고, 옷 챙겨 입고 운동하고 다녀와 땀 씻고 조금 쉬면 두어 시간이 후딱 간다. 이래서야 글을 쓰는 일의 맥락이 끊겨 버린다.

게다가 그렇게 격한 운동은 하루에 1회 이상 하는 건 무리. 위무력증인 저자는 식사 후 몸을 좀 움직여 줘야 하는데, 그렇다면 집에서 수시로 짧게 할 수 있는 운동이 없을까 고민하다 떠오른 것이 춤이었다.

'주1회 학원에서 배우고, 집에서 틈틈이, 식후 시간마다, 한두 시간마다 일어나 스텝을 밟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저자는 "쿨하게 업무를 처리하듯" 동네 댄스스포츠 학원의 문을 열고 들어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에 순수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일상적이며 실용적이고 객관적인 설명을 하고 싶다고 썼는데, 실제로 정말 그렇게 책을 썼다.

앞에서 간략히 설명했듯 저자가 어쩌다가 춤을 추기로 한 건지, 동네 댄스스포츠 학원에서 어떤 춤부터 배우고 어떻게 진도를 나갔는지, 댄스스포츠를 배운 다음에는 무엇을 배웠는지 등을 시간적인 순서로 진행하며 풀어놓는데, 군데군데 아주 실용적이고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서 댄스스포츠의 종류(서유럽 백인의 춤, 미국·중남미 춤을 바탕으로 영국에서 10종목으로 정리했다), 댄스화는 어디에서 사면 좋은가(서울역 옆 염천교 수제화 거리에 가면 4~5만 원에 맞출 수 있다),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적절한 춤(자이브, 왜냐하면 라틴댄스가 모던댄스보다 쉽고 라틴댄스 중에서도 자이브가 얼추 따라가기는 제일 수월하기 때문이다) 등등.

저자가 이야기를 잘 풀어내서, 춤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러니까 남이 춤을 추는 건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춤을 배우거나 출 생각이 전혀 없는 내가 보기에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제일 흥미로운 건, 역시 저자가 춤을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평론가 출신이어서 그런가, 춤을 배우면서도 자신이 가진 지식을 이용해 이런저런 분석을 시도하는데, 그것이 정말 나에게는 새로운 시선이었다.

예컨대, 발레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분석한다.

매사가 그렇지만 보는 것과 하는 것은 정말 다르다. 발레가 아주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이지만, 사실 그 춤은 서구 근대 공연예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정면무대에 인간의 몸을 끼워 맞춘 춤이다. 관객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모두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고, 출연자는 한 방향만을 의식하면서 춤을 춘다. 그러니 그쪽 방향에서 볼 때에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인간의 육체를 인위적으로 비틀어 놓은 동작이 많다. 한 동작에서도 가슴, 허벅지, 발등, 머리 등 각 부위가 각각 어느 방향을 향해야 하는지 정해져 있는데, 이 기준은 자연스러움이 아니라 정면에서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발레 연습실에 다리를 들어 걸쳐 놓는 바(bar)와 정면을 의식하도록 하는 거울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발레는 그저 우아하다, 그리고 발을 그렇게 혹사시켜서 추니 힘들겠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쪽으로는 분석해 본 적이 없어서 이 부분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이야, 역시 배우신 분은 춤을 그냥 취미로만 배워도 이 정도 깊이의 분석을 할 수 있는 거군요! 너무 멋졌다.

 

저자가 춤을 배우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이건 삶도 그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구절들이 특히 그렇다.

물론 처음 배우는 사람들은 뛰지 않고 그저 걷는 것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없지 않다. 뛰는 게 쉽지 않은 70대 노인이 이렇게 걷기 동작으로 춘다면 그건 아마도 육체적인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는 이 정도 뛰는 게 가능한 50~60대인데도 이렇게 추는 사람이 적지 않다. 동작을 크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다. 아니, 이렇게 크게 움직여 본 경험이 없어서 자기도 모르게 동작이 작아지는 것이다. 자기 딴에는 크게 움직였다고 생각하지만 그저 평소보다 조금 더 크게 움직였을 뿐, 춤으로 보자면 턱도 없다. 그러니 민망함을 떨치고 더 과감하게, 더 크게 움직여야 한다.
선생님은 5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자이브의 몇몇 동작을 조금 섬세하고 정확하게 하도록 다듬어 주고 있다. 내가 "왜 처음부터 이렇게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어요?"라고 투덜댔더니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치면 어렵다고 다 도망가요. 일단 늪에 빠뜨려 놓고 어느 정도 움직일 만큼 되면 그때 다시 건져서 다듬어야지." 물론 댄스스포츠를 전문으로 할 연습생인 경우에는 다르단다. 아주 간단한 동작이라도 정확한 형태로 할 수 있을 때까지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반복한다. 하지만 나 같은 일반인들까지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게 선생님 생각이었다. 파트너 붙잡고 음악에 맞춰 즐겁게 움직이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저자는 춤을 추기 시작하니 전반적인 건강이 좋아졌다고 한다. 어깨가 부드러워져 고질병이었던 오십견 증세도 사라지고, 무릎도 아주 튼튼해졌단다.

무릎을 많이 써서 무릎이 안 좋아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춤을 추고 나면 무릎이 좀 욱신거려도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 정로, 큰 무리는 없었다고. 

 

그리고 왈츠가 자이브나 룸바처럼 남녀가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춤보다 더 야하다는 것 알고 계셨는지?

어려운 점은 또 있다. 몸의 밀착이다. 그냥 손을 맞잡는 정도가 아니라 횡격막 부근의 윗배 부분부터 허벅지 부위까지 파트너와 밀착시킨 상태를 유지한다. 와, 이렇게 스킨십이 심한 춤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단 말야?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골반과 엉덩이를 흔들어 대는 라틴댄스가 훨씬 야해 보인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왈츠의 선은 얼마나 우아한가. 그런데 실제 해 보면 내숭도 이런 내숭이 없다.

와, 세상에... 넘모 야하다! 난 왈츠라고 하면 그냥 파트너와 가까이 붙어서 손 잡고 천천히 빙글 도는 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윗배부터 허벅지까지 찰싹 붙이고 추는 춤이었단 말인가! 

(사실 이렇게 신체 접촉이 많기 때문인지, 커플댄스에서 남자의 손은 여자의 어깻죽지뼈 미틍로는 내려가지 않는 게 원칙이라고 한다. 허리를 향해 더듬대는 손은 성추행으로 간주된다.)

 

앞~중반까지 계속 나오는 댄스스포츠 외에 탭댄스, 플라멩코, 벨리댄스, 훌라 춤도 책 중후반에 언급되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한번 훑어보시라.

초심자들이 이런저런 실용적인 정보(위에서 말했듯 댄스화는 어디서 살지, 춤을 출 때는 뭘 입으면 좋은지 같은)를 습득하는 데도 이 책이 도움이 될 거고, 아니면 아예 이 책을 읽고 '나는 이 춤을 배워 보고 싶어!'라고 마음을 정할 수도 있겠다.

책 마무리에 저자는 "운동으로서 내 나이의 몸이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것, 춤 자체로 재미있는 춤, 춤으로 생각할 거리가 있는 춤"이라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춤을 골라서 배웠으며, 살사댄스나 에어로빅, 줌바댄스, 발레 스트레칭 등 운동 효과가 제1의 목표로 설정돼 있는 춤은 자신의 관심 밖이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즐기는 방송댄스나 재즈댄스, 젊은 몸을 요구하는 발레도 마찬가지.

하지만 어떤 춤이든 무슨 상관이랴. 자신이 즐길 수만 있다면야.

60대인 저자가 '춤바람'이 날 수 있다면 나도 춤을 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고, 어떤 춤이 되었든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당장 막춤이라도 춰 보자!

[영어 공부] stint(일정 기간의 일·활동)

 

'stint'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정 기간의 일·활동'이다.

예컨대 이력서에 있는 '뫄뫄 회사에서 2년', '봐봐 회사에서 1년 6개월' 등의 이 기간을 각각 'stint'로 묘사할 수 있다.

케임브릿지 사전은 'stint'를 "a fixed or limited period of time spent doing a particular job or activity(특정한 일 또는 활동을 하면서 보낸, 정해진, 또는 제한된 기간)"라고 정의했다.

"He has just finished a stint of compulsory military service(그는 필수 복무 기간을 막 마쳤다)." 

"Perhaps her most productive period was her five-year stint as a foreign correspondent in New York(아마도 그녀가 제일 생산적이었던 시기는 뉴욕에서 해외 특파원이었던 5년의 기간일 것이다)." 

콜린스 사전은 'stint'를 이렇게 설명했다. "A stint is a period of time which you spend doing a particular job or activity or working in a particular place(stint는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일이나 활동을 하거나 일하며 보낸 기간을 말한다)." 

"He is returning to this country after a five-year stint in Hong Kong(그는 홍콩에서 5년을 보내고 이 나라로 돌아올 것이다)." 

맥밀란 사전은 'stint'를 "a period of time spent doing something(무엇을 하면서 보낸 기간)"이라고 풀이했다. 

"He came to California after a brief stint as a waiter in New York(그는 뉴욕에서 잠시 웨이터로 일하던 기간 이후 캘리포니아로 왔다)."

[영어 공부] taciturn(말수가 적은, 과묵한)

 

말수가 적은 사람은 살면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왜 이렇게 말이 없어(요)? 말 좀 해 봐(요)." 

이 말은 "내가 별로 할 말은 없는데 가만히 있기는 싫으니 네가 재롱 좀 떨어 봐라'라는 뜻이다. 어디 남보고 무례하게 그런 말을 씨부려 싸는지...

말수가 적은 사람은 영어로 'taciturn' 하다고 한다.

케임브릿지 사전은 'taciturn'을 "tending not to speak much(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라고 정의했다.

"He's a reserved, taciturn person(그는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은 사람이다)." 

콜린스 사전은 'taciturn'을 이렇게 설명했다. "A taciturn person does not say very much and can seem unfriendly(taciturn 한 사람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쌀쌀맞아 보일 수 있는 사람이다)." 

"A taciturn man, he replied to my questions in monosyllables(과묵한 그 남자는 내 질문에 단음절로 대답했다).

맥밀란 사전은 'taciturn'을 이렇게 풀이했다. "someone who is taciturn does not speak often and does not say very much(taciturn 한 사람은 말을 자주 하지 않고 많이 하지도 않는 사람이다)."

[책 감상/책 추천] 장대익, <사회성이 고민입니다>

 

 

책 표지에서 이미 요약해 주고 있듯, "혼자이고 싶지만 외로운 과학자"가 쓴 책이다.

과학을 바탕으로 한 사회학 서적이라고 해야 할까? 진화학자가 현대 사회의 문화에 대해 이런저런 진단과 설명을 하는데,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왜 사람들은 '혼밥', '혼술'을 하는 걸까? 저자는 그 이유를 '던바의 수(Dunbar's numbers)'에서 찾는다.

'던바의 수'란, 옥스퍼드 대학교의 진화심리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제시한, '한 사람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를 가리킨다.

'완전 절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의 수는 다섯 명, '절친'은 15명, '좋은 친구'는 35명, '친구'는 150명, '아는 사람'은 500명, 그리고 '알 수도 있는 사람'은 1,500명. 

던바 등이 제시하는 사회적 뇌(social brain) 가설에 따르면, 아무리 사회가 복잡해지고 발전하더라도 한 사람이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150명 안팎입니다. 이게 인간의 뇌용량이 허용하는 관계의 최대치라는 거죠. 그 이상을 넘어서면 뇌가 폭발한다는 뜻입니다. (...)

그런데 요즘의 오프라인 네트워크를 보세요. 회사나 학교, 그곳의 소모임이나 동아리, 또 주말에는 동호회나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존재합니다. 사회성을 발휘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도토리(=인간관계 총량)가 150개밖에 없는데, 사용처는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셈이지요. 인간관계의 총량은 그대로인 채, 사회적 채널만 늘어났을 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SNS의 발달로 인해 네트워크는 더 늘어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의 총량은 그대로니 도토리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저자는 '혼밥', '혼술'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뇌용량을 초과하는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한숨 돌리며 도토리를 충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혼밥을 하는 사람을 떠올려봅시다. 그 사람의 어깨를 툭 치며 "아, 딱한 친구일세. 회식이나 하러 가자고!" 이러면 안 되는 겁니다. 가만히 혼자 있게 놔두고 그 시간을 즐기게 하고 충전해서(다시 도토리 150개를 채우고) 다시 관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관계에 지쳐 있는 사람에게는 '자발적 외로움(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이런 맥락에서 저는 '홀로 버려져 마음이 쓸쓸한 상태'로서의 그냥 외로움과 자발적 외로움인 '고독'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혼자 무언가를 즐기는 데 사회적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해 봤지만 이렇게까지 과학적인 근거는 상상도 못 해 봐서 이게 참 인상 깊었다. 

 

과학자라고 하면 재미없게 말하거나 딱딱할 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이 책의 저자는 이야기도 재미있게 잘 풀어 나간다.

책 초반에 유인원의 차이를 이야기하면서 침팬지와 보노보 사진 옆에 인류의 대표 격으로 본인 사진을 붙여 놓았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난 이것도 너무 웃겼다. AI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반려동물과 무엇이 다를까 이야기하는 부분인데,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반려견 품종은 몰티즈라고 합니다. 귀엽고 사랑스럽죠. 그런데 혹시 몰티즈가 냄새도 잘 맡고 소리도 잘 듣고 귀엽게 생겼다는 이유로 인간으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열등감에 빠졌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소리와 냄새에 민감한 것은 개의 특성이지 인류와 경쟁해야 하는 속성이 아닙니다. 만일 비둘기가 날아다니는 게 너무 부러워 인간으로서 열등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병원에 모셔드려야겠죠.

그렇습니다. 개는 우리와 경쟁하지 않습니다. 개의 특성은 인간의 특성과 겹치지 않기 때문에 인류는 개와 오랫동안 친구지간이었습니다(물론 집에서 개와 순위 경쟁을 벌이는 아저씨들을 제가 몇 분 알긴 합니다). 그런데 만일 개가 어느 날, "저도 오늘부터 자율주행차의 승인 여부에 대해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나온다면, 물론 그럴 리는 추호도 없겠지만, 개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달라지기 시작할 겁니다.

과학자가 이렇게 웃긴 줄은 몰랐다.

 

게다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이렇게 말할 정도로 인간은 따뜻하게 이해하는 과학자라니!

우리 조상들은 어렸을 때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외로운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울음과 몸짓으로 엄마를 찾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다 멸절하여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겁니다.

반면에 집단생활을 하지 않는 악어는 외롭지 않아요. 조직 생활을 하는 쥐는 외로움을 느끼고요. 인간보다는 덜 느낍니다. 인간은 매우 연약한 존재이며 가장 큰 네트워크를 갖고 있기에 외로움의 진폭 또한 매우 큽니다.

 

저출생 현상의 과학적 설명:

동물은 자기 자신이 극심한 경쟁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감지하면 번식 전략이 아닌 성장 전략을 취합니다. 경쟁이 극심하면 자식을 낳아봤자 생존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대신 번식을 미루고 자신의 성장에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자신의 경쟁력을 먼저 높인 후에 자식을 낳아 그 자식의 생존 확률을 더 높이는 쪽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어느 동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전반적으로 유쾌하면서 사회적 현상에 대한 과학적 시선을 접할 수 있어서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저자의 책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저자의 다른 책도 기회가 된다면 찾아볼 생각이다. 일단 이 책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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